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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무엇을 추수하길 원하십니까?

by ysong 2022. 11. 27.

룻기 2:8~13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합니다.

청학리도 알게모르게 10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바뀌었습니다.

별내동이 생기고, 별내동에서 청학로로 들어오는 길이 2차선에서 6차선으로 바뀌었습니다.

수락산의 그 많던 음식점이 사라지고, 청학빌리지로 바뀌었습니다.

 

10년 전에 세워진 남양주성실교회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렸던 신앙이 이전 견딜 수 있는 믿음으로 커 갔습니다.

작은 고난과 성공에 쉽게 넘어지던 신앙이 이젠 묵묵히 걸어가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조금 성장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목사에 되어 주님을 섬기면서 감사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는 깨달음입니다.

고난과 감사가 함께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광야를 통과하고 첫 번째 추수감사절과 같은 장막절을 지낸 이스라엘백성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드린 추수감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사랑하는 이웃을 하늘나라에 보내고, 어렵게, 인디언의 도움을 받아 첫 수확한 곡식을 나누는 감사였습니다. 청교도들도 혹독한 시련을 통과한 후 진정한 감사를 배웠고, 감사를 나눴습니다.

고난이 닥치면 커피처럼 변하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한 젊은 딸이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고민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어머니가 딸을 데리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첫 번째 냄비에는 당근을,,두 번째 냄비에 달걀을, 세 번째 냄비에는 커피를 넣었습니다.

각각의 냄비에 물을 붓고서 한동안 끓인 후에 어머니는 딸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 세 가지 사물이 다 끓는 물이라는 고난에 처하게 됐단다.

그렇지만 세 종류의 물질은 뜨거운 물에서 전부 다 다르게 반응했단다.

당근은 처음엔 단단하고 강하고 단호했지, 그런데 끓는 물과 만난 다음에는 부드러워지고 약해졌어.

달걀은 연약했단다. 껍질은 너무 얇아서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보호하지도 못했단다.

그렇지만 달걀은 뜨거운 물을 견디어 내면서 그 안이 단단해 졌지.

그런데 커피는 독특했어. 끓는 물에 들어간 커피는 아무 능력이 없는 가루가 끓는 물에 들어가서 물을 변화시켜 버린 거야."

어머니는 딸에게 물었습니다.

"힘든 일이나 고난이 너의 문을 두드릴 때 너는 어떻게 반응하니? 너는 당근이니, 달걀이니, 커피니?"

 

모든 고난을 견디는 태도입니다.

고난은 당근처럼 단단한 사람을 부드럽게 합니다.

고난은 달걀처럼 깨지기 쉬운 사람을 단단하게 합니다.

고난은 커피처럼 모두를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만약 당신이 커피와 같다면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독특한 향기와 풍미를 내며 주위 환경까지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고난이 있어야 진정한 감사를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이번 추수감사절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더 알게 된 감사에 대한 깨달음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감사는 수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전지하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내가 병들은 것도, 내가 실패한 것도, 내가 초라해진 것도, 내가 어려움을 겪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겪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허용으로 진행된 것입니다.

욥의 고난을 하나님이 허용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 때 조금 신경 써 주시면 주셨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 듭니다.

여기서 멈추면 감사를 할 수 없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생각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능력으로 나를 인도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주관하시어 섭리로 이끄신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면 또 다른 시선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수용으로 시작됨을 알게 됩니다.

 

감사는 자라갑니다.

감사도 아이가 성장하는 것처럼 자라갑니다.

아이들이 키가 자라듯이 감사의 양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감사하게 될 때 감사가 많아집니다.

새벽에 나올 때 상쾌함, 하루를 예배로 시작할 수 있는 건강과 시간, 잠을 잘 잘 수 있는 숙면, 매일매일 변하는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성도님뿐만 아니라 지인들의 크고 작은 감사에 함께 감사하는 것 등등

작은 것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면 너무나 감사할 것이 많아집니다.

 

연예인 션이 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어느날 앞 차가 끼어들어서 사고가 날 뻔 했다고 했습니다.

간신히 피하면서 입에서 나온 말이 감사합니다였다고 합니다.

션이라는 분은 감사가 몸에 밴 사람입니다.

감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자라갑니다.

 

어떻게 감사가 자랄 수 있을까요?

감사의 기준이 하나님과 관계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되든 못되든 관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재자체를 사랑합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이 앞에 어떤 존재인가를 바르게 인식할 때 감사는 자라갑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들은 무엇을 추수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엘리멜렉이 있었습니다.

흉년이 들었습니다.

가족을 데리고 모압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엘리멜렉은 오래 살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두 아들은 장가를 보냈습니다.

불행하게도 장가를 간 두 아들은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나오미는 남편을 잃고 두 아들마저 잃었습니다.

부모가 기쁨이라는 이름의 나오미로 지어주었는데, 불행이 계속되었습니다.

어느날 고향에 먹을 것이 풍족해 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합니다.

두 며느리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을 합니다.

자신과 함께 가면 두 며느리는 불행한 인생이 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며느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둘째 며느리인 룻은 시어머니외 함께 있게 됩니다.

 

룻에게 예루살렘은 이방도시이며 낯선 땅입니다.

오직 시어미니만 보고 온 길입니다.

그가 시어머니와 함께 하게 된 것은 룻의 신앙이었습니다.

시어머니로부터 알게 된 하나님을 섬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오미는 불행한 인생이었지만 며느리에게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베들레헴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맞이한 룻의 첫 번째 추수입니다.

추수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어째든 첫 번째 추수입니다.

룻의 첫 번째 추수는 보아스의 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이삭을 주었습니다.

 

보아스가 룻의 행동을 지켜봤습니다.

보아스는 룻의 아름다운 선행을 들었습니다.

보아스는 일하는 일꾼들에게 일러 룻이 곡식을 충분히 줍도록 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런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넵니다.

11~12절입니다.

나는 그대가 남편을 잃은 이후로 시어머니에게 한 일을 모두 들었네. 그리고 그대가 어떻게 부모가 있는 고향을 마다하고 이 곳 낯선 땅에까지 와서 살고 있는지도 다 알고 있네.

12.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대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시기 원하며 그분의 보호를 받고자 온 그대에게 풍성한 상을 주시기 원하네

보아스의 이런 표현은 룻의 결심을 신앙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룻과 보아스는 어떤 추수를 했을까요?

룻의 첫 번째 추수는 사랑이었습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먹고 살기 위한 사랑의 추수였습니다.

그렇게 보입니다.

사랑하니까 함께 왔고, 사랑하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밭에서 이삭을 주었습니다.

사랑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룻의 사랑은 현숙한 여자인 것을 온 성읍 백성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보아스의 추수는 무엇일까요?

사람입니다.

룻이라는 여인을 추수하게 됩니다.

이후 보아스와 룻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둘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게 됩니다.

모두 사람 추수입니다.

보아스와 룻은 다윗의 조상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형통을 통해 이 땅에 오십니다.

 

상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소상은 돈을 남기고 대상은 사람을 남긴다는 대사입니다.

이들의 추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것이 아닙니다.

작지만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엔 큰 밭에 이삭을 줍는 여인에 불과했습니다.

홀로된 시어머니를 위해 나선 착한 여인에 불과했습니다.

사람의 눈이 아닌 신앙의 눈으로 추수는 이렇습니다.

룻의 신앙, 보아스의 신앙은 닮아 있습니다.

낮은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 낮은 곳에서 아름다운 추수를 하고 있습니다.

 

적용) 나는 어떤 추수를 꿈꾸고 있나?

타인을 위한 추수입니다.

헌신과 사랑의 추수입니다.

시인은 이스라엘백성들이 감사할 것을 노래했습니다.

시편 136편 전체가 감사의 내용입니다.

“23.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4.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5.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6.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백성은 창조주 하나님을 감사했고, 구원주 하나님을 감사했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나의 인생을 이끄심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생각하지 못한 인생의 추수를 거둘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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