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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사울의 간증, 나의 간증

by ysong 2025. 11. 24.

사도행전 9:1~19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어떤 분은 극적인 만남이, 어떤 분은 조용한 만남이 있습니다.

당연히 극적인 만남에 더 많은 반응을 받습니다.

그런 관심을 받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다 예수님을 만남 흔적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변화입니다.

사람은 잘 안 변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예수를 만나 변화된 사도, 제자, 성도를 봅니다.

나는 타인을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변화될 수 없는 한 사람을 어떻게 바꾸셨나?

그것이 예수님을 만난 간증입니다.

 

오늘은 사울의 간증을 듣고자 합니다.

사도행전에 3번이나 반복한 간증입니다.

사도행전 22:6~16, 26:12~18절입니다.

사울은 사도행전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할 때마다 이 사건을 수십 번 반복했을 겁니다.

사실 사울의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실패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세상적으로 잘 나가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 고난의 인생을 살게 된 간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간증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간증에는 비슷한 사건이 있습니다.

사울에게도 있었고, 부족한 저에게도 있었고, 여러분들에게 이런 은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던 길에서 멈추는 일이 있습니다.

1~2절입니다.

사울이 다메섹을 향한 길은 분노와 열심히 가득한 길이었습니다.

예수쟁이를 잡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당연하게 여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은 240킬로 떨어졌습니다.

멀리 도망간 이들까지 잡아들이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사울은 무엇에 붙들려서, 누구를 위한 열심인가요?

사울은 분노에 붙잡혀 있습니다.

분이 풀리지 않습니다.

위협과 살기가 등등합니다.

분노의 영에 사로잡혀도 아주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정당 정치인들은 국민의 분노를 자극합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면서 이토록 사람에게 가혹할까요.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는데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을 음해하고 해치는데 열심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노의 영, 악한 영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을 향해 길을 생각해 봤습니다.

그 길은 성공의 향한 걸음이었습니다.

사울은 다소 출신으로 예루살렘에 유학을 왔습니다.

대제사장과 통하여 공문을 청할 정도로 눈에 띄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율법에 충실한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종교적인 확신에 찬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출세와 분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붙들리면 사울 할아버지이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3~4절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홀연히 빛을 비추어 가던 길에서 멈추게 했습니다.

햇빛보다 더 강하고 밝은 빛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빛으로 사울을 땅에 엎드려지게 합니다.

사울이 고꾸라진 겁니다

주님 앞에 엎드려진 겁니다.

땅에 엎드려진 상태에서 말씀을 듣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입니다.

누구야, 누구야 나를 믿는 것이 그렇게 싫으니입니다.

누구야, 누구야 이기적인 기독교인 때문에 나를 떠느냐입니다.

누구야, 누구야 나를 안 보여줘서 못 믿겠다고, 안 믿어진다고 했느냐입니다.

 

사울이 질문을 합니다.

진리에 대한 물음입니다.

5절입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주여는 하나님을 부를 때 쓰는 단어입니다.

말이 안되요.

일평생 주님을 섬겼는데, 누구냐고 묻습니다.

사울은 직감적으로 주님이신 줄 알았지만 누군지 모릅니다.

그동안 사울은 자기 자신을 섬겼던 것입니다.

정작 주님을 모르는 겁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가운데 계신 주님을 뵙고 이름을 묻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나 하나님과 마주치는, 진리에 대면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주님이 대답해 주십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박해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박해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박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25:40, 15:18절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내 상각과 다르다고 핍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겁니다.

종교적인 열심일 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간증에는 세상을 향해 가던 길이 멈추는 일이 생깁니다.

어떤 분들은 환경으로, 질병으로, 실패로, 계획의 변화로 이런 멈춤이 있습니다.

2~30년 공부와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멈춤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멈춤의 순간이 있었습니까?

 

두 번째는 기도가 있습니다.

빛이 강해서 그 자리에서 엎드려졌습니다.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사람들을 뽑아서 다메섹을 향해 갔던 사울은 이젠 그 사람들에 붙들려서 다메섹에 갑니다.

다멕섹에 도착한 9절에서 볼 수 있듯이 사흘 동안 금식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3일은 의미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3일 길은 순종의 날이었습니다.

요나의 3일 길은 회개의 기도의 날이었습니다.

에스더의 3일 금식기도는 죽으면 죽겠다는 순종의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3일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날이었습니다.

사울의 3일은 회개의 시간이었습니다.

 

사울은 무슨 기도를 드렸을까요?

예전에는 예수쟁이 잡으러 갑니다.

가는 길이 평판하게, 율법에 따라 성공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을 겁니다.

자기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그 계획대로 되기를 원하는 기도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젠 모든 기도가 무너졌습니다.

다시 눈을 뜨게 해 주옵소서.

주님을 핍박했다는 음성, 주님을 만났다는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

긍휼히 여겨주세요.

항복의 기도, 순종의 기도이었을 겁니다.

사람이 변하기 시작하면 기도가 변합니다.

기도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3일 동안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기도를 했을 겁니다.

살았다고 하지만 죽은 사람이 진정으로 산 사람이 되는 3일의 시간이었습니다.

간증에는 이런 기도의 시간이 있습니다.

저는 일 년 동안 새벽기도가 이런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간증에도 이런 기도의 시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기도의 시간에 어떻게 기도의 제목이 바뀌었습니까?

 

세 번째는 돕는 자가 있습니다.

사울을 도운 제자는 아나니아입니다.

그에 대한 소개는 사도행전 22:12절에 있습니다.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입니다.

아나니아는 경건한 사람이며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곳곳에 이런 사람을 두고 계십니다.

어떤 기록도 없지만 숨겨진 제자를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지만 늘 믿음을 지킨 사람입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 찾아가서 성령충만케 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하나님은 아나니아가 순종하도록 설명해 줍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의 악명을 다 알고 있습니다.

사울이 악질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

하나님의 명령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비밀을 알려줍니다.

15~17절입니다.

설명해 주십니다.

작전 지시를 내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비밀을 알려줍니다.

이방인들과 임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라고 합니다.

신분과 인종을 뛰어넘어 파격적인 말씀입니다.

아나니아는 괴장히 놀랐을 겁니다.

사울은 주님이 택한 그릇이라고 합니다.

즉시 순종합니다. 일어나 갔습니다. 형제로 부릅니다.

순종하는 평범한 사람을 통해 사람을 세우십니다.

구원 이후의 삶은 먼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지도자를 주신 이유입니다.

기적을 경험한 사람에게도 인도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 방법입니다.

인도자도 어려운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을 통해 사람을 쓰십니다.

간증에는 이런 돕는 자의 손길이 있습니다.

먼저 믿은 가족 중에서, 먼저 믿은 이웃을 통해, 먼저 믿은 성령충만한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이미 사울에게 일어나기 전에 주님이 이미 준비해 놓았습니다.

우리가 모를 때 벌써 시작하셨습니다.

오늘도 내일을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이의 도움을 받았습니까?

지금 어떤 분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까?

간증의 자리에는 도움의 만남이 계속됩니다.

간증이 풍성해지는 겁니다.

 

네 번째는 비늘이 벗겨집니다.

18절입니다.

왜 하나님은 다리나 질병이 아닌 눈을 멀게 했고 눈을 뜨게 했을까요?

시신경을 관할 하시는 하나님이 염증이 생기게 하셔서 잠깐 눈을 멀게 했을까요?

사울은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면서 살았습니다.

요즘 말하면 서울대를 나왔고, 똑똑해서 지식이 풍부했습니다.

지금까지 지식을 의지해서, 권력을 의지해서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보고 왔습니다.

사울은 비늘에 가려져서 잘못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눈을 멈추게 했습니다.

주님을 보는 새로운 눈을 주셔서 다시 보게 하셨습니다.

변화는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겁니다.

육신의 눈만 아닙니다. 영적인 눈이 바뀝니다.

새사람이 된 고백입니다.

이후 변화는 점진적입니다.

나의 비늘이 벗겨지는 날이길 바랍니다.

간증의 최종적인 결론은 변화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쓰시기로 작정하셨고, 사울을 변화시켜 종으로 쓰셨습니다.

 

사울의 간증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하면서 감사했습니다.

저 같은 부족한 종에게도 사울의 간증과 같은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가던 길에 멈추는 시간, 기도의 시간, 돕는 사람, 변화의 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의 경우에는 별로 간증이 없지만 대부분 야곱과 바울 같아서 여러분들의 간증도 동일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렇게 변화시켜서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 사람 써달라고 기도하세요.

저 사람 변화시켜 달라고 하면 기도하는 사람이 변합니다.

주님이 쓰면 됩니다. 그러면 변화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종이 되고 그릇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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