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둠 속에 빛이 되는 교회
  •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교회
오늘의 주일설교

어떤 예수님을 원하십니까

by ysong 2023. 4. 2.

마태복음 27:11~26

오늘 주일예배는 한국교회가 종려주일을 지킵니다.

종려주일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감당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예루살렘 입성 사건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한 주 동안 십자가를 묵상하시면서 절제하시면서 경건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했습니다.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열광적으로 예수님을 환호했습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했지만 백성은 승리할 예수님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5일 후에 이들은 다시 다른 사람을 원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사람은 바라바입니다.

 

빌리도 총독이 그리스도 예수를 원하느냐, 바라바를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17절입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바라바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멸칭입니다.

아버지를 꼭 닮아서 그렇게 부른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야인데 별칭입니다.

 

새번역 성경을 보면 둘 다 이름이 예수입니다.

17절에 무리가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누구를 놓아주기를 바라오? 바라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요?”라고 묻습니다.

 

예수는 흔한 이름입니다.

구약의 이름은 여호수아입니다.

총독이 바라바 예수요? 그리스도 예수요?라고 묻습니다.

그들은 21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가 아닌 바라바 예수를 원했습니다.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습니다.

소위 명절 특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명절 특사를 통해 집권당의 인사들을 풀어줍니다.

제사장과 백성들은 이런 전례를 이용한 것입니다.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그리스도 예수님께 열광했던 이들이 5일 만에 변심한 것일까요?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일까요?

그들이 예수에게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라바 예수인가요? 그리스도 예수인가?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원하는 예수님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라바 예수는 어떤 사람인가요?

4복음서는 바라바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5: 7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누가복음 23:19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요한복음 18:40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바라바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4복음서를 종합하면 바라바 예수는 민란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민란을 일으킨 사람이란 표현은 주로 열심당원을 부른 은어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열심당원들은 로마정권을 대항해서 무력으로 맞선 독립운동 단체였습니다.

공식적으로 군대를 조직하지 못했지만 비밀결사단체, 테러단체로 활동했습니다.

그들은 늘 칼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바라바는 민란을 일으켜 로마를 대항한 것입니다.

바라바는 민란을 일으킨 우두머리였던 것입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애국자입니다.

 

요한복음은 강도라고 했는데, 당시 강도는 주로 부자들의 집을 털었습니다.

주로 부자들은 로마 정부에 빌붙어서 부와 권력을 누렸습니다.

강도라고 해도 마치 홍길동과 같은 의적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바라바는 유대인에게 민족지도자, 민족 영웅, 적어도 호감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사도행전 3:14절을 보면 바라바는 의로운 사람은 아닙니다.

그는 분명 죄인입니다.

그는 살인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바라바를 원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바라바는 백성들의 생존권을 되찾기 위해 행동했습니다.

백성들은 그런 바라바 예수를 원했습니다.

백성들은 늘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 줄 구원자 예수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못 박으라고 하면서 바라바 예수를 원한 까닭입니다.

 

총독이 그리스도 예수는 죄가 없는데 꼭 그렇게 해야 하겠느냐고 물어도 그들은 더 강하게 바라바 예수를 원했습니다.

25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무시무시한 저주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토록 바라바 예수를 간절히 원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이든 바라바 예수이든 예수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5일 전으로 돌아가 볼까요?

마태복음 21:7~9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에 등에 깔아서 예수님이 앉도록 했습니다.

백성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흔들며 따랐습니다.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며 찬송했습니다.

그들은 구원자 예수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능력과 기적은 로마로부터 해방할 구원자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기꺼이 자신들의 옷을 길에 깔아 왕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것과 전혀 다른 행동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스가랴의 말씀처럼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을 입성했습니다.

스가랴 9장은 겸손의 왕, 화평의 왕으로 오신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스가랴가 예언한 모습을 성취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스가랴 9:9~10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평화의 왕으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합니다.

그 왕은 공의로우시고, 구원을 베푸시고, 겸손하신 분입니다.

겸손하지만 굉장한 능력자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나귀를 타고 입성할 정도로 겸손한 이유는 그분은 평화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메시야로 왔다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는 백성들이 원하는 예수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이 일어나길 원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메시야 행할 이적과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나오시며 이들이 평화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면 눈물을 흘리셨을 뿐입니다.

1년 전으로 돌아가 볼까요?

유월절 명절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이 계신 갈릴리 빈들에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전해지는 말씀은 달콤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식사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빌립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습니다.

빌립이 조금씩 나눠줘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필요하다고 대답합니다.

2천만원은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안드레가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많은 사람을 먹일 수는 없는 같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앉히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여 떼어 줍니다. 5천 명이 배부르게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요한복음 6:14~15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배부르게 먹었던 백성들은 예수님을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만나로 백성들을 배부르게 했던 모세와 같은 그 선지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생존의 문제를 해결 줄 수 있는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1년 전에, 5일 전에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열광했던 백성들이 지금 바나바 예수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버리고 바라바 예수를 원하는 이들은 변심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원하는 내용은 처음부터 같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생존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이든 바라바 예수이든 관계없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 줄 예수만을 원했습니다.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예수, 현실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능력의 예수, 질병을 치유하는 권능의 예수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인가요? 바라바 예수인가요?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남의 예수와 달동네의 예수는 같은 그리스도 예수일까?

큰 교회 예수와 작은 교회 예수는 같은 그리스도 예수일까?

대형교회 목사의 예수와 저와 같은 작은 교회 예수는 같은 그리스도 예수일까?

같은 그리스도 예수일 수도 있고 바라바 예수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원하는 예수는 십자가에 힘없이 죽어서 이루실 구원이 아닙니다.

그들은 언제나 힘 있는 구원자,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예수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무 진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바라라 예수에서 그리스도 예수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면 아프고 힘든 문제를 해결해 줄 예수를 믿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신앙생활 속에서 위로와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를 만납니다.

문제들 앞에서 예수를 찾게 됩니다.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 예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바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만이 죄로부터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리스도 예수는 이 땅에 가난한 시골 목수로 살았습니다.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거류민으로 살았습니다.

배가 고파서 무화과나무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했습니다.

당권자의 심문 앞에서 입을 닫으시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바야 합니다.

 

작용) 예수님만 바라바요?

세상 방법으로 내 소원을 이루어질 예수인가요?

우리 죄를 사하시는 예수를 원하십니까?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를 원하십니까?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주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살아계심을 믿기에 더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고전 2: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이 만난 예수님입니다.

나는 이 예수님을 원하는가, 이 예수님을 높이기 위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가?

우리는 이 예수님만으로 만족하길 바랍니다.

 

 

 

'오늘의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리를 외면한 빌라도  (1) 2024.03.27
보내주소서  (1) 2024.01.09
again start  (0) 2023.01.04
십자가를 모르는 종려주일  (0) 2022.04.13
읽고 쓰고 행하자  (0) 2022.01.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