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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내 인생에 무덤이 없습니다.

by ysong 2022. 4. 19.

누가복음 24:1~12

자신이 합리적인 사람,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현대들이 기독교의 진리 중에 가장 믿기 어려운 내용을 꼽으라고 하면 무엇일까요?

구약성경에 기록된 창조이고요,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둘 다 믿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분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공생애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공생애 기간 수많은 표적과 이적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사도의 핵심 설교 메시지도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인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2천년 동안 속아서 목숨과 인생을 낭비하게 된 꼴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15:12~13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사람은 대의명분이나, 진실을 위해 죽을 수는 있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우크라이나 국민처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집니다.

그러나 거짓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 놓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가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진리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과 목숨을 걸었습니다.

고로 부활은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수많은 증인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의 증인들은 예수님을 따랐던 이들이기에 이들로만 100%로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려는 사람의 증언은 다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고, 믿는 자를 죽이었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첫 증인들이 여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사회통념 상 여인들을 증인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법정증인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꾸며낸 이야기라면 증인의 자격이 없는 여인들이 아니라 남자로 기록했을 겁니다.

 

주님의 부활은 도망자, 배신자, 두려워 숨었던 제자들을 변화시켜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바꾸셨습니다. 목숨을 걸고 주님의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저도 부활의 증인입니다.

저는 목사라는 직분으로 인해 임종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상대적으로 많이 듣습니다.

임종순간 가족들을 향해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떠난 분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죽음이라는 가장 큰 두려움에 떨고 있는 분에게 시편 23편 중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는 말씀을 읽어주면 죽음을 받아들이고 천사의 얼굴로 변하며 편안해지고 것을 본다는 말도 듣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증언하는 말씀뿐만 아니라 지금 제가 살고 현실에서 부활의 확신을 갖게 되는 분들을 통해 확신하게 됩니다.

죽음 앞에선 사람이 가족과 지인들에게 다시 만나자고 할 수 있는 종교가 기독교뿐입니다.

불교도 사람이 윤회하여 영원히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시 만나자고 말하지 못합니다.

헬러철학의 영지주의자도 영혼은 영원히 산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가족을 다시 만나자고 하지 못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다시 만나자고 하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부활이 주는 능력입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이천 년 전 오늘 새벽에 우리 주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죽음의 종교가 아닙니다.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는,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무덤이 아니라 빈 무덤을 남긴 예수님을 믿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으면 영생도 없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죄사함도 없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승리도 없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소망도 없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절망뿐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는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됩니다.

 

그렇다면 분명하고 명확한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어떤 손해가 있을까요?

무덤으로 끝나는 인생을 산다면 무엇을 허비하게 될까요?

 

누가복음 24장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을 의심했다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24장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고, 영혼만 있다는 유령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새로운 형체를 입고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무덤에 간 여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봤다고 했을 때 제자들의 반응을 볼까요? 11절입니다.

같은 사건을 마가복음에서는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6:11절에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여자들의 말을 얼마나 믿지 않았는지 제자 중에 일부는 실망한 나머지 자기 고향인 엠마오로 갔습니다. 그들은 고향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믿지 못했습니다. 22, 23절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봤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을 다락방에 숨어 지내는 제자들과 함께 나누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제자가 다른 제자들에게 이 충격적인 부활사건을 알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그들이 믿음이 없음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을 알지 못하면 어떤 손해를 보는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4가지의 손해를 봅니다.

- 슬픔과 우울함으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들은 안식일 내내 슬펐습니다.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베푸셨던 주님이었고, 믿고 기대했던 분이었습니다.

기대와 달리 예수님은 무기력하게 죽으셨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모르기에 슬픔과 우울함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 무의미한 헛수고를 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장례를 위해 향품을 구입했습니다.

상향품은 상당히 비싼 가격에 매매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약 6개월이 지났기 때문에 쌈지돈을 탈탈 털었습니다.

기껏 준비한 향품을 사용할 주님의 시신이 없었습니다.

비싸게 구입한 향품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 쓸데없는 불안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 이들이 무덤을 향해 가면서 무덤의 큰 돌을 누가 옮길 것인가를 염려했습니다.

무덤을 막은 돌은 이미 옮겨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불안은 쓸데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마리아를 비롯한 여자들, 엠마오로 가는 제자, 도마, 베드로, 10제자 모였을 때, 11제자가 모였을 때, 물고기를 잡고 있는 디베라바닷가에, 야고보에, 500명의 제자를 비롯하여 성경에는 10~11번 정도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악독한 바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렇게 바쁘게 심방을 다니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말씀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에는 제자들을 부르셨고, 요한복은 20:21절의 말씀처럼 부활하신 후에는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요한복음 20:21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에게는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을 보고 제 살 길을 찾아 도망쳤던 제자들이 죽음도 불사하면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적용) 저의 부활신앙은 무덤이 아닌 사람을 남기는 것입니다.

죽은 건물이 아닌 살아 있는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을 남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선한 영향력으로 사람을 남기시길 바랍니다.

 

자녀들이 우리 부모님은 이런 신앙생활을 했지라고 듣는다면 성공한 인생입니다.

여러분들이 떠난 자리에 남아 있는 분들이 그분은 정말 좋은 기독교인었다고 한다면 사람을 남긴 것입니다.

 

떠난 자리에 주님의 메시지를 남기자가 오늘의 적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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