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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행적을 따라서

예수님께 영생의 길을 묻다(1)

by ysong 2020. 9. 7.

요한복음 3:1~2절

예수님이 공생애을 시작하면서 첫 번째 맞은 유월절에 성전청결을 하셨습니다. 장사의 소굴, 시장바닥으로 변해버린 이방인의 뜰을 기도의 집으로 회복하시길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성전의 주인이라고 당당하게 외치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어야 합니다.

 

성전청결 사건은 주인 행세를 하는 가짜주인을 쫓아내는 사건이었습니다. 성전문화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대제사장 그룹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가짜주인으로 성전의 주인행세를 하는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은 여간 골치 아픈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제거의 대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성전청결 사건 이후 예수님은 어떻게 보내셨을까요? 요한복음 2:23~24절에 따라면 예수님은 많은 표적을 행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성전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다양한 표적을 행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청결 사건 이후 예루살렘에서 몇 개월을 보내셨고, 누구의 집에서 지내셨을까요? 예수님은 적어도 8개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무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요한복음 4: 35절을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로 가는 도중에 사마리아여인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넉 달이 지나면 추수한다는 말인데, 이는 전도를, 실제적인 추수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의 밀, 보리 추수는 5월입니다. 수의 넉 달 전이니까 예수님이 사마리아여인을 만난 달은 12월이나 1월입니다.

 

예수님은 415일 이전에 도착하여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보내셨습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예루살렘을 떠나셨는데, 사마리아여인을 만난 날짜를 계산해 보니까 적어도 12월내지 1월에 예루살렘을 떠났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성전청결 사건 이후 최소한 8개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루 이틀도 아니고 8개월 이상 예수님은 어디서 잠을 주무시고, 식사를 하셨을까요?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요한의 집입니다. 요한복음 19:27절에 근거로 볼 때, 그는 예루살렘에 집을 소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그래서 요한복음에만 니고데모의 사건이 기록되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최소한 8개월 이상 예루살렘에 있으시면서 다양한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구체적인 표적의 내용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기간에 아주 특별한 일이 있었는데 바로 오늘 본문에 기록된 니고데모를 만난 일이었습니다. 니고데모를 만난 일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이렇게 특별히 기록했을까요?

 

니고데모는 누구인가?

1절은 니고데모가 누구인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입니다. 존경받는 선생님입니다. 그는 또 유대인의 지도자입니다. 여기서 지도자란 유대인의 최고의 통치기구로, 유대인의 제1의 지도자 71명으로 조직된 산헤드린공의회 회원 중 한명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니고데모는 권세를 지닌 자로,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 부족함이 없는 출세한 사람입니다. 그는 나이가 많으며, 조용하고, 진지했습니다.

 

2절을 볼까요. 2절에 그가 밤에 찾아왔습니다. 밤에 대한 해석도 다양합니다. 3가지로 설명되는데, 먼저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입니다. 성전청소를 한 예수님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지도자들의 질타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예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라는 해석입니다. 또 하나는 니고데모가 영적인 상태가 어둠이었다고 해석합니다.

 

2절에 우리가라는 단어로 볼 때,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혼자 찾아온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종합해 볼 때, 저는 밤에 찾아온 것이 사람의 눈의 피하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주제를 가지고 깊은 대화를 위해 늦은 시간을 택했다고 보고 싶습니다.

2절에서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랍비로,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님으로 굉장히 칭찬하며 존경을 표했습니다. 인사치리가 아닌 이례적인 평가입니다. 이는 갈릴리 촌사람을 이렇게까지 평가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의 편견을 무수는 강력한 확신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처음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오게 된 동기는 표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바르게 알아서가 아닙니다. 표적만 추구하는 믿음은 바르게 건강한 믿음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하는 표적이 주어지지 않으면 믿음의 대상을 얼마든지 버리거나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표적을 보고 찾아오기는 했지만, 예수님만이 자신의 갈급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왔습니다. 그가 예수님과 나누고 싶은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시몬, 안나, 나다나엘, 아리마대요셉도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권력도 돈도 학벌도 명예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급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찾아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와 동시에 중요한 것은 무슨 질문을 가지고 나오느냐 입니다. 평소 자신에게, 예수님에게 질문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예배에 나오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일상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입니까? 여러분들에게 보여준 표적으로 인한 떨림입니까? 아니면 영적인 갈급함입니까? 근본적인 진리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는 영적인 갈급함으로 드리는 예배이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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