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1~8
지난주 양의 우리 비유를 살펴봤습니다.
선한 목자는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목사와 장로는 선한 목자의 양을 돌보는 역할을 맡았을 뿐인데, 자신이 선한 목자인 줄 착각하면 안 됩니다.
저는 양이 선한 목자를 따르도록 뒤에서 짖어대는 보더콜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양이신 성도님들이 선한 목자를 음성을 듣고 따르도록 도움을 줄 뿐입니다.
양이 살길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는 길밖에 없습니다.
꼭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지난주는 목자와 양의 관계를 통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과의 관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주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과 관계를 알고자 합니다.
너무도 잘 아시는 비유이기도 합니다.
비유는 어디서 하신 말씀일까요?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하시고, 발을 씻어주시고, 성령에 관해 말씀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고 했습니다.(14:31절) 그리고 이어지는 행보가 18:1절입니다. 그 사이에 15장의 포도나무 비유, 16장 성령의 일, 17장 대제사장의 기도가 끼어 있습니다.
이에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일어나자 하시고 계속 마가의 다락방에게 계속 말씀하셨다는 주장입니다.
또 하나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나오셔서 길을 걷다가 포도나무밭을 지나시면서 말씀하셨다는 주장입니다. 둘 중에 어떤 견해를 택하든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포도나무 비유는 15:1절로 시작해서 16:16절까지 이어집니다.
포도나무 비유는 예수님과 성령의 관계, 예수님과 성령과 제자가 지속해서 관계를 맺고 사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하신 비유입니다.
우리는 비유를 통해 가지가 사는 열매 맺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1~2절이 포도나무 비유의 내용입니다.
3~8절은 가지가 열매 맺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며 적용입니다.
15:9~16:16절까지는 가지가 열매 맺는 두 번째 방법에 대한 설명이며 적용입니다.
두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는 것, 계명을 지키는 것과 성령께 순종하는 법입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 비유를 들려주신 상황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떠남과 제자들의 두려움입니다.
14: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14:2절에 ’나는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4:20절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는 떠났다. 그러나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다. 또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신다. 그 보헤사는 성령이다. 성령은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는다. 너희는 큰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처음 들은 제자들이 의미와 깊이를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도나무 비유만을 놓고 봐도 본문을 이해하는데 별문제는 없습니다.
그런데 14장과 연결해서 보시면 더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이 너희들을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고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치고자 했던 것입니다.
포도나무 비유의 내용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이고, 아버지는 농부입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많이 맺게 하려고 아버지는 가지치기합니다.
병든 가지를 제거하여 깨끗하게 합니다.
올리브나무도 있고, 무화과나무도 있는데, 왜 포도나무일까요?
포도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쓸모가 많지 않습니다.
집을 짓는 재목으로 쓸 수 없습니다.
화목으로도 쓸 수 없습니다.
열매만 얻을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를 비유로 쓰신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예레미야 2:2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이스라엘을 출애굽하여 가나안을 정착한 사실을 포도나무를 심은 것으로 표현합니다.
이사야 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이사야 5: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고,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좋은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었지만 들포도를 맺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시편 80: 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12~13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13.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애굽에서 옮겨서 가나안에 심었는데 열강이 멸망시켰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택한 백성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포도나무로 하지 않고 참 포도나무라고 하셨을까요?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이 진정한 이스라엘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전의 이스라엘은 실패했지만,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신 자신이 참 포도나무라고 하셨습니다.입니다.
참 포도나무이기에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입니다.
예수님은 진실한 순수한 포도나무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으로 실패하는 것 같지만 실패하지 않는 참포도나무입니다.
1절에 예수님은 자신을 참포도나무로, 하나님을 농부로, 제자를 가지로 비유했던 것입니다.
제자를 가지로 비유하신 것은 우리의 불완전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 포도나무는 어떻게 열매를 맺는가?
가지가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제자는 진정한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농부이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2~3절- 하나님이 가지마다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나쁜 것들을 잘라 내 버리십니다.
필요 없는 가지를 쳐내십니다.
또 열매를 맺는 가지라 해도 더 나은 열매에 집중합니다.
최종적으로 열매가 달릴 하나의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가지들은 쳐내십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다방면에 걸쳐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재능을 다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길을 제외한 나머지 길들은 인생에서 쳐내십니다.
깨끗하다는 열매를 맺도록 다듬거나 잘라내는 전지작업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3~7절은 첫 번째 비유에 대한 설명이며 적용입니다.
3절에 이미 제자들은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말씀으로 제자들을 다듬었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것을 잘라내었기 때문입니다.
가지에 열매가 열리려면 가지가 깨끗해야 합니다.
가지는 통로에 불과합니다.
뿌리의 영양분이 흘러가도록 깨끗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가지는 무엇을 해야 해야 하나?
4~7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가지는 붙어 있어야 합니다.
붙어 있지 않으며 열매가 없습니다.
먼저 붙어 있는 것을 4절, 7절에 거하라고 표현했습니다.
“거하라”는 말뜻은 머물다, 살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붙어 있지 말고 계속해서 붙어 있을 때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나간 가지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거하다는 예수님과 관계를 구체적인 그림으로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현존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받는 인생이어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5절에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열매가 가지에 열리기 때문에 착각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열매를 맺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지인 주제에 스스로 열매를 맺으려고 시도하는 것을 봅니다.
가지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데 맺었다고 하면 허상입니다.
6절의 말씀처럼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는 쓸모없게 됩니다.
그러나 가지가 없으면 열매도 없습니다.
가지도 중요합니다.
가지에 열매가 맺힙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없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그만큼 밀접합니다.
가지는 예수님을 하신 일을 이어받아서 해야 합니다.
가지가 독단적으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열매는 포도나무인 예수님이 하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8절에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영광이 되는 열매는 무엇인가요?
포도나무에 열리는 열매는 포도이겠죠?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에게 열리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가지인 제자나 우리들이 맺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그동안 열매에 대해서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붙어 있으면 당연하게 열리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바로 열매 부분입니다.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리는 열매인데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겁니다.
8절입니다.
영광이 되려면 그만큼 소중한 열매이어야 합니다.
열매가 무엇일까?
열매는 성과나 물질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 누리는 참 평강입니다.
주님 안에서 누르는 기쁨입니다.
주님 안에서 좌절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 삶입니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삻입니다.
인간적인 성취와 자랑도 조금 포함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열매는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의 사역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하신 3대 사역에 집중하셨습니다.
가르침, 전도, 치유 사역입니다.
가르침과 전도는 영생을 위한 사역이었고, 치유(구제)=힐링은 생존을 위한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전인적인 구원사역이었습니다.
참포도나무에 열리는 포도는 바로 예수님의 전인사역과 연결됩니다.
열매는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이어서 해 나가는 것입니다.
가지인 우리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감으로 전도의 열매, 가르침의 열매, 치유의 열매가 맺혀져야 합니다. 나의 삶에, 신앙생활에 이 열매가 맺혀져야 합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이 열매가 맺혀져야 합니다.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음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은 가지가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도록 가르치고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통해 열매를 맺도록 하십니다.
적용) 가지의 생존법을 배워요.
지난주는 양들의 생존법을 배웠습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가지의 생존법은 머무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내 안에 병든 가지를 제거합니다.
가지를 깨끗하게 합니다.
말씀 안에 머물러 있을 때 가능합니다.
주님 안에 머무는 법을 배우시길 바랍니다.
다윗은 주님 안에 머무는 법을 배운 사람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주를 바라보는 머무는 법을 배웠습니다.
시편 속에 등장하는 다윗으로부터 배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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