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8:1~13절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를 다시 본 기회가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하신 날 또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사울입니다. 나중에 바울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사울은 스데반 집사님의 죽음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사울은 당연한 죽음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함께 가말리엘학파에서 동문을 했을지도 모르고, 같은 헬라파 유대인 출신인데, 스데반의 집사님의 죽음을 마땅히 여겼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잘못된 열정이 한 인간이 얼마나 비인격적인 존재로 바뀌는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은 사울이 나중에 바울을 주로 불렸는데, 바울의 제자인 누가가 기록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 이야기도 바울로부터 들었을 겁니다.
누가는 존경하는 바울 선생님의 허물을 적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깎아내리기 위해서일까요?
그것은 아닐 겁니다.
바울 자신도 이때 있었던 일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적극적 22:19~20절입니다.
예수를 만나지 않은 열정은 사람을 죽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않은 열정은 복음의 진전을 막을 수 있습니다.
순식간에 사탄의 도구가 됩니다.
베드로가 멋진 신앙고백을 하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고난 겪는다고 하니까 베드로가 안 된다고 했을 때 예수님이 베드로를 향하여서 사탄아,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관점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내가 생각한 것은 다 옳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사울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 실수를 솔직하게 기록했습니다.
너무 솔직해서 이후에 모든 사건도 사실이고 진실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성경은 숨김이 없습니다.
고난이 찾아오면 마땅히 여기는 자와 애통하는 자로 나뉩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 박해가 심해졌습니다.
사도를 제외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경건한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경건한 자는 안타까워합니다.
스데반 집사를 장사하고 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용납할 수 없는 신성 모독의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은 일을 한 것이기에 슬퍼해 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경건한 사람은 용기를 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아리마대 사람 요섭이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합니다.
니고데모와 함께 장례를 치릅니다.
요한복음 19:38~42절입니다.
아리마대 요섭은 유대인이 두려워 숨겼고,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눈이 무서워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그들은 용기 있는 행동을 합니다.
슬픔을 당한 자와 함께 우는 경건한 사람에게는 이런 용기가 있습니다.
좋을 때 아닌 어려울 때 울어주는 사람이 경건한 사람입니다.
진리가 선포되면 3가지 상황이 일어납니다.
진리가 선포되면 나쁜 일이 어떻게 좋은 일이 될까요?
진리가 선포되면 첫 번째는 박해가 심해집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합니다.
초대교회는 2~30명 단위로 모이는 가정교회였습니다.
가정교회에 들어가 성도들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비웃거나 힘들게 합니다.
너나 잘 믿으라고 합니다.
심지어 화를 내고 미워합니다.
이런 모습은 가족 간에도 직장에서도 간혹 일어납니다.
관계가 나빠질 것을 염려해서 말을 그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겪는 현실입니다.
박해가 있을 때 도망가는 사람이 믿음이 있어 보일까요?
의연하게 맞서는 분이 믿음이 더 있어 보일까요?
아마도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맞서는 분이 더 믿음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주로 박해에 의연히 맞선 분들은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파 교인입니다.
우리들의 눈에는 더 믿음이 있어 보입니다.
참된 신앙은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박해를 피해 도망간 사람들은 비겁하게 보입니다.
박해의 자리를 떠난 것이 신앙의 배신자처럼 여겨집니다.
특히 빌립은 사마리아까지 도망을 갔습니다.
사마리아는 자연스럽지도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사마리아는 이방인과 똑같이 취급되었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는 박해자들이 쫓아오지 않을 곳, 겁을 먹고 도망을 갔다는 것입니다.
4절에 흩어졌습니다.
교회 꺾어지고, 밀렸고, 부셔졌습니다.
산산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말씀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설명이 안 되는 모순입니다.
그분이 살아계시니까 다른 삶의 방식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박해가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박해를 허락하셨고 그 박해로 언약을 성취해 가고 있습니다.
핍박을 도구로 삼아서 1:8절의 말씀이 성취되어 가고 있습니다. 음
11:19절에 이방 땅까지 복음이 전파됩니다.
박해는 있지만 복음은 전해집니다.
교회에서 어려운 일을 겪고 있습니까?
빌립처럼 도망가십시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일이 성취됩니다.
두 번째는 표면적 종교인이 생깁니다.
9절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방 종교의 사제로 마술로 백성들의 마음을 산 자입니다.
자칭 큰 자라고 합니다.
가짜는 크다고 합니다.
이단은 자기가 크다고 합니다.
내가 구세주다, 내가 메시야라고 합니다.
자칭 메시야 50명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낮은 사람, 높은 사람 다 이단을 따릅른다는 사실입니다.
시몬은 10~11절을 보면 타칭으로 능력 인정받았습니다.
실제로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헷갈려서 속아 넘어 갑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는데, 이방종교의 신의 능력입니다.
무당이 귀신의 능력으로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빌립이 자기보다 더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것을 봤습니다.
시몬은 놀라서 항상 가까이 쫓아다닙니다.
시몬이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거듭남으로 보면 안 됩니다.
의식을 행했다고 거듭났다고 보면 안 됩니다.
시몬은 단지 모시는 신을 바꾼 것입니다.
무속 신앙을 섬기는 자의 반응입니다.
옛날 신이 힘이 약하면 새 신을 받습니다.
이를 시몬 이즘이라고 부릅니다.
원하는 것을 받기 위한 종교 행위입니다.
18~19절에 돈을 주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종교 행위입니다.
그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옥에 가면 다 성경을 본다고 합니다.
도독이나 깡패도 감옥에 가면 성경을 본다고 합니다.
정치인도 감옥에 가면 성경을 본다고 합니다.
감옥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면서 목사가 된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목사가 된 분 중 일부는 목사가 되어 옛날의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정치적인, 개인적인 이익을 얻으려는 시몬이즘입니다.
시몬이즘의 가장 특징은 마음을 통회하는 회개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7~80년대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하면서 강남에 대형교회들이 들어섰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교회 다니면 복 받고 잘된다는 소식이 퍼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들었습니다.
주님을 이용해서 자기 것을 얻으려는 태도가 바로 시몬이즘입니다.
박해를 받아 흩어지는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
세 번째는 진정한 거듭남이 있습니다.
사탄은 흩어지니까 승리한 줄 알았을 겁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승리한 줄 알았던 것처럼 표면적으로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핍박을 도구로 삼아서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인 빌립 집사님이 등장합니다.
계획에도 없었고, 의도치 않았는데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에 큰 복음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도망자이고 겁을 먹은 빌립을 쓰셔서 하나님이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빌립 집사님은 사마리아에 가서 무엇을 했나요?
12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예수의 이름을 전했습니다.
6절에 이 말을 듣고, 표적을 봤습니다.
한 마음으로 빌립의 말을 따랐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놀라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놀란다는 단어가 9, 11, 13절에 나옵니다.
나쁜 놀람이 있고 좋은 놀람이 있습니다.
9, 11절은 나쁜 놀람입니다.
13절은 좋은 놀람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7절에 기적의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명하기 위해 보여준 기적입니다.
예수님이 복음 전할 때 눈, 귀, 귀신이 나갔습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빌립도 동일한 사역하고 있습니다.
8절에 나쁨이 큰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맛보았기에 큰 기쁨이 있습니다.
슬픔에 감추진 기쁨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났나요?
박해가 왔는데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안 좋은 상황이 벌어져도 복음이 전했습니다.
생명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 됩니다.
슬픔이 기쁨이 되도록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여러분 안 좋은 일이 있나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피하신 자리,
쉽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피하신 자리,
세상으로부터 상처와 어려움으로 인해 위로를 받기 위해 피하신 자리,
약하고, 힘이 없고, 비겁자이고, 실패자처럼 보이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곳입니다.
우리는 빌립입니다.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는 사마리아까지 도망간 빌립니다.
더 이상 쫓아오지 않을 곳으로 숨은 빌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빌립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이뤄 가십니다.
힘의 원리가 아닌 은혜의 원리로 그 뜻을 이뤄 가십니다.
더 말씀에 집중하세요.
더 주님께 가까이 가세요.
그러면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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