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8:1~8
오늘은 지나간 1년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또한 오늘은 교회설립 12주년을 맞이한 주일이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닌데, 추수감사주일과 교회설립일 겹쳐서 두 배로 감사를 드리는 것 같습니다.
누가 감사하면서 살까요?
진정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안미경 집사님이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곳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많은 노인분들이 있는데, 딱 한 분만이 감사하다,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합니다.
그 어르신은 감사가 습관이 되어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윗은 감사가 습관이 된 분입니다.
다윗은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입니다.
13년 동안 도망자로 살았고, 내일이 없는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따라다녔습니다.
부족한 것들로만 가득했습니다.
왕이 된 이후에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자식들로 인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감사가 조건의 열매라면 다윗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고, 인생을 찬양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주변에 유독 걱정, 근심, 불안을 많으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도 감사할 수 있을까요?
다윗의 영성에서 배우시면 가능합니다.
다윗은 어떻게 감사했는가를 138편은 잘 보여줍니다.
다윗은 1절의 말씀처럼 전심으로 주께 감사했습니다.
다윗은 마음에서 우러난 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온 마음을 드려 감사했습니다.
신들 앞에서 감사 찬송했습니다.
여기서 신들은 이방신을 가리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없으면 불안하게 하는 돈, 명예, 인기, 인맥 등등입니다.
다윗은 그런 우상들 앞에서 하나님께만 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다니엘도 다윗처럼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다니엘 6:10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을 시기하는 고관들이 왕에게 이런 청원을 했습니다.
30일 동안 왕 예외 다른 신에게 절하면 사자 굴에 던지라는 청원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을 음해하려는 의도를 알고도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세상의 왕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전도를 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바울은 매를 맞았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찬송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기에 큰 소리로 찬송합니다.
전심으로 감사한 것입니다.
어떤 확신이 있기에 이렇게 점심으로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2절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감사의 근거였습니다.
인자(사랑)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입니다.
다윗은 일생동안 경험한 하나님의 성품이 감사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자체가 감사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환경이나 조건이 감사의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7절에 인생의 환난 날에 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환난 날에 인자하시고 성실하신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자신을 살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변해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영원하고 대대에 이르기까지 동일하십니다.
한결같이 우리들을 보살피고 대하십니다.
다윗은 감사의 근거는 철저히 하나님이었습니다.
전심으로 감사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감사하는 사람인 동시에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감사와 기도는 한 묶음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범사에 감사함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도에 자리에서 지혜를 주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무엇을 주는 줄 아십니까?
3절에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합니다.
고난과 환난은 하나 넘어가면 또 옵니다.
염려와 걱정은 죽을 때까지 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감사로 바꿀 수 있나요?
하나님이 내 영혼에 힘을 주어 이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능력을 줍니다.
그래서 은혜를 알게 합니다.
은혜가 감사입니다.
기독교인의 감사는 받은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의 감사는 은혜를 흘려보내서 타인이 감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신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감사는 자라갑니다.
감사하다고 다니시는 어르신이 하루아침에 감사하게 되었을까요?
하루아침에 감사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감사도 아이가 성장하는 것처럼 자라갑니다.
아이들이 키가 자라듯이 감사의 양이 많아집니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감사하게 될 때 감사가 많아집니다.
새벽에 나올 때 상쾌함, 하루를 예배로 시작할 수 있는 건강과 시간, 잠을 잘 잘 수 있는 숙면, 매일매일 변하는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성도님뿐만 아니라 지인들의 크고 작은 감사에 함께 감사하는 것 등등
작은 것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면 너무나 감사할 것이 많아집니다.
그러면 일들이 일등의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주변을 보면 감사할 조건으로 가득한데 감사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툭하면 죽겠다고 하면서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비교는 감사하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품꾼의 비유가 알려주는 지혜입니다.
똑같이 하루 일당인 한 데나리온 받았습니다.
그러나 원망과 은혜로 갈라집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이 되었습니다.
첫째가 꼴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비교하지 마세요.
그러면 불행해집니다.
자신이 비참하게 보입니다.
나만 힘들게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에게 가끔씩 비교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충분히 하나님을 알고 있고, 행복하다고 선포합니다.
내가 목사가 되어 사람이 된 것으로 충분하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면 비교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주님의 사랑이 채워집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대체 무엇을 감사하시겠습니까?
풍성한 추수와 넘치는 소득을 감사하시겠습니까?
비록 실패와 좌절, 아픔과 고통이 있었을지라도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통해 주님을 바라보고 따르게 해 주셨음을 감사드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계획이 무산되었습니까?
여러분들의 건강이 흔들렸습니까?
그러나 그로 인해 여러분의 영혼이 더 분명하게 깨어났음을 감사드려야 합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바른 믿음이요 성숙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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