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8~9절
2022년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가 되면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체중을 감량하고, 술과 담배를 끊고, 정기적으로 운동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여기에 성경을 읽고, 정한 시간에 기도생활을 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다른 어떤 시기에 이런 결심을 하는 것보다 새해에 하는 결심이 훨씬 성공률이 높다고 합니다. 새해의 결심은 46%의 성공률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른 시기의 결심보다 10배는 더 효과적이라는 임상심리학의 발표가 있습니다.
올해 다시 우리들은 결심을 합니다.
2018년 여호와를 경외하라
2019년 세월을 아껴 감사, 찬양, 순종에 쓰자(엡 5:15~21)
2020년 새 생명을 얻도록 디딤돌이 되자(롬 9:3)
2021년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한 교회(고후 2:14)
가정교회로부터 교회공동체가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득하도록 노력하자는 표어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면서 살자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순종과 감사, 절제와 겸손이 몸에 배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잘하셨고요, 수고하셨습니다.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기 위해서는 말씀생활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성경필사를 통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에 새긴 말씀을 삶에 적용하여 말씀으로 변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큰 욕심이 없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는 것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시는 것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5만번의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죠지 뮬러는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성도님들도 죠지 뮬러처럼 말씀을 읽는 중에 기도하고 응답받는 신앙적인 경험을 하시는 것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저의 바람은 신앙의 진보입니다.
표어를 정하는 것도 기도하면서 주시는 은혜로 배번 정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도 기도 중에 이런 마음을 주셨기에 표어로 정했습니다. 롷ㄱ덧ㅅ거
예수님을 닮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읽고-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지적인 영역입니다.
쓰고-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정적인 영역입니다.
행하고-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의지적인 영역입니다.
사람이 변하기 위해서는 지정의 이뤄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읽는 수준에 머물면 어떻게 될까요?
과거 글을 몰라서, 시간이 없어서, 성경의 보급이 미비해서 말씀을 많이 읽지 못했던 한국교회 초창기 성도들보다 결코 낫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어떤 분들은 지식의 유희를 위해, 어떤 분들은 성경 몇 독 했다는 우쭐거림을, 어떤 분들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성경을 대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제가 한때 그렇게 성경을 읽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읽으면 말씀을 부분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렇게 읽으면 자식을 자랑하면서 논쟁하게 됩니다.
그렇게 읽으면 타인보다 상대적인 의로움을 드러내게 됩니다.
온전하지 못한 지식으로 비판하고 지적하게 됩니다.
성경을 필사를 하게 되면 이런 말씀도 있었네라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 아~~~이런 의미였구나라고 하며 감탄하기도 할 것입니다.
필사는 마음에 새기는 일입니다.
감정적으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감정은 행동을 옮기게 하는 에너지입니다.
열정입니다.
무엇을 하겠다는 뜨거운 감정입니다.
확신에 이르는 단계입니다.
그 감정이 행동으로 옮기게 합니다.
신앙은 입으로, 감정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옮겨질 때 자기 것이 됩니다.
자기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동네에 수락산이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등산로를 읽고 공부를 합니다.
그런 중에 올라가고 싶은 열정이 생깁니다.
그런데 자꾸 핑계를 댑니다.
날씨, 바쁜 일, 귀찮다는 마음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포기를 합니다.
이 분은 수락산을 올라가지 않은 것입니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행동으로 옮기면 자신의 체력과 능력을 알게 됩니다.
실력을 알게 됩니다.
신앙의 실력은 이와 비슷합니다.
말씀을 읽고 쓰고 삶으로 적용할 때 자신의 실력을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 쓴 편지입니다.
빌립보교회의 목회자는 에바브로디도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목회를 하다가 힘든 일을 만나게 됩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을 위해서기도 하고, 자신도 힘들기 때문에 목회적인 조언을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2022년 표어로 본문을 선택한 것은 이런 의미는 아닙니다.
근본적인 접근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9절에서 스승처럼 말을 합니다.
배우고는 말씀을 바울로부터 배우 내용들입니다.
받고는 바울이 쓴 편지를 회람해서 읽은 것입니다.
듣고는 바울을 만났을 때 들은 설교들입니다.
본 바는 같이 지내면서 바울의 인격과 삶의 태도를 본 것입니다.
배운 것을 실천하라는 것은 익히라는 것입니다.
습관처럼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두 가지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신앙의 모델로 삼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책 속에서(전기, 자서전) 모델을 찾는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주변에서 모델을 찾는다고 합니다.
딸에게 가장 강력한 모델은 엄마, 아들에게 강력한 모델은 아버지입니다.
독창적으로 하는 것은 없습니다.
저도 목사로서 모델을 둔 분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보고 흉내 내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진정한 롤 모델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17절에 “너희는 나를 본받아라.”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1:1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아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살아보니까 좋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모델이 되시길 바랍니다.
바울에게 무엇이 좋았을까요?
평강입니다.
7, 9절에서처럼 평강의 하나님이 평강을 지켜주신다는 것을 겸험했기 때문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도 응답은 평강입니다.
평강이 물 밑들 밀려오면 응답이 시작된 것입니다.
평강이 머문다는 것은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8절은 항상 참되고, 겸손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 받을 만 하라, 칭찬 받을 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말씀을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는 것입니다.
곧 읽고 쓰고 행하자입니다.
그래서 평강을 누리고, 신앙이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흘러나가는 성품입니다.
'오늘의 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again start (0) | 2023.01.04 |
---|---|
십자가를 모르는 종려주일 (0) | 2022.04.13 |
부부의 신앙 (0) | 2021.05.17 |
주가 쓰시겠다 (0) | 2021.03.29 |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한 교회 (0) | 2021.01.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