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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완성)

하나님 편에 선 사람들

by ysong 2022. 9. 4.

출애굽기 33:12~16

금송아지 사건은 스스로 신을 만든 최초의 사건입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신보다 보이는 신으로 불안을 해소하려고 했습니다.

보여야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군대를 보낸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 외국에 보내고 걱정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함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금송아지사건은 믿음의 본질에 대한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완전히 진멸하고 모세를 통해 새롭게 하시겠다는 뜻을 돌이켰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1절에 네가 인도해낸 백성이란 표현에서 하나님의 감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합니다.

모세보다 먼저 천사들을 보내서 가나안의 족속들을 물리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를 3절에서 목이 곧은 백성들을 진멸할까 염려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죄인들과 함께 가다가 죄인들을 죽일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기 때문에 죄에 빠진 너희와 함께 하면 너희들은 진멸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에 백성의 반응이 4절입니다.

몸을 단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착용한 장식구는 비본질적인 것인데 목숨 걸고 달고 다녔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 것을 내려놓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재의 선언으로 백성들에게 애통과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모습으로 애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이것을 가장 슬퍼해야 합니다.

나의 인생길에 하나님이 임재 해 계시는가를 자주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만 있으면 된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회막에 임재하여 모세를 만납니다.

회막은 성막이 아니라 모세가 백성을 만나는 미팅장소입니다.

진영밖에 쳤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이런 태도와 마음을 좋아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친구처럼 대변한 적이 있습니다.

모세가 고요한 가운데 하나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친밀하고 인격적인 교제가 이스라엘을 구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역사와 전혀 상관없는 만남이 이스라엘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회막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회막 안에서 이스라엘공동체의 운명을 결정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살아남으로 표면적인 역사도 살아난 것입니다.

 

적용) 이 사실이 기록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백성들은 자신들이 장식구를 떼어내는 회개로 인함이라고 착각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세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이뤄진 친밀한 교제였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한 사람의 신실한 때문에 민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실실한 한 사람이 가정을 살립니다.

실실한 한 사람이 교회를 살립니다.

직장, 생업을 살립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품으시려고 작정하신 이유는 모세 때문입니다.

자기 친구같은 모세가 백성을 끌어안고 기도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이신 것입니다.

11절에 또 한사람인 여호수아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 역사를 이어갑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가까이 있기를 원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보이는 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신을 따라가야 합니다.

12절에 모세는 하나님께 혼자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저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은총 입은 저에게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

주의 백성으로 여겨 주세요.

이렇게 간절히 간구하니까 하나님이 14절에 친히 가시겠다고 약속합니다.

혼자가게 하지 않을께.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너 때문에 이 백성들과 함께 가겠다고 합니다.

이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이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약속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께 더 요구하고 있습니다.

계속 사인을 달라고 합니다.

약속보다 중요한 증거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17절에 그래 함께 가고 증거도 보여주마.

그랬더니 모세는 18절에 주의 영광을 보여주세요.

얼굴 좀 보여주세요라고 요구합니다.

상황이 답답하니까 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보이는 신을 요구했던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는 한계입니다.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속성이 모세이게도 있었던 것입니다.

애굽의 사고체계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 내면에 있는 속성이기도 합니다.

이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19절에 선한 것을 지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을 직접 뵈면 죽습니다.(20)

모세를 반석 위에 세워 놓고 하나님의 등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말씀 허신 선한 것은 하나님의 등입니다.

하나님의 등을 보고 따라가는 것이 선입니다.

너보다 앞서 갈 테니 잘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긍휼을 입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보이는 신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함께 하시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않는 조건은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가나안 땅은 의미가 없습니다.

얼굴과 등은 하나님이 우리의 이해 범주 안에 설명하려고 쓴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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