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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단점을 용납해 주는 공동체

by ysong 2024. 9. 3.

로마서 15:1~13

그동안 한국교회는 구원만을 강조했습니다.

예수 믿어 천당이 단편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오죽하면 10원도 아닌 9원을 받으라고 하느냐는 농담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구원만을 강조한 한국교회는 큰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삶이 따라오지 않는 교인을 배출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데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로마서를 살펴본 결과 로마서가 구원만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구원받은 성도의 삻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신 뜻을 분별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틀림이 아닌 다름을 해결하는 방법까지 다양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야 온전한 구원을 이루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겁니다.

제가 진심으로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무엇일까요?

교회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3위 일체 하나님이 한 분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17:21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은 의무나 목적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가 되는 방법으로 밥을 같이 먹었습니다.

오죽하면 음식을 탐하는 자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성만찬이 대표적인 밥 먹자입니다.

포도주와 빵을 나누며 이것은 내 피라고, 이것은 내 몸이라고 하면서 하나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섬김과 사랑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하나가 되는 곳에는 섬김이 사랑이 잇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어부로 돌아갔을 때 아침 조반을 차려주며 밥 먹자라고 했습니다.

그 자리가 위로의 자리, 회복의 자리였습니다.

하나가 되는 과정에는 위로가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삭개오의 집에서도, 나사로의 집에서도 심지어 바리새인의 집에서도 밥을 같이 먹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공동체는 밥을 같이 먹는 식구입니다.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가장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넘어 이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의견 대립과 다툼도 있는데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우리와 작은 공동체도 사는 곳도, 가진 것도, 생각도, 살아온 길도 다릅니다.

정치적인 이념도,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 세계관도 다릅니다.

그런데 바울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데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첫 번째 방법은 1, 7절입니다.

교회 안에는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있습니다.

로마교회에서 믿음이 강한 자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입니다.

다수를 차지했고, 고기와 절기에 얽매이지 않는 성도들입니다.

약자 자는 유대인 그리스도입니다.

겉으로 보면 경건한 생활을 하는 이들입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담당해야 합니다.

여기서 담당한다는 것은 내가 짊어진다는 뜻입니다.

자부심만 내세우지 말고, 약한 자의 짐을 짊어져야 합니다.

내가 할게, 쉬고 있어요.

요즘 직장생활에 힘들었죠, 제가 할께요.

마음이 힘들었죠, 쉬면서 은혜를 받으세요.

 

냉장고를 1층에서 지하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저의 지인 목사님 부부 중에 해 주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서는 분이 있습니다.

나눠주고, 위로해 주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분입니다.

그분이 직접,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삼성서비스센터에 전화해서 알아봐서 이렇게 처리가 된 것입니다.

저의 약한 부분을 담당해 주었습니다.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의 짐을 나눠서 짊어져야 오래 갈 수 있습니다.

가정이든, 교회이든, 회사이든, 관계에서 약한 자의 짐을 짊어질 수 있는 강한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7절에 서로 받아야 합니다.

영접하라, 허락하라, 교제하라, 용납하라입니다.

어떻게 해요?

에베소서 4:2절이 힌트를 줍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겸손, 온유, 오래 참은,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는 것입니다.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비판하거나 업신 여기지 않고 그럴 수 있지 용납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용납하면서 키우는 것입니다.

한 번 실수로 내치는 것이 아니라 용납하고, 또 용납하고 해서 결국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길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믿음이 강한 사람이라는 분들이 이래라저래라하므로 상처받습니다.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강한 게 아니라 약함입니다.

진짜 강함은 용납하는 것입니다.

조용히 같이 짐을 져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이렇게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자기를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1~2절을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땅의 대부분 사람은 자기를 기쁘게 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웃을 기쁘게 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타인의 기쁨을 위해 살아 보세요?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는지, 어떤 기쁨이 뒤따라오는 오는지 꼭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타인을 도와주었을 때 기쁨은 자기를 위한 기쁨의 몇 배입니다.

그 기쁨을 알기에 섬기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웃의 기쁨을 시작하다가 그 기쁨을 잃으면 자기의 기쁨, 자기의 위치, 자기의 명예를 위해 살게 됩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3절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찬양 중에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의 제목의 찬양이 있습니다.

후렴에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전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할겁니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5~6절입니다.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줍니다.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13절은 바울의 축복기도인데, 같은 의미입니다.

 

비전을 함께 공유하게 합니다.

오래만에 우리교회 비전을 볼까요.

바울의 꿈, 바울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어떻게 하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한 뜻, 한 믿음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바울은 오직 복음, 오직 십자가, 오직 부활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8절과 9절의 말씀처럼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해 유대인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방인에게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즐거움이 아니라 약한 자와 그의 약점을 짊어지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던 것처럼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가 될 수 있는가?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가 되는 것을 우리는 지켜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 여러분의 관계가 하나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교회가 강한 자가 약한 자의 담당하고, 용남해서 하나가 되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 서로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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