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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하나님(완성)

야곱의 씨름

by ysong 2021. 7. 30.

창세기 32: 21~32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신앙적으로 배울 점이 많습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을 해서 축복을 받은 장면입니다.

그러나 환도뼈가 위골이 나서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앞서 야곱은 에서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 심부름꾼을 보내면서 에서를 주로 부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 문득 마음 가운데 떠오른 것이 예물을 보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물은 상대방의 마음을 누그러뜨린다고 했습니다.

- 에서를 만났을 때 7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갔습니다.

대단한 낮아짐입니다. 최대한 예의를 표현한 것입니다.

- 말도 잘했습니다.

형님의 얼굴을 보니까 하나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이같이 노력한 이유는 20절에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나를 받아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과 가축들을 얍복강을 건너게 하고 자기만 얍복강 북쪽에 남아 있습니다.

강을 건넜다는 것은 삶이 새로움에 접어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는데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처분을 바라고 구할 수밖에 없다고 혼자 남았던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은 홀로 남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문제를 푸는데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알고 모든 식구들을 보냅니다.

 

24절을 보면 홀로 남아서 어떤 사람과 밤새도록 씨름을 했습니다.

밤새도록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기도로 상징되는 사건입니다.

기도가 씨름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며칠 전 라반의 사건에서도 경험했습니다.

결국은 라반의 마음을 움직인 분은 하나님이었던 것처럼 그 하나님이 에서의 마음을 움직이면 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25절에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의미는 야곱이 하나님을 이겼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로 하여금 넘어오라고 한 산을 네가 잘 넘었다는 뜻입니다. 승리자가 되라고 내 주신 문제 앞에서 야곱이 문제와 겨루어서 승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27-붙들고 늘어지는 야곱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네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야곱이라고 대답 속에는 네 야곱처럼 살았습니다고 담겨 있는 것입니다.

홀로 맞이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은총입니다.

 

28-하나님이 싸움을 걸어옵니다.

곁에서만 있지 않고 본격적으로 개입하기로 하고 싸움을 걸어오는 것입니다.

이기다=야곱의 뜻과 의지를 막을 수 없음을 보시고

 

이름을 바꿔줍니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이기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기다,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기 시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너를 이스라엘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야곱이 너무 많습니다.

이스라엘로 인생을 마치고 그것이 나라가 됩니다.

 

야곱은 절뚝거리며 평생 살게 됩니다.

너는 이제 육체적으로 죽었다, 내면에 웅크리고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칩니다.

주님이 나의 구주가 되십니다.

문제를 다 맡기는 확실한 현실적인 신앙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 가운데 어떤 씨름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야곱과 같은 끈질긴 싸움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차라리 절름발이가 될지언정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과 은혜를 받아야 하겠다고 끝까지 버티고 나갔던 것입니다.

야곱처럼 끝까지 버티며 애를 써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에서가 어떻게 해서 변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얍복강과의 야곱의 기도였습니다.

씨름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의 응답에 에서의 마음까지 바꿔주는 것까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서의 심경의 변화를 그쪽으로 연결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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