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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조롱에서 회개로

by ysong 2021. 9. 24.

사도행전 2:37~42절

사도행전 2장은 교회사에서 중요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출발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교회는 성령충만 곳임을 출발하면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성령충만은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9~11절에 모인 이들의 국가를 표기하고 있습니다.

유럽, 아프리카, 중동을 비롯한 15개국입니다. 

대부분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한 이후 흩어진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태어난 현지의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

그런데 이들이 제자들의 말을 각각 자신들의 모국어로 알아들었습니다. 

 

12~13절에는 반응이 나옵니다. 

놀라며 당황했습니다. 

갈릴리 사람이란 가진 것이나 배운 것이 없이 무식한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상상치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게 되었습니다. 

현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각으로 조롱한 것입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보가나 들으면 아니라고 부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며 조롱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세계는 다릅니다.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마세요.

신앙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다윗의 공통점은 믿음의 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자신들에 일어난 일이 성령님의 역사임을 역설하면서 설교합니다. 

14~36절이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15절에 새술에 취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면서, 누가 아침 9시 술을 먹겠느냐고 합니다. 

경건한 유대인은 아침 9, 12, 오후 33차례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는데, 아침 기도시간에 누가 술을 먹겠느냐는 것입니다. 

 

16~21절에 요엘선지가 예언한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고 설교합니다.(요엘서 2:28~32)

성령의 역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령의 강림이 자신들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변증하기 위해 인용한 말씀입니다. 

 

17~18절에 요엘 선지자가 성령이 임하실 때 나타날 현상입니다.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는 것입니다. 

남녀 종들도 예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언, 환상, 꿈은 선지자들의 고유한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젊든, 늙든, 남녀종이든 선지자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요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은, 갈릴리 무식한 촌놈들이 다른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전하게 함이 바로 성령충만함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는 일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선지자의 약할,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21- 하늘의 기사, 땅의 징조, 피와 불, 연기= 20- 크고 영화로운 날~~

종말 직전의 대환난를 의미합니다.

성령님이 주님의 재림의 날까지 항상 함께 사역할 것입니다.

 

21-환난과 종말이 지금 당장 닥친다 해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 구원을 얻습니다. 

사람이 주의 이름을 부르고 구원을 얻는 것은 그에게 성령님께서 임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이상의 베드로의 설교는 새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다른 언어로 말함은 요엘의 예언대로 성령이 강림하였다는 증거입니다. 

 

22~36절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고난 당하여 죽으셨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시어,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부어주셨다는 내용입니다. 

 

22-나사렛 출신 예수가 권능과 표적 기사를 베풀어 너희 앞에서 그가 누구인가를 증명했다는 것입니다. 

23-하나님이 전하신 바에 의해서 그렇게 돌아가신 것이지 힘이 모자라거나, 너희들이 기운이 많아서 그렇게 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4-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뒤, 사흘째 되는 날에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망의 덫으로부터 풀어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25~28-시편 16:8~12절 다윗의 시를 인용하여,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했습니다.

다윗의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썩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 자신이 썩임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영원히 죽어 버려서 다시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9~32- 인용한 다윗의 시에 베드로의 해석을 붙이고 있다.

다윗의 시가 다윗 자신에 관한 고백이 아니다.

다윗 시대부터 1천 년 후에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다윗의 예언이다.

그는 선지자인 까닭에 메시야에 대해서 이것을 쓴 것이다.

우리가 다윗이 예언한 예수를 증인하는 자들이다.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베드로, 변화된 베드로 모습입니다.

누구 큰지, 벌벌 떨면서 숨어 지냈던 그들, 갈릴리로 고기가 잡으러 가자며 실패자였는데,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담대히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경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모습입니다.

며칠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베드로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 베드로를 바꾸었는가?

1:8절의 말씀의 성취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권능을 받고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는, 예수님의 약속의 성취로 성령을 받았기에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33-이것이 성령의 강림의 사건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 받아서 보내셨고, 성령을 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34~35-심판주로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하나님의 우편은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편은 통치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에 대한 표현입니다.

원수로 발등상 되게 하실 때까지 앉아 계시다가 오셔서 그 일을 다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36-결론

너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였다.

너희들이 메시야를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살리셔서 주=주인 되시며, 메시야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분명하고 단순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37-반응

마음이 찔려서 어찌할꼬 하거늘로 반응합니다.

무엇에 찔렸는가? 예수를 죽였다는 것, 메시야를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자신들이 예수님을 죽였다는 깨닫고 자각이 온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죽인 죄인이다.(지금도)

설교를 듣고 각성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죄에 대해 둔감-다윗도 밧세바 사건을 저지르고 1년 가까이 의식하지 못함)

 

38-회개하라=돌이켜라, 가던 길에서 돌아서라, 방향전환, 생각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확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님, 세례요한, 베드로, 바울의 설교의 주제는 회개입니다. 

회개 없는 신앙이 가능한가?

죄에 대한 심각한 결단이 없이 십자가의 구원의 의미와 깊이 알 수 없습니다.

계시록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어디서 떨어졌는지, 처음 행위는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예수를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아라=죄의 연합에서 떠나 그리스도와 연합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선물을 받아라 = 여러분들에게도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한 새로운 삶을 출발하라고 하십니다.

성령이 그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최고의 선물이 성령입니다.

 

=회개하고(내 고집, 소원, 목적을 바꾸고)-예수의 세례를 받고-죄사함을 얻게 되면

-새로운 영이 들어와 새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39-우리들에게 유효합니다.

41-회개하여 3천명이 세례를 받았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여 해석한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니까 어떻게 되었는가?

새술에 취했다고 조롱하던 그들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마음의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찌할꼬를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언제 말씀을 듣고 찔림을 받았는가? 성령충만했는가?

나는 괜찮다는 생각, 나는 완성되었다는 생각은 바리새인의 생각입니다.

성령의 역사함에 조롱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겸손하게 죄에 자각하고 어찌할까, 회개와 성령충만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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