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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행적을 따라서

처음부터 함께 한 제자들

by ysong 2020. 8. 23.

요한복음 1:35~51

세례요한이 이같이 시험을 받은 그날, 예수님은 40일 금식을 마치고 모든 시험을 이기시고 광야를 떠났습니다. 이날을 기준으로 삼아서 29절의 이튿날은 세례요한이 시험을 받은 다음날을 가리키며, 그날 세례요한이 사역하는 장소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을 멀리서 보고 29절에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며 굉장한 선포를 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 보내신 메시아라는 선포입니다. 아마도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세례사건에서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경험하고, 40일 동안 그 생각들을 통해 믿게 된 사실을, 예수님을 다시 보면서 자기가 믿는 바를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이날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멀리서 보면서 자신이 깨달은 사실을 제자들에게 설명했습니다. 그 내용이 30~34절입니다. 그날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직접 만나지 않았습니다.

 

35절의 또 이튿날은 멀리서 예수님을 본 다음날 세례요한이 두 명의 제자들과 함께 서 있는데,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전날처럼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틀 연속 그 말을 들은 두 명의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 두 명의 제자는 안드레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제자입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제자는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날 세례요한의 사역의 현장에서 4명의 제자들을 만나고 다음날 갈릴리로 가는 중에 1명의 제자를 만납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3세가지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첫 번째 반응은 안드레와 사도 요한, 빌립입니다.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부류입니다. 이들은 원해 세례요한의 선포와 동시에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난 후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찾아가 만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41절에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볼 때 예수님으로부터 장시간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도 달라졌습니다. 안드레와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처음에는 랍비로 불렀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이후, 곧바로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메사아는 히브리어이고, 헬라어는 그리스도입니다. 즉 구원자란 의미입니다. 그들이 메시아를 만났다고 한 것은 그들의 관심이 오직 하나, 그리스도의 구원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믿음의 결단력과 확신이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을 떠나 주님을 좇기 시작한 제자 중 한 명인 안드레는 함께 세례요한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온 자신의 형제 시몬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확신을 갖고 형제에게 전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강권하여 자신의 형제인 베드로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첫 번째 부류에 속한 안드레와 요한은 진리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고, 그 진리를 만났을 때 빠른 결단력과 추진력을 보였습니다. 어쩌면 다메석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곧바로 예수님을 전했던 바울과 비슷해 보입니다.

 

43절을 보면 빌립도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나를 따르라는 말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빌립도 안드레처럼 가장 친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안드레와 요한, 빌립과 같은 믿음의 성향을 갖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들의 행동이 무모하고 경솔해 보입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과 같은 성향의 믿음을 좋아하십니다. 훌륭한 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이들과 같은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리되신 예수님을 만나면 즉각적인 반응을 보입시다. 진리되신 예수님을 만나면 기쁨으로 가득하여 그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 되십시다. 가장 빨리 부름을 받은 3명의 제자처럼 처음부터 함께 하는 결단을 보입시다.

 

두 번째 반응은 베드로입니다. 실패의 현장에서 두 번째 부름을 받은 부류입니다. 베드로는 안드레의 소개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만나자마자 시몬(듣는다)을 이름을 게바(아람오), 헬라어로 베드로(반석)라 고쳐 부르셨습니다. 성경에는 베드로의 반응이 나와 있지 않지만 전체적인 정황을 보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날 부름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5:1~11을 보면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고기잡이에 실패한 베드로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이 새로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왜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두 번씩이나 부르심을 받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그 해답은 베드로가 주님의 소명을 받는 두 본문을 종합하여 생각해 보면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2절에 등장한 베드로는 안드레의 소개로 예수님을 만났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가 볼 때 예수님은 초라하고 볼품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메시아일 수는 없어 보였습니다. 안드레가 헛짚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현실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판단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외형적인 판단에 의해 좌우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교회에는 이런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제가 개척을 하면서 이런 분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회자는 실패자, 작은 자라는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마치 대형교회는 성공한 교회, 자신이 그 곳에 속하면 성공한 신앙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처음 작은 교회에서 출발하여 오랜 신앙생활을 해서 교회가 커졌다면 어쩔 수 없지만 크다고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성공이 아니라 십자가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웃기는 소리가 아닌 말씀을 전해져 부흥의 역사,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시로 따르지 않은 베드로를 예수님을 찾아오셨습니다. 처음 만난 이후 꽤 시간이 흐른 후였습니다. 최소한 예루살렘에서 첫 번째 유월절을 보낸 이후로 보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오기 전에 그의 장모를 고쳐주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온 현장은 실패의 장소였습니다. 누가복음 5:1~11절의 내용입니다. 호숫가에서 말씀을 가르치는데, 베드로는 그물을 씻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를 빌린 말씀을 전한 후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 깊은 곳에 그물을 던졌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부의 경험이나 상식과는 달리 그물이 찢어지고 배가 잠길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동안 베드로는 예수님을 훌륭한 사람, 능력이 있는 사람,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날 베드로는 곧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고백했습니다.  5:8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베드로는 실패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참회하고 삶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베드로와 같은 신앙인이 많습니다. 자신의 판단이 늘 옳다고 생각했지만 뜻하지 않은 실패를 통해 주님을 만나고, 삶의 방향이 바뀌는 분들입니다. 이후 베드로는 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예수님이 참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어쩌면 실패는 더 큰 복을 위한 도구일 수 있습니다. 실패했습니까? 낙담하지 마십시오. 실패를 통해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만나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부류는 나다나엘입니다. 오해에서 고백으로 바뀐 유형입니다. 빌립을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만난 나다나엘은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43절의 이틀 날은 안드레의 소개로 베드로를 만난 다음날을 가리킵니다. 다음날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사역 장소를 떠나 갈릴리 가는 중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 했던 빌립은 나머지 사람들보다 좀 앞서 가서 자기 친구 나다나엘을 찾았고, 예수님과 다른 사람들이 도착한 바로 그 시간에 빌립과 대화를 나눈 나다나엘을 만나게 됩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구약에 기록한 오실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했습니다. 빌립도 45절에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 익숙한 것으로 볼 때, 성경공부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빌립에 대한 나다나엘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46절인데요, 달동네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나올 수 있느냐는 핀잔뿐이었습니다. 고로 빌립의 말을 미더워지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한 나다나엘은 교만한 사람이 이나라 구약을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46에서 보인 그의 대답을 볼 때, 성경을 깊이 연구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완전히 알지 못했지만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이 소개한 예수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지만 친구인 빌립이 주님께 와 보라하고 계속 강권하매 나다나엘은 할 수 없이 친구에게 끌려 예수님께 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전도에 어려움을 겪으면 빌립처럼 와 보라같은 방법도 좋습니다.

 

나다나엘을 본 예수님은 47~48절에서 말을 합니다. 무화과나무 아래는 기도와 묵상의 장소입니다. 나다나엘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늘 사색, 묵상, 기도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은 메시아를 간구하는 참 생명에 대한 내적 갈망을 알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나다나엘은 세상의 고통을 보면서 기도하는 사람,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재림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정상적인 세상이 아닌 것을 보면서 무관심하면 안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꿰뚫어보는 예수님 앞에서 나다나엘은 49절처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엄청난 고백을 합니다.

이처럼 나다나엘은 보는 눈, 듣는 귀, 깨닫는 마음이 있었기에 이처럼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더 큰일을 보리라는 말씀처럼 나다나엘은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렇게 5명의 제자들을 만난 예수님은 그 주 수요일에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석하게 됩니다.

 

오늘도 예수님에 대해 제자들이 보였던 방응과 비슷합니다. 어떤 분들은 안드레, 빌립, 사도요한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전도자가 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베드로처럼 처음 부름에 거부하다가 실패의 자리에서 주님을 따릅니다. 어떤 분들은 오해했지만 이해하게 되면서 진지하게 주님을 따릅니다. 나는 어떤 성향에 속해 있습니까? 성향보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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