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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하나님이 주도한 인생

by ysong 2025. 10. 5.

사도행전 7:1~16

명절입니다.

그래서 오늘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그분의 설교를 들으려고 합니다.

그분은 바로 2천 년 전에 은혜와 지혜가 충만한 스데반 집사님입니다.

그분은 분노에 가득찬 사람들 앞에서 천사와 같은 얼굴로 설교하셨습니다.

그분의 설교를 들으면서 스데반의 담력과 지혜에 감동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어떤 설교를 했을까요?

일단 설교의 스케일이 크고요, 깁니다.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서 예수님으로 마치는 방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자들은 스데반의 설교를 구약 전체를 꿰뚫고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으로 이끄는 구속사적 설교라고 부릅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 사무엘, 열왕기를 걸쳐 예수님에 이르는 설교입니다.

9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1절에 대제사장이 사실이냐고 묻는데, 세상에는 사실이 있고, 진실이 있고, 진리가 있습니다.

사실은 왜곡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가짜 증인을 세워서 사실을 검증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사실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습니다.

증거나 검증을 통해서만 확인됩니다.

검증되지 않는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진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내면적인 표현입니다.

감성적이지만 인격에서 나오는 말을 가리킵니다.

진실한 사람이기에 그 사람의 믿을 수 있다고 합니다.

 

진리는 다른 차원입니다.

진리는 믿음으로만 인식됩니다.

진리는 신앙고백입니다.

생명의 부활로 새로 살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검증할 수 없지만 진리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믿음을 근거로 설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형들이라고 부르면서 시작합니다.

어르신들이라고 부르지만, 이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심문했던 대제사장 가야바, 율법에 박식한 공회원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마친 스데반 집사님은 60절에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합니다. 이 말에서 스데반 집사님의 진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를 진실하게 전했습니다.

진리는 진실함으로 전해야 합니다.

진리를 전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내용을 볼까요?

창세기 인류 일반역사를 다룬 1~11장을 빼고, 아브라함부터 시작했을까?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이 대단해서 택한 백성이 아니라는 겁니다.

 

스데반이 전한 설교를 통해 깨닫는 첫 번째는 신앙은 장소가 아니라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우르에 살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보였습니다.

이방신을 섬기는 갈대아우르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이방 땅에서 아브라함을 만났습니다.

거룩한 곳 성전이 아닌 이방 땅에서 만났습니다.

거룩한 성전을 거슬렀다는 고발에 대한 변론입니다.

하나님은 성전뿐만 아니라 이방 땅에도 계십니다.

 

47절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너희들이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머물러 계시는 작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49~50절에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장소와 불문하고 같은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이방 땅에서 믿음을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안정된 삶을 버린 순종입니다.

3~4절입니다.

믿음은 떠남으로 시작됩니다.

떠남은 의지하던 것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고난입니다.

아버지는 가지 않고, 아들은 갔습니다.

순종이 갈라짐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헤어집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쉽게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로 놀라운 표현을 발견하게 됩니다.

스데반은 4절에 아브라함의 순종을 하나님이 옮기셨다고 표현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한 것 같은데, 하나님이 옮기셨습니다.

 

우리가 순종한 것 같은데,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순종으로 자리로 옮기셨습니다.

 

스데반이 전한 설교를 통해 깨닫는 두 번째는 신앙은 주어가 바뀌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갖고 있습니다.

믿음은 나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나를 찾아온 사건입니다.

3절부터 인생의 주어가 바뀜니다.

내가, 하나님이, 옮기셨음, 주신다고 약속하셨음, 내가 등 하나님이 주도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식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끌고 계십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기는 것뿐입니다.

맡기고 순종하는 방식이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시는 길을 따라가는 방식입니다.

 

힘들게 왔는데, 하나님이 옮기셔서 왔는데,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따르는 다른 한편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5절에 많이 지칩니다.

땅을 주지 않았습니다.

약속만 주셨습니다.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발붙일 땅이 없습니다.

후손에게 약속했는데 자식이 없었다.

내 현실은 이뤄진 것이 없어 보이지만 약속을 주십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입니다.

믿음의 여정입니다.

내 현실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불합리해도, 의심이 들어도 끝까지 따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짐승을 쪼개서 언약을 맺습니다.

쪼개진 짐승 사이로 하나님만 지나가십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신다는 표현입니다.

언약의 표식으로 할례를 명합니다.

할례는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신다는 증표입니다.

평생 남도록 신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쪼개라, 언약은 엄중하다고 주신 예식입니다.

하나님만 믿고 따르라고 주신 증표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증표들이 있죠?

그 증표들을 보면서 약속을 믿고 주님을 따라가시길 바랍니다.

 

스데반이 전한 설교를 통해 깨닫는 세 번째는 하나님은 팔린 자와 함께 합니다.

아브라함을 이어 이삭과 야곱을 건너뛰어 요셉을 이야기합니다.

무엇을 드러내고 싶어서 요셉으로 바로 갔을까요?

형들의 시기심으로 팔린자가 된 요셉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조상이 요셉을 시기했습니다.

 

팔린 자의 하나님입니다.

요셉이 주인공인데, 팔린 자가 됩니다.

그런데 9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세상은 팔린 자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노예와 함께 하십니다.

너희들은 시기심이 가득하여 예수를, 나를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예수님도 팔린 자입니다.

가장 가까운 제자에게 팔린 자입니다.

그러나 모든 믿는 자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팔린 자 같고 연약한 자 같으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팔린 자에게 주시는 열매가 있습니다.

10-하나님이 환난에서 건져내사, 은총과 지혜를 주시고,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

3개의 동사가 우리에게도 해당 됩니다.

팔린 자가 된 스데반은 은총과 지혜를 받았습니다.

 

요셉은 팔린 자가 되어 고난을 받았습니다.

먼저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응할 때까지 고난은 계속되었습니다.

말씀이 단련합니다.

고난은 언약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형제들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열방을 다스리는 복의 통로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나그네로 삽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삶의 대한 표현입니다.

14-가족 이야기를 계속 꺼냅니다.

풍요한 나라에 잘 살았다고 끝나야 하는데, 다 죽었다는 것으로 창세기를 정리합니다.

16절에 죽어서 세겜에 묻었다는 겁니다.

세겜은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대제사장과 공회원이 보기에 세겜은 사마리아의 땅입니다.

성전 마당에 묻힌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부정하다고 한 사마리아에 묻혔다는 겁니다.

아브라함, 야곱, 후손도 사마리아에 묻혔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려주마, 찬된 신앙은 거룩하다고 한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동행을 기초로 살아간다는 겁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는 우리가 늘 듣던 주제의 설교입니다.

순종, 주도권, 팔린 자란 주제로 전해진 진리는 이처럼 밋밋하게 보입니다.

2천 년에 들었던 말씀, 오늘도 듣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설교로 복음이 폭발한 예루살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 출발이 스데반의 사건입니다.

이방인으로 넘어가는 역사의 진전이 스데반으로 시작됩니다.

천사의 얼굴과 같은 사람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스데반과 같은 헌신으로 여러분들의 가정이 폭발적으로 은혜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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