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둠 속에 빛이 되는 교회
  •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교회
로마서

섬김이 복됩니다.

by ysong 2024. 8. 4.

로마서 12:3~8

이 세대를 따르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자로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진짜 행복입니다.

 

우리 주변에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 생각과 가치관, 행동이 바뀌는 것을 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출세하겠다는 마음으로 이전과 다르게 독함 마음을 품기도 하고, 태도와 행동이 바뀌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생각과 마음이 바뀐 목적이 무엇일까요?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2절에서 말하는 분별은 억울하게 당해서 변한 사람과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목적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살기로 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12:3~15:14절까지가 그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3가지의 실천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3절은 분별하는 출발점입니다.

하지 말고와 하라를 대조하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지 말라고 했나요?

첫 번째인데요, 3절의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을 품지 말고입니다.

먼저 눈을 안으로 돌려 나의 분수를 알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과대(과소)평가하지 말라고 합니다.

스스로를 돌아보아서 분수에 맞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분수를 아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분수를 잘 몰라요?

인류 최초인 인간인 아담이 그랬습니다.

아담은 분수에 맞지 않게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고 그분의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이 마땅히 생각할 것입니다.

분수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한 아담은 하나님과 갈등하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을 품지 말라고 했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분수를 모르기 때문에 싸우고, 다투고, 갈라지고, 힘들어 합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자신도 고통이고, 소속된 사람들도 고통입니다.

제가 교회를 막 개척했을 때, 아내가 가끔 성실교회를 흉내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자꾸 큰 교회를 흉내 내면 실수를 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분수에 맞지 않은 나의 생각을 봤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그것이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이젠 저의 분수를 조금 알아가고 있습니다.

 

분수에 맞는 생각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산 제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빛과 소금은 제물의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자신을 태워서 주변을 밝히 비추고, 자신을 녹여서 맛을 냅니다.

분수에 맞는 생각은 주님께 드려진 산 제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수는 출생과 계급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의 많고 적음도 아닙니다.

분수에 맞는 것은 이만큼만 채워지면 행복하고,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충분해,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충분해,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직장이 있으면 충분해, 하나님이 작은 공간을 채우도록 도와주시면 충분해.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면서 살게 됩니다.

 

두 번째는 믿음의 분량대로(척도에 따라) 분수에 맞게 생각하라입니다.

믿음이 좋고 나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에 따라서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척도에 따라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6절이 답입니다.

믿음의 분량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 은사를 아는 것이다.

은사는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특별한 은혜로 받은 것이 은사입니다.

재능도 있고, 교육을 통해 발견되기도 하고, 상황의 기회를 통해 얻게 되기도 합니다.

은혜로 받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받은 영적 은사의 성격을 알고 은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사람의 몸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4~5절의 말씀입니다.

몸은 하나입니다.

몸에는 여러 지체가 있습니다.

, , 머리털, 여러 장기가 있습니다.

손이 아프면 손만 아픈 것이 아니라 온몸이 아픕니다.

그래서 하나입니다. 각자의 기능과 역할은 다릅니다.

 

다양한 지체를 갖고 있는 것을 몸의 다양성,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여 몸의 상호성을 지니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는 구원받은 받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피부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은사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도 다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다양성의 원리를 깨달으면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데 큰 도움을 받습니다.

지체마다 기능과 역할이 다릅니다.

주님은 많이 기능을 발휘한 지체만 귀하게 여기느냐? 아닙니다.

적은 기능을 해도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신체 중에 없어도 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없으면 불편합니다. (눈썹)

 

그래서 나는 아무런 은사가 없어, 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반대로 난 대단한 사람이야, 내 위에 아무도 없어, 난 잘난 맛에 살아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나사로의 동생들인 마리아와 마르다는 믿음이 좋은 분입니다.

마리아는 옥합을 깨서 예수님에게 부어 줄 정도로 자신을 비워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마리아의 은사입니다.

반면 마르다는 대접의 은사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위해 반찬을 만들어 대접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는 시간에 부엌에서 땀을 흘리면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마르다의 은사입니다.

 

그런데 은사를 사용하면서 마음도 상하게 됩니다.

마르다가 동생인 마리아에게 마음이 상했습니다.

평소에는 너무나 친한 사이인데, 섬기다가 마음이 상했습니다.

 

마음이 상한 마르다가 믿음이 안좋고, 말씀을 들은 마리아는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둘 다 비슷합니다.

오빠가 죽었을 때 예수님이 늦게 오셨을 때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볼 수 있습니다.

그냥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면 됩니다.

 

세 번째는 은사대로 섬기는 겁니다.

섬김이 복됩니다.

섬기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저에게도 많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자랑하지 않는 것은 혹시 하나님을 놓치고, 하나님의 손만 볼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섬기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섬기면서 복 살라고 각각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노인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은사가 다릅니다.

왜 안타까워 하지 않느냐고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분은 길가에 휴지가 떨어지면 줍습니다.

그 분은 휴지를 줍는 은사가 있기에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분은 그냥 지나칩니다.

어떤 분은 정리의 은사가 있습니다.

 

6~8절은 일곱 가지의 은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언, 섬기는 것, 가르치는 것, 위로하는 것, 구제하는 것, 다스리는 것, 긍휼을 베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중에 구제 사업에 대단한 은사를 받은 분들이 있습니다.

돈이 많다고 다 구제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돈이 별로 없는데도 사랑을 베푸는 일이라면 앞장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위로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위로라는 말은 특별히 격려하고 붙들어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 귀한 은사입니다.

 

예를 들어 좌절에 빠져 있는 어떤 사람을 위로하려고 세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똑같이 권면을 했지만 두 사람의 말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한 사람은 말이 많이 하지도 않았는데 그 사람 때문에 주저앉았던 사람이 힘을 얻고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세 사랑이 똑같이 권면했지만 왜 한 사람만이 그와 같이 아름다운 열매를 거둡니까?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성령의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위로의 사도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심한 박해와 어려움을 견디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끝없는 박해가 계속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런 비참한 현실을 이기지 못해 교회를 떠나는 성도들이 생겼습니다.

 

베드로는 교회를 떠나기는 했지만 맘이 불편하게 살아가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찾아가서 이렇게 얘기 했다고 합니다. “형제야 나를 보시오. 나는 닭 울기전에 세 번이나 배반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나같은 죄인도 용서해 주셨습니다라고 위로하면 많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왔다고 합니다.

베드로에게는 이런 위로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은사를 사용하면서 옆 사람을 보지 마세요.

믿음의 분량대로 은사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다 책임져주십니다.

그래서 가정공동체, 교회 공동체가 세워집니다.

사람따라, 믿음따라 합당한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은사는 특수한 소수에게만 허락하신 선물이 아닙니다.

지체라면 반드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주늠께서 은사를 주십니다.

우리는 받은 은사대로 일하면서 살면됩니다.

 

'로마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신앙과 다른 상대방을 만나면  (0) 2024.08.25
선으로 악순환을 끊어요  (0) 2024.08.18
뜻을 깨달았습니다.  (0) 2024.07.28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1) 2024.07.26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자  (3) 2024.07.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