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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행적을 따라서

심령과 지혜가 강하도록 양육하세요

by ysong 2020. 8. 17.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 2:40절과 2:52절에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심령과 지혜가 강하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통해 자녀교육의 교훈을 배우고자 합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어린시절에 대해 표현한 말씀인 눅 1: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와 눅 2:40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입니다.

 

두 어린이는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또한 영적으로 강하게 자랐습니다. 세례요한이 영적으로 성장한 것을 심령이 강하여짐으로”, 예수님은 지혜가 충만한 것으로표현하고 있지만 같은 의미입니다.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심령이 강한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제주도 심해에서 잡힌 돗돔에 대한 기사를 봤습니다. 제주해역에 잡힌 돗돔은 심해 4~500미터 살고 있는 것으로 길이 1.8m, 무게 115kg으루 가격이 무려 520만원에 팔렸다는 내용입니다. 잡힌 돗돔은 바다속 물의 압력을 견디기 위해 두꺼운 비닐과 지방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4~5천미터에 살고 있는 물고기들은 수심 4~500미터의 사는 물고기와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고 있습니다. 수심 4~500미터에서 사는 물고기는 두꺼운 비닐과 지방으로 자신으로 보호하지만 수심 4~5천미터의 물고기들은 몸속의 수분과 기름으로 엄청난 압력을 견디고 있습니다.

 

심령이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한 것은 그들의 마음에 가득하여 환경의 어떤 압력도 견디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고 하여 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종교인들을 질타했습니다.

 

사람들은 더 높은 자리, 큰 의자를 앉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기 싶어서입니다. 그들은 심령이 약하기 때문에, 처참한 실상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다른 사람이 알까봐 두려워하여 두꺼운 비닐과 지방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의 인생은 풀, , 안개와 같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즉 심령이 강하지고, 지혜가 충만한 사람은 인간의 실상을 알고,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4~5천미터 심해에 사는 물고기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듯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겉과 속이 다른 동네입니다. 베들레헴은 유대 고울 중 가장 작은 마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을이 되었습니다. 모든 기독교인의 영적 고향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곳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만 있으면 아무리 작은 곳도 작지 않습니다. 예수가 없다면 아무리 큰 곳도 크지 않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큰 사람도 예수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아 보이는 사람도 그 속에 예수가 있다면 그는 절대로 작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찮은 사람이 아닙니다.

 

겉이 아닌 속사람으로 심령이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한 자녀들을 양육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과 사람에게 칭찬을 받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2:52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와 행 16: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두 분의 유년시절의 공통점은 사람과 하나님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 디모데는 신앙이 좋은 부모 밑에서 유년시절을 보냄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 살았습니다. 부모의 좋은 신앙의 배경 위에 서는 것은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꼭 이같은 공식이 모두 동일하게 성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신앙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모두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 좋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자녀 세례요한, 아브라함의 자녀 이삭, 이삭의 자녀 야곱, 한나의 자녀 사무엘, 유니게의 자녀 디모데는 신앙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모의 신앙을 이어받아 바르게 선 자녀들입니다.

 

부모의 신앙을 물려받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납과 아비후은 제사장으로 다른 불을 사용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사무엘의 아들 요엘과 아비야가 브엘세바 사사가 되었지만 뇌물을 받아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신앙의 행위를 따르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엘리제사장의 멸망을 보고 얼마나 많은 신앙교육을 시켰겠습니까?

 

부모는 불신앙이었지만 좋은 신앙을 갖은 분들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불신자이었습니다. 이같은 사실을 이사야선지자는 이사야 52:2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로마시민권과 바리새인이 되도록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회적인 성공에 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예수님은 믿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다메석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고향에서 10년을 보냅니다. 바울은 부모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하지만 부모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거나 완강히 복음을 거부했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신앙의 연속성과 불연속을 모두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앙 가문이 되고 연속적으로 이어질까요? 각자 각자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고, 세우도록 노력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정의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은 신앙의 출발지입니다. 가정이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유대인 가정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최고의 가치는 가정입니다.

 

유대의 아버지들은 직장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자녀와 30분씩 일대일로 대화를 합니다.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니? 선생님이 무슨 질문을 했니? 너는 어떻게 대답했니?’ 이렇게 반드시 30분씩 자녀들과 일대일도 대화를 합니다. 그러니까 자녀가 4명이면 2시간이 필요하고, 6명이면 3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청년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도 자녀들과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직종을 선택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 교사라든지 교수라든지 자영업이라든지, 이렇게 가정에서 자녀들과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직종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자녀들과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대화하고 토론을 합니다. 이것이 저들의 행복의 척도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반드시 일주일에 한 번 가정예배를 드립니다. 일주일에 한 번 안식일에 가정에서 삼대가 모여 먹고 마시고, 웃고 즐기면서 성경을 가지고 서로 토론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묻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육체가 튼튼해지고, 이성의 활동이 왕성해지고, 사고가 깊어지고 발표력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게 되어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안식일 가정예배의 유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다들 부부관계가 좋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이혼율을 자랑합니다.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지 않습니까? 이런 면에서 예수님의 부모였던 요셉과 마리아가 참 부모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부모역할을 깊게 생각하며 심령이 강하여지고 사람과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자녀들을 양육하겠다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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