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11절
어머니의 완곡한 재요청을 수용한 것은 하인들 앞에서 어머니의 권위를 존중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에 ‘유대인의 결례대로’, ‘돌항아리’둘이 줄지어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식사 전후에 손뿐 아니라 그릇들을 닦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례를 게을리 하는 것을 끔찍한 무지 혹은 뻔뻔스러운 불경건의 표시로 간주했습니다.
왜 결례 의식에 사용하는 돌 항아리이었을까요? 그것은 결례가 유대인의 옛 의식질서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더 나은 것으로 그 옛 것을 바꾸려 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심으로 어떤 일을 하시기 위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후 이 사실을 요한복은 6:55에 설명하고 있는데,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영생을 위한 참된 음료를 제공하기 위해 오신 목적을 알려줍니다.
두세 통은 38리터로 흔히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18리터짜리 두 개의 용량입니다.
누가 항아리에 물을 채웠습니까? 누가 물을 퍼다 주었습니까? 누가 연회장에게 물을 갖다 주었습니까? 예수님은 말씀만 하셨고 그 일을 행한 사람은 그곳에서 일하는 하인들이었습니다. 7,8절입니다.
하인들의 태도는 우리들에게 믿음의 도전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가져다 줄 것을 지시하신 것입니다. 연회장은 잔칫집에서 제일 먼저 음식이나 포도주를 시식 혹은 시음하는 주빈입니다.
여기부터 문제였습니다. 연회장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 아니라 포도주인 반면 예수님께서 가져가라 하신 것은 포도주가 아닌 물이었습니다. 연회장으로부터 호통당할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두말없이 순종하였습니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합리적으로 납득되지는 않았지만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연회장에게 가는 동안 물이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포도주로 변한 것은 ‘떠 온’물이었습니다.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물이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순종하는 동안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 동안 주님이 일하심으로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표적을 이루시는 방법입니다. 표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발생합니다. 이것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한 믿음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기적이 완성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절은 표적의 의미에 대한 사도요한의 해석입니다. 표적은 상징입니다. 표적은 손가락입니다. 가리키는 대상이 있습니다. 표적의 내용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표적을 통해 믿게 된 자들은 결국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선은 소수의 측근들에게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셨습니다. 세례요한의 현장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들은 이 표적을 통해 예수님이 메시아를 사실을 믿었습니다.
결핍은 하나님께 매어 주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은 여기까지입니다. 본문으로 설교를 준비하면서 결핍이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짐이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결핍은 은혜의 현장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핍은 채워지는 은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합니다. 남양주성실교회에 공간이 부족합니다. 그나마 작은 결핍을 채우는데 있어서 집사님들의 헌신과 사랑, 성도님들의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부족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신앙의 행복을 누립니다.
요즘세대는 결핍을 견디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제가 수요일마다 직원신우예배를 인도하는 대학이 있는데, 기획처에서 근무하는 직원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청일전쟁을 치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취업을 하고 2개월도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결핍을 견디지 못함이라고 합니다. 풍족하고, 쉽고 편한 것만을 원하는 요즘 시대정신이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 분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할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견디면서 채워지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과연 모든 것으로 채워져 결핍을 모르는 사람은 행복할까요? 솔로몬은 모든 것이 채워진 사람입니다. 경제, 권력, 지식, 사람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채워진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결핍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핍을 모르는 솔로몬이 평가한 인생은 헛되고 헛되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핍함이 없도록 인도하시는 분이지만 때로 우리에게 꼭 필요함에도 결핍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 결핍이 나를 짓누를 수도 있고, 주눅 들게 할 수도 있지만 그 결핍은 우리를 하나님께 묶어 주는 훌륭한 도구가 됩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같은 남편을 두고 있는 브닌나가 자식을 순풍 순풍 낳는 것을 보면, 한나는 자기에게 틀림없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핍이 한나로 하여금 하나님 전에서 통곡의 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간구로 인해 그녀는 사무엘을 얻었고, 그가 사사시대의 문을 닫고 왕정시대의 문을 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이 신광야에 이르렀을 때, 그곳은 풀 한포기 없는 불모지였습니다. 그 결핍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그들은 결핍으로 가득한 신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13년 동안 도망자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광야는 결핍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그 현장에서 쓴 다윗의 시편은 은혜로 가득했습니다. 찬송과 감사로 가득했습니다. 다윗은 결핍의 현장인 광야에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핍은 은혜의 현장입니다. 결핍은 감사, 찬양을 배우는 교육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을 친히 경험하는 복된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가나에서 혼례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혼례에는 일주일 동안 잔치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잔치 중간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께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핍이 있었던 그 가나는 예수님의 공생에 중에 행하신 첫 표적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요즘 결핍의 문제로 힘듭니까? 결핍은 은혜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채울 수 없는 결핍의 상태입니까? 그 결핍은 주님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삶의 위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다른 것으로 내 인생의 것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그 결핍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종식되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끝나는 곳 바로 그 곳에서부터 주님의 능력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가나의 혼인잔치는 우리들에게 교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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