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9~23
예수님이 오신 것은 지구상에 가장 위대한 사건이며, 천지가 진동할 기쁜소식입니다. 그렇다면 2000년 전 사람들은 주님의 오심을 대서특필하고 대대적인 경축 행사를 벌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태어나실 때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는 목동, 성전에서 기도하는 늙은 시모온과 안나, 동방박사만이 알아봤을 뿐 예수님이 누구신지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의 신앙, 예수님의 동정녀탄생과 유년시절인 ‘예수님의 사생애’를 배웠습니다. 그로부터 30녀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누가복음 3:23절에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말씀처럼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즉 메시아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세례요한이 사역하는 요단동편 유대광야에 나타나셨습니다.
그 곳에는 이미 큰 인파가 몰려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가 오셨지만 아무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세례요한만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보는 입장이었지만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뵙는 순간 이렇게 외쳤습니다. 요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즉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보라고 외쳤습니다. 세례요한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메시아를 볼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광야의 소리로 독특한 인생을 살았던 세례요한의 짧은 생애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과 세례요한의 사역은 중요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1. 세례요한은 누구인가?
여러분들은 어떤 세례요한이 상상됩니까? 독특한 외모와 말투에서 강인함이 풍겨집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예수님과는 엄마쪽으로 먼 친척이기도 합니다. 세례요한은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아버지 사가랴를 통해 사명이 주어졌으며, 엘리야의 심령으과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30세에 요절한 인물입니다.
나실인으로 성장한 세례요한은 어리서부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않았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광야생활을 했고, 광야에서 회개의 주제로 설교를 했고,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의 사건을 책망했다는 이유로 감옥생활 끝에 참수형을 당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토록 짧은 사역과 인생을 살았지만 세례요한은 하나님이 이루고자 했던 예언을 성취했습니다. 하나님은 끝내 돌이키지 않는 이스라엘백성을 떠나면서 내 사자와 언약의 사자를 보낼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내 사자는 세례요한을, 언약의 사자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말라기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또 말리기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오신 것은 죄에 대한 심판을,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서 마음을 돌이키게 할 것이라고 말라기 선지자가 400년 전에 예언한 것인데, 그것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그 예언대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먼저 세례 요한이 등장해서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했던 것입니다.
구약을 닫고 새 언약을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의 이미지는 구약을 닮았습니다. 그는 구약의 인물의 이미지를 많이 담고 있습니다. 사무엘과 엘리야의 사명과 모습을 닮았습니다. 사무엘은 사사시대를 닫고 왕정시대를 연 인물입니다. 사울왕과 다윗왕에게 기름을 부어 왕정시대를 열었습니다. 세례요한도 구약을 닫고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게 세례를 줌으로 메시아 왕국의 도래를 열었습니다.
또한 세례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심판을 선포했던 모습이 열왕기상하에 기록된 엘리야와 흡사합니다. 엘리아는 허리에 가죽 띠를 티고 이스라엘의 회개와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제사장의 아들로 평생 혼자 살면서 이스라엘이 회개하기를 바라며 눈물을 흘렸던 예레미야의 모습도 보입니다. 그도 광야에서 혼자 살면서 회개를 외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구약(옛 언약)을 대표한다고 합니다.
세례요한은 언제 활동했을까요?
세례요한이 활동했던 시대에 대해서는 누가복음 3:1~2절이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약 AD 30년경에,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있었습니다. 이 때 빌라도는 이미 유대 총독으로 10년 정도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빌립이 이두레지방과 드라고닛지방의 분봉왕으로 있었습니다. 이두래지방과 드라고닛 지방은 이스라엘 북동쪽, 다메섹 서쪽지방을 말합니다. 또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있었습니다. 아빌레네는 이두레 동쪽 땅을 말합니다. 그리고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 세례 요한이 드디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입니다.
이렇게 세례 요한이 등장할 때, 당시의 이스라엘은 어지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권력의 실권은 당시에 로마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가 갖고 있었고, 왕권은 간사하고 잔인한 헤롯이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간신배가 들끓고 있었고, 제사장들은 전부 타락해서 전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을 때였습니다.
세례요한의 설교제목은 회개였습니다. 누가복음 3:3절에 보면,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세례요한은 다른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외치는 주제는 오직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회개는 그동안 잘못 살아왔던 삶의 자리를 정상화시키는 것입니다. 회개는 삶의 현장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을 정상적으로 회복시켜서, 삶의 자리에 더 깊이 뿌리내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오해합니다. 회개했다고 하면서 삶의 자리를 떠납니다. 직업을 바꾸고, 직장을 바꿉니다. 직장생활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은혜 받았다고, 회개했다고 신학교를 갑니다. 삶의 현장을 떠나버립니다. 아닙니다. 회개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동안 잘못했던 것들을 바로 잡고 올바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자기가 하던 것을 더 성실하게 더 완벽하게 더 충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구체적인 내용은 누가복은 3:10~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회개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행동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지정의=죄인인 사실을 알고, 슬퍼하고, 온전하기 위해 결단하는 것.
세례요한은 대단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바울이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정도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한 구약에 능통했던 알렉산드라 출신 아볼로는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런 인기와 영향력을 흔들리지 않는 세례요한의 영성에 놀랐습니다. 세례요한은 마지막 선지자이며,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습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회개를 선포하는 세례요한을 메시아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따랐고, 예수님의 제자들 중 안드레, 사도요한, 빌립 베드로, 나다나엘이 세례요한의 제자였다는 사실을 비쳐 볼 때 그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영향력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명에 충실히 행하기 위해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 머물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요즘 최고가 되기 위해,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목사들에게, 신앙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위기는 어려울 때가 아니라 잘나갈 때, 인기를 누릴 때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망각할 때입니다. 우리가 주님만 바라볼 수 있는 광야의 자리를 떠나는 순간 위기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세례요한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여러분의 신앙과 삶을 지켜 줄 수 있는 광야의 자리,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마시길 바랍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회개를 힘쓰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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