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14~21절
로마서를 통해 복음에 대해서 더 확고해진 기회가 되었길 바랍니다.
로마서는 크게 세 덩어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인간은 죄인으로 구원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세 번째는 관계가 회복된 구원 받은 백성은 하나님과 교제하면 삽니다.
함께 살면 닮아가듯이 하나님을 닮게 됩니다.
이것이 진리이고 신앙의 길입니다.
한 번 살아보세요.
오늘 말씀은 바울의 개인적인 간증의 시간처럼 보입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다 하고 난 후에 커피를 마시면서 로마교회에 자신을 소개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믿음에 의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신이 어떤 삶의 목표로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간증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로 정했습니다.
저는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살아가는 이유들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한 때는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 목표도 시들해지면서 돈을 버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젠 사람을 살리는 어부, 주님의 양들을 섬기는 보더콜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목표가 정해지니까 돈을 모으는 이유도, 사람과 더불어 사는 이유도 조금 정리가 되었습니다.
최근에 은혜를 받은 찬양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어부입니다.
밤이 맞도록 수확도 없는 지친 어부에게 주님은 찾아 오셨네
깊은 바다로 너는 나아가 그물을 던져라 그 음성에 순종했네
이전에 없던 놀라운 일을 이루어주셨네 주님 오늘도 그때와 같이 그 일 행하시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되게 하리 저 죽어가는 영혼 살리는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되게 하리
사람을 살리는 어부 주님 오늘도 말씀하시네 네 그물을 던져
죽어가는 영혼 살리라 보잘것 없는 내게 주시는 그 음성을 듣네
그 음성에 순종하리 갇혀있던 자 상한영혼을 일으켜주셨네
주님 오늘도 나를 통하여 그 일 행하시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되게 하리
저 죽어가는 영혼 살리는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되게 하리 사람을 살리는 어부
바울은 어떤 인생의 목표를 행해 살았을까요?
바울도 한때는 당대 최고의 바리새인이 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소에서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당대 최고의 학파인 가말리엘 학파에 입학했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는 방법으로 기독교인을 박해했습니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이후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이 16절입니다.
바울은 은혜로 살아가는 법을 알았습니다.
이전에는 모든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죄의식만 가득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은혜로 살게 되었습니다.
은혜 속으로 들어가니 살아가는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 가장 행복한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일꾼(종)입니다.
사람에게 속한 일꾼도 있고, 돈에 속한 일꾼도 있고, 명예에 속한 일꾼도 있습니다.
이들도 뼈를 갈아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누구의 일꾼이냐가 중요합니다.
소속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인생을 살다가 소속이 바뀌었습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모세의 젊은 시절은 바로의 왕궁에 소속되었습니다.
왕궁에 소속되어 최고의 학문을 배웠습니다.
최고의 무술과 기능을 배웠습니다.
왕궁에 소속됨으로 주어진 높은 지위와 권력과 힘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왕궁에 소속된 모세는 스스로 의로운 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능력으로 고난을 당하는 동족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권력과 재능으로 동족을 해방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백성은 모세의 도움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자신들과 소속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며 자신들은 모세와 다른 소속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모세와 바울은 외형적으로 출세한 자리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스스로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게 하는 왕궁과 바리새인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속한 소속은 자기의 능력으로 인생을 충분히 꾸려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모세와 바울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소속이 바뀌었습니다.
모세는 아무것에도 소속되지 않은 광야에서, 실패자의 인생에서 타지 않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께 소속되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모세는 하나님의 종으로 민족을 구원하는 일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석을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 소속되어,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소속이 바뀐 그들은 성공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영원하신 진리되신 예수님에게 소속된 이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화려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민족을 구원하고, 이방인을 전도하는 예수님의 일꾼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권력에 소속된 대제사장은 요 18:12~13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예수님을 결박하여 제거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소속된 바울은 갈 6:14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처럼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영원하지 않는 권력에, 돈에, 명예, 쾌락에, 시기와 질투에, 죄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이젠 소속이 바뀌는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영원하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에게 소속되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는 제사장의 직분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동물을 잡아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살아 있는 것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베냐민 지파이기에 레위지파만 제사장이 되는 법에 어긋납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를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불렀습니다.
복음의 제사장은 지파가 없습니다.
불신자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입니다.
죽어 있는 영혼들을 살도록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도록 하나님께 드리는 복음의 제사장입니다.
죽은 사람이 사는 것이 기적입니다.
그 기적을 일으키는 통로가 복음의 제사장입니다.
바울은 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로마서 11: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그래야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제사장입니다.
이 사실이 확고해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복음의 제사장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칭찬하고 말씀이 생각나게 해야 합니다.
14~15절입니다.
멀씀이 가득차게 해야 합니다.
가득차면 흘러넘칩니다.
그러면 권하게 됩니다.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교만하지 않도록 말씀을 생각나게 해야 합니다.
이방인을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18~19절입니다.
이는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뤄졌습니다.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하면 이 역사는 지금도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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