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2:7~14절
금송아지 사건이 심각한 이유는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친히 쓴 돌판돌 산 아래에 던져 깨뜨렸습니다.
이스라엘뱍성이 언약을 파기한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이젠 의미가 없어진 증거판이 된 것입니다.
계약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의 분노에 책망하지 않습니다.
금송아지와 관련된 이야기는 32~34장까지 길게 다른 이유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의 범죄와 징계, 모세의 두 번의 중보기도와 언약의 갱신으로 사건이 종결됩니다.
7절은 하나님이 화가 났다는 것을 모세에게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우상을 쫓는 그들에 대해 화가 났다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아팠다는 것에 대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급기야 9~10절에서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다고 하면서 쓸어 없애고 모세를 통해 큰 나라를 이루겠다고 뜻을 밝히게 됩니다.
이에 모세의 기도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3가지의 기도 내용입니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이 어떤 백성인지 알면서도 그 크신 능력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 아브라함과 이삭의 후손이 큰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지요, 나를 통해서 아닙니다. 만약 약속을 지키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문제가 생깁니다.
- 이 백성을 광야에서 죽이시면 애굽 사람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모세의 기도는 11절에 “어찌하여, 왜로” 시작합니다.
또 12절에 “어찌하여”로 기도를 이어갑니다.
거듭되는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께 따지고 대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세의 기도는 시종일관 하나님 이렇게 하시면 안된다고 설득하고 따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을 가르치고 꾸짖는 기도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마치 하나님은 혈기가 있어서 화를 내고, 모세는 침착하게 하나님을 타이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세는 왜 이런 기도를 했을까요?
이런 기도가 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들의 기도와 다른 형태를 띠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기도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정성, 열심, 간절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의 오고감 인격과 인격의 만남입니다.
하등종교일수록 그 뜻을 알지 못하는 주문을 외웁니다.
뜻보다 정성이고 몇 번, 얼마나 오래했는가가 중요합니다.
기독교 기도는 말, 대화입니다.
만남과 사귐입니다.
생각이 오고가고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기도는 인격과 인격의 만남입니다.
간혹 간절함이 통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소리를 내서 울부짖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기도는 생각하는 기도이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생각이 많아져야 합니다.
하박국도 따지는 기도를 했습니다.
요나도 하나님께 대드는 기도를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고 합니까?고 하면서 협상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니까 가능한 기도입니다.
모세는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서로 생각이, 인격이 오고가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따지는 것처럼 보이는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이유입니다.
모세는 화가 난 것처럼, 진노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행동에 숨겨진 사랑을 봤습니다.
모세의 이런 기도가 가능한 것은 10절에 숨겨져 있습니다.
10절에 하나님이 내가 하는 대로 두라고 하면서 진멸하겠다고 하십니다.
칼빈은 이 본문을 하나님 편에서 모세의 동의를 구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모세가 동의하지 않으면 진노를 내리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또 하나님은 모세의 중심을 보시고 14절에서 뜻을 돌이키십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생각이, 인격이 오고가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모세와 아론의 태도가 갈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준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면 아론이 백성을 위한 지도자처럼 보입니다.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주었고요, 그들의 염려와 두려움에 귀를 기우렸고요, 연약함을 감싸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론이 착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아닙니다. 백성을 위해 줄 수 있는 지만 백성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아론은 그들의 위해 처신하지 않습니다.
22절에 속내를 드러납니다.
백성들의 악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남을 탓하게 됩니다.
24절에 거짓말까지 합니다.
진리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아론에게 진리의 기준은 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진리의 기준이 죄를 극복하지 못한 백성들이기 때문에 25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기준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백성이 살기 위해서라도 하나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편에서 백성들에게 화를 냅니다.
금송아지를 갈아서 먹게 했습니다.
모시고 섬기는 것이 하잘 것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또 3천명을 죽이게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 편에서 단호하게 행동합니다.
누가 진짜 지도자인가?
누가 진짜 예배자이고 기도자인가를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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