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1~11절
예수님의 3가지 시험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시험은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인 시험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시험- 경제적인 시험입니다. 2~3절입니다. 돌들을 떡덩이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단은 돌을 빵으로 만드는 능력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아닌 존재가 피조물처럼 고통을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먼저 먹고 나중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먹고 하나, 하고 먹으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라고 시험을 합니다. 순서를 바꿔도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십일을 금식하신 후였습니다. “너 배고프지 그리고 그럴 능력도 있잖아. 어서 이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먹어. 몸 생각도 해야지...” 굉장히 예수님을 생각해 주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아, 저 사람이 나를 위하는구나, 참 감사하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금식해보신 분은 아시겠습니다만, 금식은 힘듭니다. 이런 예수님에게 사단이 다가와서 먹고,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합니다. 사단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안합니다. 먹고 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단이 누구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3절을 보면, 사단을 ‘시험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사단입니다. 지금 내 앞에서 달콤하게 속삭이면서 나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자가 바로 사단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겪는 시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의 시험은 달콤합니다.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끈적끈적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이 이긴 방법
예수님은 4절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한 마디로 마귀의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 나옵니까? 사단의 말은 예수님에게 달콤한 것이었지만 결국 예수님의 삶을 낭패케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는 고난과 죽음이라는 비천한 방법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저는 예수님의 첫 번째 시험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십일을 굻어 죽게 되었어도, 먹는 것보다 언제나 하나님의 의가 먼저였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서는 어떤 양보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당당히 외치며 사는 그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나 네게는 하나님이 먼저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경제적인 문제도 말씀으로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만나를 먹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오늘 말씀 5~6절입니다. 종교적인 시험입니다.
사단이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워놓고 “너 하나님의 아들이잖아. 그러니 뛰어 내려. 그러면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땅에 부딪치지 않도록 보호하실꺼야. 그러면 사람들이 니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아 줄 것 아니야. 성경에도 시편 91편에 보면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셔서 자기 아들을 보호하신다는 말씀이 있잖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속삭였습니다.
말씀대로 해서 너의 능력과 존재를 과시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전에 내려오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환호하며 맞았겠느냐? 사람들이 얼마나 큰 경배를 돌리겠느냐? 너의 목표는 단숨에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시험하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이전에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기드온이 하나님을 시험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믿기 이전에 먼저 그 말씀대로 되는지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6절 하반절의 말씀처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 것”이라고 하면서 영광의 방법을 제시합니다. 멋지죠. 화려하죠. 언뜻 들으면 굉장히 예수님을 생각해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교만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 사탄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자꾸 마음이 교만해집니다.
사단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헛된 욕망에 눈 어둡게 되어 자기를 과시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인정을 받고, 영광을 받고, 받들음에 받는 맛에 빠지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금 많은 목사와 장로, 직분자들이 이 시험에 넘어갔습니다. 사단은 예수님의 소명과 사명인 십자가를 잃어버리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7절에서 말씀을 인용하여 물리칩니다. “또 기록되었으되”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그런 말씀도 있지만 이런 말씀도 있다.’ 이런 말입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6:16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을 시험했지만 예수님은 오로지 하나님을 신뢰하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두 번째 시험을 말씀으로, 시험이전에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권능을 철저히 포기하고 죄 있는 인간과 같이 낮추심으로, 말씀에 순종함으로 사단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은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언제까지나 기억해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내려가는 길입니다. 낮아지는 길입니다.
세 번째 시험은 정치적인 시험입니다. 세상부귀영화에 대한 시험입니다. 8절입니다.
사단은 천하 만국과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불순종함으로 사단에게 넘어간 권위와 영광입니다. 왕적통치대리권이 사단에게 넘어갔습니다.
이 천하 만국과 권세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다시 넘어왔습니다. 예수님이 완전히 승리하셨지만 지엽적으로 사단이 권세를 행사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언제까지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입니다.
사단이 경배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는 것은 십자가 없이 넘겨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아닌 사단의 방법으로 천하 만국과 영광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10절에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만 경배하며 순종하겠다는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행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훼손될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훼손하고, 멀어지게 하는 것들을 추호도 용납지 않겠다는 거룩한 의지가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깨는 모든 것을 물리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받은 시험을 우리들은 지금 받고 있습니다. 경제적, 종교적, 정치적 시험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3가지 시험을 받으면서 “나는 말씀을 의지하는 존재, 나는 시험하지 않는 존재, 나는 경배하는 인간이다.” 이것으로 이기셨습니다. 십자가 없는 면류관은 없다, 십자가 없는 면류관을 얻으라는 것이 사단의 시험일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메시아가 되는 지름길, 고통 없는 방법, 기적으로 증명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아라, 인성을 포기하라는 것이 사단의 시험이었지만 철저히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 낮아지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이것이 시험을 이기는 방법이었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시험을 받았습니다. 불순종으로 실패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습니다. 불순종으로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습니다. 순종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이후에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승리의 방법을 잘 배워서 적용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꼭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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