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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거기서 뵈오리라

by ysong 2023. 4. 10.

마가복음 16:1~8

제자들은 부활을 어떻게 믿게 되었는가요?

나는 현재 부활을 어떻게 믿게 되었는가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까?

 

부활을 믿어진다는 것은 가장 위대한 은혜입니다.

믿음이란 선물을 받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불가능합니다.

인류역사상 완전히 죽었는데 살아나서 영원히 죽지 않은 사건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부활을 처음 접한 제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지점에 이르러 두 분류는 극명하게 갈라집니다.

7절의 말씀이 갈라지는 포인트입니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먼저 갈릴리 가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난 거기서가 갈라지는 지점입니다.

제자들은 거기서 부활 신앙으로 새롭게 무장하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활이 현실로 일어나면 안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엔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빌리도총독입니다.

지금은 성경을 사건을 신화로 여기고 싶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시면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시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면 안되는 반응으로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마태복음 27: 63~66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진짜로 예수님의 말대로 일어날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빼돌리고 부활했다고 소문을 낼 것을 막기 위해서였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실제로 일어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부활을 두려워한 사람도 또 있습니다.

세례요한을 죽인 분봉 왕 헤롯입니다.

헤롯은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마태복음 14:1~2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절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자신이 명령하여 죽인 세례요한이 예수님으로 부활한 것으로 착각하면서 두려워했습니다.

 

현실에서 부활을 처음 목격한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은 예수님이 부활을 처음 목격했습니다.

마태복음 27:54절은 그들의 반응입니다.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그들은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부활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두려운 일입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처음에는 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처음에는 무서워하고 두려워했습니다.

마리아를 비롯한 여제자들과 베드로를 비롯한 남제자들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모두 두려워했습니다.

8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여제자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워했습니다.

 

남제자들도 두려워했지만 행동은 달랐습니다.

마리와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듣고 베드로와 요한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왔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없고 세마포만 남겨진 것을 보게 됩니다.

무덤 안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누가복음 24:12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집으로 돌아가 숨었습니다.

자신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쳤다는 오해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염려였습니다.

그래서 문을 잠그고 숨었습니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받을 박해까지 걱정했습니다.

제자들은 평안을 빼앗겼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숨어 있는 제자들을 찾아가서 하신 첫 번째 말이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그렇게 나타나신 예수님조차 영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떤 제자들은 고향 엠마오로 내려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듣고, 시신이 사라진 것을 목격했지만 문을 잠그고 숨었습니다.

예수님이 미리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거나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천사가 여인을 통해 한 말의 진의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갈 것인데 거기서 너희들을 뵐 것이라는 말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다면 말씀하신 갈릴리로 갔을 겁니다.

그 이후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 번 뵙게 됩니다.

그런데 부활을 경험한 제자다운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무서움과 두려움은 줄었을 뿐 부활신앙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제자들이 부활신앙으로 재 무장되었을까요?

7절에서 말씀하신 거기서 뵈오리라가 실제로 일어난 시간입니다.

이번 부활절은 거기서 뵈오리라는 한 절의 말씀이 은혜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뵈오리라는 말씀을 묵상 중에 받은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거기서는 말씀대로 이뤄진 약속의 장소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거기서 뵙게 됩니다.

거기가 요한복음 21장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입니다.

7명의 제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간 곳입니다.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 자리입니다.

밤새 수고했지만 거둔 것이 없는 자리입니다.

실패의 자리입니다.

그 실패의 자리가 천사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거기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먼저 가서 기다린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거기서 밤새 수고한 제자들을 위해 손수 물고기를 손질하여 조반을 마련해 줍니다.

말씀대로 그대로 됐습니다.

제자들은 말씀을 믿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말씀대로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부활을 믿을 수 있는가 말씀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믿는 믿음에서 부활신앙을 갖게 됩니다.

말씀 믿는 수준에 따라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2) 거기서는 섭리의 자리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것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처음 자리로 돌아갔을 뿐입니다.

잠시 가졌던 희망을 접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물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낙담하여 현실로 돌아왔지만 그 현실이 주님이 말씀하신 거기서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에 하루하루 살지만 그 현실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지만 그 현실은 섭리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3) 거기서는 변화의 자리입니다.

거기서 베드로가 변하고 제자들이 변합니다.

거기서 변화된 제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사도행전을 쓰게 됩니다.

성령을 받아 능력으로 있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게 됩니다.

 

지금도 부활을 믿는 방법은 동일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부활의 증거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믿을 수 있는 것은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은 산자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산자의 하나님-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지금도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들은 살아있는 존재로 지금도 있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자에게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두려움, 근심 걱정을 주님께 맡기게 되었습니다.

염려를 주님께 맡기게 되었습니다.

부활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죽음조차 두려워 하지 않는 부활신앙으로 새롭게 무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들 앞에 펼쳐지는 모든 일 넘어 계신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적용) 여러분의 거기서는 어디입니까?

지금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늘 제자리와 같은 삶의 현실입니다.

조금 좋아진 것 같았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현실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그 현실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습니다.

그 현실에서 말씀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부활신앙을 갖지 않으면 현실에서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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