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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

좁은 문을 향하는 성도들

by ysong 2024. 3. 18.

누가복음 13:22~30

주변을 보면, 하나님의 일로 시작했다가 사람의 일로 마치는 분들을 봅니다.

존경했던 분인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분이 그렇다면 나는 더 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옷깃을 추스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했죠?

중간에 길을 잃지 않고, 우리는 하나님의 일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일로 마치길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4가지를 매일 실천하셔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며, 인생을 예수께 거는 겁니다.

 

그 사람이 걸어가는 인생을 무엇이라고 표현할까요?

좁은 길을 걷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좁은 길에서 기쁨을 찾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늘 주님이 좁은 길을 걸어라고 하신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한 장소는 요단동편입니다.

요단동편은 세례요한이 사역했던 장소이기도 하고,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를 받았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또한 구약시대에 모세가 백성들을 모아 놓고 설교했던 곳이어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지역입니다.

모세가 요단동편에서 전한 마지막 설교는 신명기입니다.

모세는 다음 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만 섬기길 바라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수님도 요단동편에서 마지막 3개월 보내십니다.

이후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공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마치 모세의 고별설교처럼 좁은 문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좁은 문, 좁은 길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모세가 다음 세대에 전한 간절한 마음과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를 정리하기에 탁 맞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의 이야기는 어떤 사람의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은 자가 적으니까,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 안 됩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질문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병 고침도 받았습니다.

제자가 되겠다고 따라다니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한 명, 두 명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요한복음은 제자 중 몇 명이 예수님의 떠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은 예수님이 오병이어를 행하시고 의미를 설명하시면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었던 제자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일르 보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가려느냐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제자는 고작 12명에 불과합니다.

소수만이 충성스럽게 따르는 것을 보고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하고 물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24절입니다.

25~30절은 부연 설명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언젠가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 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같은 내용이 마태복음 7:13~14절에 기록되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누가복음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넓은 문은 크고 넓어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면 좁은 문은 협착하여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

 

예수님은 구원받는 자가 적다고 하셨을까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인데 왜 찾는 자가 적을까요?

대답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이 협착합니다.

길이 좁기에 걷기가 불편합니다.

찾는 이가 적어서 혼자 걸을 때가 많습니다.

함께 걷다가 힘들다면 포기하는 이들이 만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좁은 길, 좁은 문은 낭만적인 오솔길이 아닙니다.

좁지만 아름다운 트레킹코스가 아닙니다.

실제로 때로는 힘들고, 피곤하고, 희생이 따릅니다.

먹고, 쉬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볼 때 고리타분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좁은 길이 바로 예수님의 길입니다.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안개 속에서 주님을 보네 아무도 없을 것 같던 그곳에서

손 내미셔서 나를 붙드네 길 잃고 쓰러져가던 그곳에서

주 말씀하시네 내 손 잡으라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 생명이니

나 그 길을 보네 주 예비하신 곳 다른 길로 돌아서지 않으리

예수의 길 그 좁은 길 나는 걷네 주 손잡고 그 무엇도 두렵지 않네

주님 주신 약속 내게 있으니 세상의 길 그 험한 길 승리하네 성령으로~~”

 

좁은 길, 좁은 문을 가는 방법은 주님의 손을 잡고 가는 것입니다.

 

반면 넓은 문, 넓은 길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쉽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원하는 분들이 찾는 길이기도 합니다.

누릴 것 누리면서 조금도 자기희생이 없는 신앙생활을 원하는 분들이 찾는 길입니다.

그런데도 복을 받는다고 하기에 찾는 사람들로 넘칩니다.

교회의 크고 작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을 살아가는 신앙의 태도를 말하는 겁니다.

바른 신앙생활에는 자기를 넘는 희생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을 찾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힘쓰다는 단어의 의미는 운동경기나 전투에서 적이나 상대 선수와 싸우기 위해 분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댓가를 치르더라도 가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일부러 애써서 선택하고 결심해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과 휩쓸려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찾는 이가 적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른 말을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그것은 세상에 휩쓸려 사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게, 진리가 좋은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진리 싸움입니다.

주권싸움입니다.

싸움이기에 힘들고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살려고 분투하는 사람, 말씀대로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어려움을 감수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자신의 정욕과 욕망과 분투하며 좁은 문을 선택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지금도 찾는 이가 적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 틈을 메꾸며 살면 좋겠습니다.

거창고등학교는 직업 선택 10계명으로 유명합니다.

이제는 명문고등학교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지켜지고 있길 바랍니다.

직업 선택 10 계명은 사회적 통념과 반대되는 것들입니다.

본능에 거스르기 때문에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소리 듣기 십상입니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승진의 기회가 없는 쪽을 택하라.

개척이 필요한 황무지를 택하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하나 같이 고난의 길을 걸어라.

돈보다는 가치 있는 직업을 개척하라는 계명으로 젊은이들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따를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 보겠다는 젊은 청년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려고 힘쓰라고 하셨을까요?

1)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을 닫은 후에 들어올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문전에서 문을 두드리면서 호소하더라도 안 됩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대도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2)) 좁은 문은 외형적인 조건으로는 좁은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좁은 문을 열어 달라고 하면서 요구한 이유가 26, 28절입니다.

주인을 잘 안다는 이유입니다.(26)

우리는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실 정도 가깝습니다.

유대사회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친근한 사이임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이처럼 예수님과 친분관계를 내세웠습니다.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성경공부도 했습니다.

스승과 제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좁은 문은 그들에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2) 같은 혈통이라는 이유입니다.(28)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습니다.

그들과 같은 혈통입니다.

그러나 좁은 문은 그들에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전통이나 사상, 종교행위는 좁은 문이 열리는 조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좁은 문은 누가 들어가나요?

29~30절입니다.

동서남북에 흩어져 좁은 길, 좁은 문을 향한 이들에게 열립니다.

나중에, 늦게 믿었지만 힘써 그 길을 간 사람에게 열립니다.

교회 안에서도 먼저 믿는 사람들의 신앙이 나중 믿는 사람들의 신앙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현재의 신앙에 안주하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적용) 나에게 있어 좁은 문을 향해 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가끔씩 하나님을 의심하는 습관, 게으름, 나태도 포함됩니다.

여러분들은 저보다 적지요.

오늘 깊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안일함에 빠지면 나중 될 수 있다는 주님의 경고를 깊이 새기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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