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10~1~23절
사도행전의 사건은 나와 전혀 관계가 없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도행전의 사람들과 동행하셨고, 지금 우리와도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와 유사한 일을 겪게 되기에 사도행전은 곧 나의 행전이 됩니다.
베드로와 고넬료는 만나기 어려운 사이입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처지와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식민지 백성이고, 고넬료는 정복자 군인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이고, 고넬료는 이방인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어부 출신이고, 고넬료는 로마의 귀족 출신입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 같은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이는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고넬료도 좋아했고, 베드로도 좋아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두 분의 신앙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분은 모두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고넬료는 어떻게 기도 생활을 했을까요?.
1) 고넬료는 항상 기도했습니다.(2절)
기도가 일상화되었습니다.
다니엘도 항상 기도했습니다.
2) 고넬료는 규칙적으로 기도했습니다.(3절)
유대인은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에 기도했습니다.
고넬료도 그런 규칙을 따랐습니다.
3) 고넬료의 기도는 상달하는 기도였습니다.(4절)
진심으로 한 기도, 진실하게 한 구제가 상달됩니다.
사람은 알아주지 않지만 상달됩니다.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4) 고넬료는 응답받는 기도를 했습니다.
5절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깊은 친밀감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어떤 기도 생활을 했을까요?
베드로도 규칙적으로 기도했습니다.
9절입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있을 때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있을 때나 규칙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는 성전에서,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서는 지붕에서 기도했습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두 분 모두 순종의 사람입니다.
고넬료는 즉시 순종했습니다.
7~8절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이루기 위해 경건한 사람을 부릅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나, 빨리 가는 사람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실한 종을 시켜 이삭의 아내를 찾도록 했던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도 깨닫고 나서 순종했습니다.
환상을 생각하고 있을 때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통해서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베드로는 로마 군인이며 이방인이 초청했기에 당황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으로 알았을 때 23절처럼 순종했습니다.
성령이 그 사람과 가라는 말에 순종했습니다.
두 분은 기도와 순종으로 닮았습니다.
기도와 순종은 신앙의 기초이고, 모든 신앙인이 가져야 할 덕목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기 전 이미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지금도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쓰고 계신 하나님을 뵙습니다.
고넬료와 같은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경건이란 무엇인가요?
2절입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하나님의 위엄을 높이는 태도입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며 경외감입니다.
2) 온 가족이 함께 경외했습니다.
경건성은 온 집안이 믿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이방신이 유대교의 신을 믿는 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신앙은 혼자는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 삶이 가족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존경받는 가장이었다는 겁니다.
3) 구제했습니다.
월급을 받는 군인인데 어려움 사람을 도왔습니다.
구제는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다비다의 경우도 선행과 구제가 가득한 사람입니다.
믿음과 선행이 있는 사람을 경건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엡 2:10절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셨습니다.
4)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했다는 것입니다.
진지하게 갈망했습니다.
5)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2절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주인 아브라함을 평가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중 가까운 사람들의 악평으로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경건은 종교적인 것으로만 축소시키면 안 됩니다.
경건은 인정받고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고낼료의 경건을 배워야 한다면 베드로가 가진 편견은 깨져야 합니다.
베드로의 편견은 환상에 대한 태도입니다.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봤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그릇이 내려오는데 유대인이 먹지 않은 짐승이 가득합니다.
음성이 들리는데 잡아먹으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자기주장을 합니다.
하나님과 다투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지만, 신앙의 뿌리는 유대 정통입니다.
그릇에 담긴 짐승은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 먹지 못할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했으니까 먹으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속되다며 먹기를 거부합니다.
이런 일이 3번 있고 난 뒤 그릇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베드로는 끝내 먹지 않았습니다.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은 누가 결정하는 건가요?
주님이 정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선하다고 선언하면 끝입니다.
나는 깨끗합니까?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면 끝나는 겁니다.
성과 속은 하나님이 정하신 겁니다.
환상이 해석되지 않는데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환상을 생각할 때 성령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의심하지 말고 가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짐승은 이방인을 가리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방인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 하나님이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라”고 말씀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자기가 본 환상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 한마디에 베드로가 이방인에 대해 그동안 지니고 있던 편견은 깨졌습니다.
알게 되었습니다.
편견은 교만의 다른 모습입니다.
편견을, 교만을 버리면 하나님의 역사가 이뤄집니다.
나도 죄인이었는데 용서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도 깨끗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 너도 더러운 사람인데 내가 깨끗하게 만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고넬로와 너와 똑같이 깨끗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편견을 꺾었습니다.
그 이후에 이방의 선교가 확 열리게 되었습니다.
유대주의에 갇힌 복음이 이방을 향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버티면 한참 돌아갈 것인데, 베드로가 편견을 버렸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방 땅 곳곳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편견이 깨는 것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는 편견이 많습니다.
마음속에 편견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안 됩니다.
저 사람은 더러운 사람입니다.
왜곡된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혹시 나에게 베드로와 같은 편견이 있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품지 못했구나, 편애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깊이 받아들일 때 편견은 깨집니다.
내가 그 사람보다 형편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편견은 깨집니다.
포용력을 가져야 합니다.
관용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고넬료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50KM 떨어진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여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아서 성령을 임하도록 했습니다.
고넬료에게 바로 성령을 부어주셔서 이방인 선교를 하지만 될 텐데, 이렇게 복잡하고 번거롭게 하시는 걸까요?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먼저 부르심을 입은 사람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먼저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에 동업자가 되도록 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윤서 선교사님이 은사를 찾아갔습니다.
교수님이 은퇴하면서 컴퓨터를 줬다고 합니다.
한 차 가득 컴퓨터를 실고 와서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시 선교지로 돌아가면서 후배 남목사님에게 처리를 부탁했습니다.
남목사님도 난처했습니다.
쓸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추방되어 인천에서 고려인 대상으로 선교를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고려인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들었습니다.
그 아들은 집에 컴퓨터 없어서 공부방에 여러 대의 컴퓨터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일로 통화를 하다가 이런 일을 듣고 컴퓨터를 수리해서 그곳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사도행전에서 고넬료와 베드로가 만나게 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일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고넬료와 베드로의 배후에서 치밀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일하심이 한 주 동안 체험하고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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