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8:26~40절
저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다양한 성품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사람을 만나도록 연결해 주시는 길 좋아합니다.
전혀 알지 못한 사람을 만나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도록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만나서 하나님 자랑하면서 살도록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게 하시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관리와 빌립 집사님의 만남입니다.
서로 일면식도 없고 만날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두 인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의 중계로 두 사람이 극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이기에 만나게 하셨을까요?
우리 신앙생활에도 이런 만남이 있길 기대합니다.
먼저 에티오피아 관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첫 번째로 예배자였습니다.
27절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사람, 간다게 여왕의 재무장관, 내시입니다.
능력, 실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알았을까?
흩어진 유대인에 의해서 알게 되었을 겁니다.
율법에 따라 생활하는 경건한 이방인으로 살았을 겁니다.
구글 지도로 보면, 대략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4천km 떨어졌습니다.
수레를 타고 갔지만 만만치 않은 거리입니다.
어렵게 예루살렘에 왔지만, 성전에 들어가지 못했을 검니다.
성전의 뜰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 남자들의 뜰과 유대인 여인들의 뜰, 그리고 이방인의 뜰입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사람은 내시입니다.
내시는 성전에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어렵게 허락을 받아서 들어갔다고 해도 이방인의 뜰에서 성전을 바라본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마당만 밟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하나님이 주목한 사람은 바로 예배자입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예배를 통해 은혜 받기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12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한 목적도 영원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겁니다.
에티오피아 관리는 세상적으로 다 가졌는데, 왜 예배를 드리나?
세상에서 채울 수 없는 예배로 채워지는 공간이 있습니다.
돈, 권력, 즐거움으로 채울 수 없는 예배만으로 채워지는 공간이 있습니다.
예배로 채워지지 않으면 허무한 삶만 남습니다.
혹시 예배를 드렸는데, 허전한 적이 있습니까?.
채워져야 할 마지막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오셔야 합니다.
예배의 열매는 기쁨입니다.
39절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만 나도 기쁘게 됩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에티오피아 관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두 번째로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헬라어로 된 구약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기원전 250~240경 애굽의 알렉산더에서 6년 동안 번역된 70인역입니다.
수레를 타고 내려가면서 읽은 말씀이 이사야서입니다.
28절입니다.
저는 차를 타고 책을 읽지 못합니다.
멀미합니다.
가마를 타고도 책을 읽으면 멀미한다고 합니다.
덜컹거리는 수레도 비슷할 겁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내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간증을 들었습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이 85세 말기암을 걸렸습니다.
장로님은 의사의 소견을 들어도 하나도 두렵지 않고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와 찬양을 했다고 합니다.
병원을 오가며 진료를 받는 중에 마음에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 성경 500독을 하고 오라”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때까지 300독 가까이 했다고 합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퇴원하면 하루 종일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한 해에 47독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채울 수 있을까를 생각도 했지만 5년에 걸쳐 500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500독의 거의 다 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목사님이 장로님에게 부탁했습니다.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 22장은 주일예배 시간에 온 성도가 함께 읽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500독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0일 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장로님의 소천이 전혀 슬프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지막 큰 축복되었다고 합니다.
순종하기 위해 말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말씀이 가르치는 뜻에 살고 싶어서 읽는 겁니다.
잘 모르지만 읽는 겁니다.
필요하면 깨닫도록 하십니다.
성경 통독하면 말씀을 알려줄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해결해 줄 겁니다.
이처럼 에티오피아 관리는 예배였고, 말씀을 사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빌립은 어떤 사람인가요?
첫째로 순종의 사람입니다.
빌립집사님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베드로도 사마리아까지 와서 인정해 주었습니다.
마술사 시몬도 따라다닐 정도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사마리아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부흥했다는 것입니다.
자리잡은 사마리아에서 할 일이 많은데, 갑자기 광야로 가라고 합니다.
어느날 천사가 남쪽으로 가라고 합니다.
사마리아에서 40~80킬로미터 떨어진 가사까지 내려가라고 합니다.
빌립의 입장에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광야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닙니다.
광야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습니다.
가라고 했는데,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27절에 일어나 갔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있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두 번째 말씀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빌립 집사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에 대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에티오피아 관리가 질문을 했을 때 말씀을 가르칠 실력을 갖췄습니다.
에티오피아 내시가 읽은 말씀이 32~33절이고, 이사야 53장의 내용입니다.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가 누구냐?
이사야나 타인을 가리키는 겁니까?
35절입니다.
빌립이 성경공부를 진행합니다.
흔들리는 수레가 성경공부장소가 됩니다.
단 한 번의 성경공부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본문이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이렇게 깨닫게 됩니다.
빌립은 성경의 그는 메시야이고, 벌써 오셨습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이사야서를 시작해서 예수까지 성경을 관통하여 가르쳤습니다.
말씀에 대한 신력이 스데반 집사님과 비슷합니다.
만약 우리가 생의 마지막 예배자에게 전해 줄 말씀이 있다면 어떤 본문이라고 생각합니까?
생의 마지막 예배자라면 가슴 속에 예수님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요한복음 3:16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가르쳐 준 본문입니다.
가슴 속에 예수님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성령에 이끌려 산 사람입니다.
스데반은 지혜와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29절에 성령이 빌립에게 수레에 가까이 가라고 합니다.
39절에 주의 영(성령)이 세례를 마친 빌립을 이끌어 갑니다.
빌립집사는 8장 이후 사라집니다.
그리고 21장에 등장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중에 방문합니다.
그에게 네 딸이 있는데, 성령이 충만하여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예언합니다.
빌립 집사가 얼마나 성령에 이끌린 생활 했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그는 평생 성령에 이끌려 살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우연의 연속입니다.
참 신기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연 속에 하나님의 섭리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티오피아 내시와 빌립집사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만나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길을 기쁘게 돌아갔습니다.
에티오피아 내시는 예수님을 가슴에 안고 돌아갔습니다.
빌립집사의 행적은 40절입니다.
4개 동사로 표현됩니다.
나타났다, 지나다니며(과정)이동, 전하고(행적)의미 있는 일, 이르니라입니다.
현재 에티오피아는 인구 1억 1,500만 명이고 면적은 한국의 11배 크기입니다.
기독교 62.8%입니다.
에티오피아 정교회가 43.5%, 개신교 18.6%, 가톨릭 0.7%입니다.
에티오피아의 기독교는 가장 큰 종교로 고대 악숨 왕국의 에자나 왕이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악숨 왕조(Aksum Dynasty)는 북아프리카의 고대 왕국 중 하나로 현재의 에티오피아 북부와 에리트레아 지역을 장악했던 악숨 민족에 의해 BC 4세기부터 AD 1세기에 세워졌습니다.
역사를 볼 때 에티오피아 내시의 역할로 기독교 국가가 된 것은 아닐까요?
우리교회가 이런 만남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예배와 말씀을 사모하고, 진리의 말씀과 성령에 이끌려 사는 사람의 만남입니다.
게다가 여러분들의 현실에서 이런 만남이 있길 바랍니다.
기쁘게 주님의 길을 갈 수 있는 이런 만남이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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