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8~19절
예수님의 대표적인 적대자로 등장하는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면서 권세에 대한 질문을 제기합니다. 예수님은 그 유대인들에게 헤롯대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주전 18년에 재건축을 시작한 이래 46년간이나 짓고 있는 성전을 헐면 사흘만에 세우시겠다는 표적을 제안합니다.
사흘만에 세우시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내가 성전의 주인이다. 나는 이 성전을 헐어 버리고 나의 육체로 이루어진 새 성전을 세울 능력과 권한을 가진 자이다. 그러므로 나는 성전 안에서 너희들이 보는 바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제자들조차도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신 후에야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알게 되고 믿게 되었다고 21~22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본문의 내용에 대한 해석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성전청결 사건을 통해 성전의 본래적인 기능과 의미를 배우시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성전청결은 성전의 본래적인 기능을 회복합니다.
헤롯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을 증축한 것입니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곳이며,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구입하여 희생제사를 드린 곳이며, 솔로몬이 7년 동안 건축한 곳이며, 포로귀한 하여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건축한 곳인데, 헤롯대왕이 증축하여 공사하고 있는 성전입니다.
헤롯성전은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70년 디도장군이 성전을 파괴하는 것을 아쉬워 할 정도였습니다. 헤롯에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성전은 지성소, 성소를 중심으로 해서 경계를 정해서 출입을 통제했습니다. 지성소는 일반 제사장이 아닌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하루 대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성소는 분향과 촛대를 손질하는 직무를 위해 제비뽑기로 뽑힌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번제단과 물두멍이 제사장의 뜰은 레위인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뜰은 유대인 남자만 들어갈 수 있고,
여인의 뜰은 남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지만 여자들은 여인의 뜰을 넘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방인의 뜰은 이방인으로 하나님을 믿지만 할례를 받지 않는 경건한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뜰입니다.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으면 유대인이 됨으로 이스라엘의 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물 장사를 하고, 환전을 한 곳은 바로 이방인들이 기도하던 이방인의 뜰입니다. 이곳이 시장바닥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으로 하나님을 믿게 된 경건한 사람들은 기도의 장소를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16절에서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까닭입니다. 성전의 기능을 상실한 까닭입니다.
원래 성전은 이런 인간의 경계가 없었습니다. 성전의 원형은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와 함께 거닐며 교제하는 에덴동산입니다. 이곳에는 하나님을 만나는데 경계가 없었습니다. 친밀한 안식과 교제를 이뤄졌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과 함께 할 장소로 성막을 건축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성막은 솔로몬의 시대에 성전으로 발전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파괴된 성전은 다시 스룹바벨 성전으로, 헤롯성전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성전의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이며, 소박한 통치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전혀 다른 성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전 3:16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를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입니다. 이들이 모인 것을 교회라고 하고, 이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곳을 예배당이라고 합니다.
성전은 성령의 전이며,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교제의 장소입니다.
성전을 청소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중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외면하는 순간부터 성전은 혼돈과 흑암의 진원지가 됩니다. 날마다 지속하지 않으면 다시 장사의 소굴이 되는 것이 성전입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 안에 거하여 합니다. 믿음은 점이 아니라 선이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인 동의가 아니라 지속적인 수용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성전은 성전다운 기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의 또다시 성전청결 사건이 나옵니다. 3년이 경과했지만 똑같이 타락한 성전은 청결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청결은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성전은 안녕하십니까? 하나님의 임재의 정소로 기능을 잘 하고 있습니까? 만남의 장소로 아름다운 교제가 이뤄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묶은 때가 가득합니까? 그 때는 무엇입니까? 염려, 욕심, 불평, 교만, 경제, 지위, 성, 자녀입니까?
만약 예수님이 노끈으로 만든 채찍을 들고 찾아오신다면 여러분의 성전에서 무엇을 쫓아내실까요?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인인 교회이어야 합니다. 각자가 주인이 되면 안되는 주님의 교회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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