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둠 속에 빛이 되는 교회
  •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교회
요한복음

끝까지의 사랑이란?

by ysong 2021. 2. 10.

요한복음 13:1~11

유월절의 새로운 출애굽을 이룰 것을 아셨습니다. 

세상 있는 제자들을 살아히시데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예수님의 신실한 사랑이며 유월절의 의미에 담긴 사랑입니다. 

죽음을 통해 이루실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인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기 위해 죽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준 끝까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우리들을 향한 대제사장적인 기도입니다. 

겟세마네동산의 기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끝까지 사랑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우리들이 끝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못한 것에 회개와 더불어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하시고 계십니다. 

남은 시간 동안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영적으로 풍성하시기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발을 씻기는 사랑으로 나타나기를 바라십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끝까지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못한 이유는 내 영이 풍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이 있는 곳에는 사탄도 가장 강하게 역사합니다.

누구나 유다가 될 수 있습니다.

사탄이 덫을 놓았는데 유다가 제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사탄이 가장 시기하는 일은 하나님이 사랑이 나타나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가까이 왔다고 느낄 때 사탄도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사탄에 속아 팔아넘길 생각을 합니다. 

사단이 가룟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기 때문에 가룟유다가 예수를 판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가룟유다는 무죄한 사람이 됩니다.

그게 아니라 가룟유다의 마음이 이미 마귀를 담기에 적합한 마귀의 그릇이 되어 있었기에 마귀가 그런 생각을 주입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담기는 마음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돈에 대한 욕심, 높아지려는 욕망, 탐심, 거짓과 같은 마음은 마귀를 담기에 적합한 그릇이 됩니다.

 

 

세족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발 씻음의 동기와 의미는 무엇일까요?

중동은 샌들을 신어서 상당히 발이 더럽습니다.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종을 시켜 발을 씻깁니다. 

발을 씨기는 일은 종들의 몫입니다.

종들 중에 계급이 낮은 이방인의 종, 여자의 종의 몫입니다. 

 

예수님은 제자의 발을 씻기 위해 옷을 벗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리를 내려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허리에 두룬 수건은 자신을 노예의 신분으로 격하시킨 행위입니다. 

종으로써 마땅한 행동을 보여줌으로 종의 신분을 취하신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합니다. 

 

오늘 본문은 12: 1~11절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씻기 사건과 연결해서 봐야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씻은 행위는 죽음을 예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지들은 예수님의 발을 3년 동안 한 번도 발을 씻겨 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족식은 섬김과  구원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동하신 것입니다. 

구원은 십자가에서 주님의 죽음을 겸손과 감사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입장이 있습니다. 강하게 거부했습니다.(6~8)

왜냐하면 발을 씻겨주는 지도자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생각 속에는 이런 것 하자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인가?

이것을 하자고 고생했는가?

복잡한 심경의 표현입니다. 

또한 자신의 더러운 발을 스승에게 보이는 것을 수치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단오했습니다.

나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베드로가 반응을 합니다. 

온 몸을 씻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온몸을 씻을 필요 없다고 하십니다. 

온몸을 씻었다는 것은 원죄를 씻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발만 씻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자범죄는 날마다 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원죄와 자범죄입니다. 

원죄는 원래 갖고 때어난 죄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간에게 해당됩니다.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죄를 갖고 때어났기 때문에 죄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죄를 짓는 것입니다. 

회심은 일생에 한 번 있는 것으로 그때까지 지은 원죄와 자범죄가 씻김을 받는 것입니다. 

자범죄는 스스로 짓는 죄입니다. 

날마다 스스로 죄를 씻음으로 순결한 주의 신부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12~17절에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십니다. 

섬김의 의미를 알고 섬기는 것이 복이 있습니다.(17)

섬김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섬김의 절정이며, 이 섬기으로 세상은 변화되었고, 인류역사는 변화되었습니다.

섬김이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아담의 다스림은 섬김의 다스림입니다.

교회는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겸손한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겸손은 허물을 덮어주는 의미도 있습니다. 

주님은 이 두가지 사실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목요일 저녁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15절에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십니다. 

 

신앙이 좋고 나쁨은 열심히 있다 없다가 아니라 관계의 깊고 얕음에 있습니다. 

봉사한다고 해서 신앙이 깊어지는 물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적극적으로 예수님께 다가가야 깊어집니다.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제자들도, 더 나아가 우리들도 행하도록 하시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문이 그 사람의 수준  (0) 2021.03.10
서로 발을 씻겨주는 공동체  (0) 2021.02.20
세상 눈치 보지 말고 믿으라  (0) 2021.01.27
교회 안에 교회가 있습니다  (0) 2021.01.20
사랑은 낭비로 이뤄진다  (0) 2021.01.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