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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인생 질문에 답을 얻다

by ysong 2025. 12. 2.

사도행전 9:19~31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에 대해 오랫동안 물었습니다.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다메섹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하는 공통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 질문입니다.

 

사울의 두 가지 질문은 무엇일까요?

답을 알게 된 사울은 무엇을 했을까요?

그 이후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예수를 만나 답을 찾았다면 무엇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먼저 인생을 살다 보면 수많은 질문이 있습니다.

사울의 두 질문 안에 모든 질문이 포함되었다고 봅니다.

두 개의 질문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질문은 5절입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예수님을 몰라서 누구이냐고 물었습니다.

두 번째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9: 6절과 22:10절입니다.

행할 것을 알려 줄 사람이 있습니다.

그 행할 일은 15~16절입니다.

 

사울은 두 가지의 질문에 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알게 되고, 어떤 행동 했을까요?

19절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게 된 배경입니다.

사울은 다메섹 노상에서 기적적으로 주님을 만났고, 제자들의 가르침으로 에수가 누구신가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제자들과 며칠 동안 성경공부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만난 예수를 가르쳤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내용을 사울에게 가르쳤습니다.

이런 내용이 아닐까요?

예수님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마태복음 16:16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주인입니다. 메시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도 공생에 내내 자신이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설명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자신은 생명에 이르는 길이고 문이라고 알렸습니다.

예수님은 생명, 진리, 길입니다.

예수님은 양의 문, 선한목자, , 포도나무와 같은 것으로 비유하시면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이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울이 원했던, 유대인들이 원했던 메시야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유대인은 오랫동안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사울도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유다가 망하고, 5백이 넘게 식민지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긴 세울 동안 나라가 빼앗긴 채 살아왔습니다.

이 현실에서 구원하실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다윗과 같은 정치, 군사의 힘으로 구원할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들이 기다린 메시야가 아닌데, 메시야라고 주장했기에 예수님을 박해했고, 예수님을 따르자는 자를 죽였습니다.

사울은 제자들을 통해 명확하게 자기가 만난 예수가 그토록 기다린 메시야인가를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사울처럼 아무리 똑똑해도 먼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을 통해 배우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생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의 답은 20절입니다.

전도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전도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이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다.

구약에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선지자, 제사장, 왕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이며, 제사장이며, 만왕의 왕인 메시야입니다.

알게 되었고 믿었던 진리를 전했습니다.

사울은 즉시로 전파했습니다.

새신자가 예수님을 믿으면 기도나 성경을 읽는 것이 통상적인데, 사울은 즉시로 전도했습니다.

22절에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전했습니다.

다메섹 사람들이 당황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변한 사울을 보고 놀라고, 그가 전한 메시지에 놀랐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들르게 됩니다.

29절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과 변론하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울이 변한 것에 당황했고, 그의 메시지에 황당해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울은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옳은 인생인가를 알았습니다.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삶으로, 은사로, 주님이 주신 것으로 예수를 전하면서 사는 겁니다.

 

질문에 답을 찾아서 그에 따라 살기로 작정하면 따라오는 변화가 있습니다.

먼저 만나는 사람이 달라집니다.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전에는 대제사장, 율법 학자와 함께했습니다.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이름 없는 소수의 제자들과 함께 합니다.

 

일면식도 없는 바나바와 같은 자기를 믿어줍니다.

시간이 흘렀는데 예루살렘의 제자들은 사울을 두려워했습니다.

사울의 말 자체를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울을 제자들이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중간에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그가 직접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울에게 있었던 일을 소상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때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만난 사도는 초대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베드로였습니다.

 

사울이 새롭게 만난 아나니아와 바나바는 어떤 신앙인이었을까요?

아나니아와 바나바는 공동체 안에서 신망이 두터웠을 겁니다.

평소에 신망이 두텁지 않았다면 사울에 대한 설명을 믿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대한 말을 신뢰할 만큼 신실하게 생활했기 때문일 겁니다.

 

새로운 만남은 계속 됩니다.

디모데를 만나고, 누가를 만나고, 디도를 만남이 지속됩니다.

낮은 곳에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만나며 주의 길을 기쁘게 걸어가게 됩니다.

 

질문에 답을 찾아서 그에 따라 살기로 작정하면 따라오는 두 번째 변화는 훈련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열정으로 가득한 사울을 바로 쓰시지 않았습니다.

광야를 거치도록 합니다.

모세도 예수님도 광야를 거쳤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곳입니다

광야는 자기를 내려놓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곳임니다.

사울은 광야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잊힌 존재처럼 버려진 시간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간이며 장소입니다.

사울이 바울 되는 시간입니다.

 

갈라디아서 1:17절을 참고로 보면 오랜 세월 잊힌 존재로 삽니다.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다메석에서 아라비아 광야로 갔습니다.

다시 다메석으로 왔습니다.

 

고린도후서 11:32~33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유대교인들은 당시 다메섹의 지배자이던 아레다 왕의 군사들을 매수하여 성문을 불철주야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독안에 든 쥐의 형국이었습니다.

유대교인들은 배교자 사울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날을 지켜보던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했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사울로 인해 유대교인들 중에 상당한 사람들이 마음에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이러한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졌습니다.

즉시 거처를 옮겼습니다.

사울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밤낮으로 성문을 지켰습니다.

올 때는 성문으로 왔는데, 광주리를 타고 도망갑니다.

체면이 구겨지는 훈련입니다.

 

이후 사울은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3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간 것은 그곳에 있는 제자들과 사귀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울이 전한 복음을 들은 유대교인들은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울은 예루살렘에 15일 머문 후 고향 다소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다소가 있습니다.

실패자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자가 아닙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택한 그릇으로 삼으신 주님이 우리들을 훈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광야에, 다소에 머물게 했습니다.

충분히 준비되었다고 생각한 사울은 불필요한 시간과 장소라고 여겼을 겁니다.

그러나 인생의 광야와 다소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의 능력이나 힘을 믿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는 은혜의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시작하든,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든, 처음에는 자기의 능력으로 다 될 것처럼 자신만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나를 광야나 다소를 허락하십니다.

주님을 의지하면서 은혜로 사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결론과 같은 말씀은 31절입니다.

사울에게나 교회에 하나님의 일이 이뤄짐을 봅니다.

평안,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회복되고, 수가 많아집니다.

 

사울처럼, 초대교회처럼 쓰시는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도 3가지는 이뤄지고 있는데, 아직 하나가 남았습니다.

수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두 가지 질문에 알게 된 사울 같은 여러분!

31절의 복을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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