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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미문 곁의 인생

by ysong 2021. 11. 11.

사도행전 3:1~10절

교회가 출발했습니다. 성령충만한 이들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이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교회에 모여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고, 교제했고, 예배를 드렸고, 나눔을 실천했고, 복음 선포에 열심이었습니다.

 

2:43절에 보면 기사와 표적이 많이 일어났다고 했는데, 3장은 그 중에 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건을 찬양가사로 부를 정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은과 금 나 없어도)

 

1-9시에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은 하루 3기도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침 9, 12시, 오후 3시입니다.(기도의 습관을 가져라)

하루 중에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 교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숫자마다 의미를 갖고 있는데, 두 명이라는 숫자도 의미가 있습니다.

2명은 증인의 수입니다.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신화나 전설이 아니다. 2쳔 년 전 성전 미문 앞에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2-걸인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4, 22절에 그의 나이가 40여 세였음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날 때부터 걷지 못했고, 앉은뱅이로 구걸을 했습니다.

희망과 소망과 거리가 먼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기계적으로 구걸하는 사람입니다.

미문을 통해 성전에 들어간다는 것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가 아니라 안했습니다.

그에게 미문은 그림에 떡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미문과 걸인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미문은 황금으로 입혀진 문이었습니다. 성전에 드나드는 사람들마나 자부심을 갖게 했습니다.

미문은 허영과 교만이 녹아져 있는 문이었습니다.

선택받은 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황금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동남아 사원을 보면 화려하고 웅장합니다. 미얀마의 사원은 황금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종교적인 허영과 교만이 녹아져 있는 것입니다.

유럽의 대형 성당, 국내 대형교회, 모두 종교적인 허영과 교만이 녹아있습니다.

 

걸인은 종교적인 교만과 허영심을 자극하여 먹고 사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제를 남들이 보도록 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런 종교심을 이용한 것입니다.

 

미문과 걸인은 화려하게 치장된 예배 속에 숨은 그림처럼 보입니다. 

은과 금을 구걸하는 예배자의 모습의 자화상입니다.

 

3- 거지는 평소와 같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생 구걸로 연명해 온 그는 무슨 특별한 의미를 두고서 베드로와 요한을 본 것이 아닙니다.

아무 의미 없이 습관적으로 그들을 올려본 것입니다.

기대감 없는 일상, 기계적인 일상인 눈은 힘없이 떠 있을 뿐이었습니다.

생기가 전혀 없는 눈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습관적으로, 아무런 기대감도 없이 참여하는 예배자의 모습은 아닐까요?

 

4- 베드로와 요한은 건성으로 쳐다보는 거지를 응시했습니다.

성전 앞에서 기계적으로 사람을 쳐다보는 걸인의 모습과 대조를 이룹니다.

건성으로 보지 말고 자신들에게 초점을 맞추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거지를 주목하여 자신들을 보라고 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베드로와 요한이 이 문을 통해 성전에 들어간 것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날에 거지가 눈에 들어오길 시작했습니다.

성령충만하여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허영과 교만에 빠졌던 제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교제와 기쁨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출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어느 순간에 앉은뱅이 걸인을 일으키는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는가?

주님께서 어느 순간에 베드로를 통해 친히 역사하셨느냐?

 

베드로와 요한의 멈추었던 순간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멈추지 않았던들 그들을 도구삼아 거지를 일으켜 세우시는 생명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역사는 멈춤으로 시작된다는 것이 오늘의 본문이 던져주는 교훈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멈춤입니다. 어린아이가 울면 엄마 하던 일을 멈춥니다. 

 

현대인들은 바쁘게 살아갑니다. 타인을 위해 멈추지 않습니다.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은 타인을 위해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순간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음은 시선입니다. 구걸하는 거지을 건성으로 보지 않고 집중하여 봤습니다.

그동안 수 없이 이 문을 통해 들락날락 했을 텐데, 바로 그날 그 걸인이 눈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눈에 들어 온 그 순간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 어느 순간에 베드로를 통해 친히 역사하셨는가?

가던 길을 멈추는 순간, 보잘 것 없는 걸인을 주목하여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바쁘게 가던 길을 멈춰보세요. 눈 높이를 낮춰보세요.

생각하지 않았던 작은 은혜를 체험할 것입니다.

 

5-앉은뱅이 거지는 무엇가를 얻을까를 기대하며 베드로에게 온 시선을 집중하였습니다.

 

6-거지가 보기엔 베드로와 요한은 특별하거나 대단한 인물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갈릴리 어부 출신인 베드로와 요한 역시 보잘것없고 비천했습니다.

은과 금과 같은 귀중한 것을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는 기대 이상의 것을 줬습니다.

자기 속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라는 초청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예수를 보라는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신 생명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근본적인 문제의 해답이십니다. 은과 금은 주면 또 은과 금을 줘야 합니다.

40년 동안 그는 은과 금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돈은 있지만 예수님의 능력이 없는 교회가 있습니다. 중세교회가 그랬습니다.

 

저는 은과 금은 없습니다. 여러분들과 비교할 때 잘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예수의 생명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길 바랍니다.

 

7-손을 내밀어 잡아 일으켰습니다. 발과 발목에 힘이 들어가 바로 뛰어 서서 걸었습니다.

성전으로 들어가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며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12-개인의 권능이 아니다. 우리를 보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고 외칩니다.

 

16-그가 일어난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완전히 낫게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그 이름을 믿는 우리의 믿음으로 된 것이며 예수를 믿는 그 믿음이이 사람을 완전하게 했다. 그러니 예수를 믿으십시오.

 

19-예수로 말마암은 믿음이란 회개하고 돌이켜 죄사함을 받아라, 새롭게 거듭날 것입니다.

 

기적은 표지판입니다.

안내판입니다. 중요한 일을 이루는 단서 노릇을 합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킴으로 이날 5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특별히 사용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네 은혜가 족하다고 했습니다. 약한데서 강하게 사용하신다고 했습니다.

 

기적과 표적은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행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때가 이르면 이뤄집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통치에 대한 인식, 인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골짜기를 다니면 거기를 꼭 다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멈춤과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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