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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신앙의 제자리

by ysong 2021. 4. 2.

요한복음 21:1~14절

부활절예배는 기쁨으로 가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성도로서 사회적인 책임을 가질 때입니다.

현장예배와 온라인 예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과도하게 세상의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닌가요?

이번 정부가 교회에 대한 과도하게 압박을 하는 것은 아닌가요?

세상이 손가락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는 것은 아닌가요?

 

교회가 이런 저런 불편한 질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성도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일단 교회가 여론에 밀려서,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어야 합니다.

교회가 갖고 있는 소중하고 수준 높은 가치 때문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판단의 기준, 분별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많은 내용을 갖고 지금 우리에게 부딪힌 현실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좁혀서 볼 때, 예수님은 율법의 강령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균형 있는 적용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이를 근거로 예배를 드리고,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을 살피는 것입니다.

예배의 가치를 모르는 세상에 대한 배려입니다.

 

만약 세상의 여론이 밀려 온라인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면 그것은 교회가 세상에 매인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속과 욕망의 가치에 매인 증거가 아닐까요.

세상이 손가락질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염려와 걱정으로 떠밀려 결정했다면 아직도 기준을 세상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상은 언제나 그리스도인을 주눅 들게 하려고 했고, 모욕감을 주려고 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부활신앙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부활신앙이 어떤 능력이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나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일 찾아가신 내용입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모욕을 당하셨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의 가치를 모르는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마태복음 27장을 보면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는 자리고 모욕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신을 구원하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로마군인은 예수님에게 홍포를 입히며 조롱했습니다.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오른손에 쥐어주며 왕의 코스프레를 하도록 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편안할지아다라고 하며 모리를 조아리며 조롱했습니다.

강도로 취급을 당했습니다.

나무에 달린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고 말씀이 있는데 저주받은자로 취급을 당했습니다.

흉악범으로 취급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백성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비꼬면서 조롱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희롱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의 가치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모욕하고, 조롱하고, 힐난했습니다. 어쭙잖은 성경의 지식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종교지도자들은 승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런 상황에 누가 주눅이 들었을까요?

누가 두려워하여 숨고 배신했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새로운 메시야왕국을 꿈꾸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주눅 들고 숨은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의 가치관에 매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 번에 걸쳐 수난을 예고하며 부활하신 것을 말씀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주눅 들고 두려워했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다시 옛날 삶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골방에 숨은 제자들을 찾아갔고,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를 찾아갔고, 갈릴리 바닷가에 고기잡이로 돌아간 제자들을 찾아갔습니다.

 

1. 주눅 들어 돌아온 현실은 빈 그물뿐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하니까? 다른 제자들도 함께 따라 나섰습니다.

그 명단이 2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야고보, 요한, (안드레, 빌립) 7명이나 됩니다. 그들은 갈릴리 출신으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어부를 생업으로 삼았습니다.

 

3-어부로 잔뼈가 굵었습니다. 갈릴리 호수를 훤히 들여다볼 정도로 전문가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밤새 그물을 던지고 거두는 일을 반복했지만 빈 그물뿐이었습니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아마도 3년 전에 예수님을 만났을 때를 생각했을지도

-그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들을 향해

-그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지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라고 말함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음

 

이 모습은 어디서 본 듯합니다.

-누가복음 5:1~5,(마태복음 4)

-요단동편에 세례요한의 사역지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다시 어부로 돌아간 베드로를

-밤새 수고했지만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빈 그물을 씻는 베드로를 찾아왔습니다.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순종-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음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렇게 반복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은 이렇게 반복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현실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했단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길을 인도하시는 성령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

-4절에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하더라는 말씀이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을 하다가 위기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떠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성도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빈 그물입니다. 수고의 대가를 거두지 못합니다.

밤새 노력이 헛수고뿐입니다.

 

그래서 부활신앙이 필요합니다.

- 부활신앙은 회복시켜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떻게 회복시켜주시는지 볼까요?

1) 조반을 차려주심(10, 12)=육체의 회복입니다.

-밤새 수고한 그들을 위해 미끄덩거리는 물고기를 잡아 손질을 하여 숯불에 구워

-왜 그렇니? 왜 여기에 있니? 뭇지 않고 그들을 위해 먹을 것을 제공해 줍니다.

-조반을 먹은 후에 변화는 주님이신 줄 알다”(12)

 

2) 다음단계는 마음의 회복입니다. 15~18절의 내용입니다.

주눅 들고, 세 번 배반으로 미안한 마음을 치유주십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치유 약은 사랑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사람과 깨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명약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에 깨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란?

-사랑은 함께 함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죠. 함께 있고 싶어서

-좋은 사람과 함께 함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사랑하게 됩니다.

-세 번 배반하여 떠나버린 베드로를 다시 사랑의 자리로 되돌려 놓고 있습니다.

 

3) 세 번째 단계는 다시 사명의 감당하도록 하십니다.

-어떤 사명인가요? 주님의 양을 먹이고, 치는 사명입니다. 내 양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백성을 돌보는 사역입니다.

-교회를 세워 하나님의 우리 안에서 지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양을 치는 것은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힘든 것입니다.

-양을 맡기시기 전에 사랑이 있느냐고 먼저 물으신 이유입니다.

-베드로에게 어떤 자세로 누구를 돌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들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습니다.

나의 부활이 너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쳤느냐?

너에게 있어서 부활신앙은 무엇이냐?

 

적용) 생활 속에 부활신앙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들의 끝과 주님의 끝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끝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끝이라고 할 때가 끝입니다.

 

지금의 상황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 다른 시작을 하시는 것으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부활은 보혈의 능력입니다.

코로나19에 대한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완치된 사람의 혈액 속에 혈청을 축출하여 환자에게 투여했는데 완치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소수이지만 완치된 사람에게 있는 항체가 치료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예수님의 보혈에 대한 논리적 결론을 갖게 되었습니다.

죄의 바이러스가 예수님을 공격하여 죽으셨습니다. 죽음을 이기도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죽음을 이기는 항체가 있는 것입니다. 그 보혈이 우리 속에 들어와 죽음을 이기고 영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논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부활주일은 우리들에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부활신앙으로 다시 무장할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자녀들을 고아같이 내버려두지 않고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확신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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