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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완성)

박해와 기쁨

by ysong 2021. 1. 19.

마태복음 5:10~12

8복은 산상수훈을 여는 열쇠입니다.

8복이라는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화로 가득한 주님의 말씀의 창고를 발견하게 됩니다.

말씀의 창고에는 고난과 영광이 조화를 이룬 보화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박해라는 마지막 열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탁월한 성품 중 하나는 솔직성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핍박은 정상이라고 대놓고 이야기 했습니다.

예수님은 대놓고 말을 했고, 제자들은 따라갔습니다. 알면서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따르도록 하기 위해 사탕말린 말로 현혹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곳곳에서 박해에 대해 말씀 하셨고, 직접적으로 박해를 받으셨습니다.

 

교회는 코로나로 인해 이중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론도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그렇다고 이를 박해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를 박해로 보면 생명을 우선하는 기독교의 정신과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과거 주기철목사님이나 손양원목사님의 자식들은 일제와 공산당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을 때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박해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박해를 설교하는 저도 아직까지 물리적인 박해를 받아보지는 않았습니다.

말씀을 전할 자격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설교는 준비하면서 박해가 있을 경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진진한 물음을 해 봤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박해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의 무슬림인 88%인 이슬람국가입니다.

현재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어 5%의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주님등록증에 종교를 기입하도록 해서 기독교인이라고 할 경우 군인이나 교사가 되지 못합니다. 또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견고한지 모른다고 합니다. 예수를 쫓다보면 세상 사람들과 삶의 원리가 맞지 않아서 어려움이 뒤따릅니다.

 

8번째 복은 우리시대에서 기독교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8번째 복을 통해 역설적인 진리를 깨닫고 적용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8번째 복은 4번째 복과 중첩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과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다는 의미에서 같습니다.

하나님의 관계에서 4번째 복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지막 복이 같습니다.

성도의 삶은 의=그리스도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에게 새로운 성품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면 박해는 따라온다는 겁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입니다.

 

또한 1,8복은 통하고 있습니다.

언제 가난해 질 수 있는가? 핍박을 받을 때입니다. 그러면 천국을 소유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고 반복하신 이유입니다. 핍박이 받으면 다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 밖에 없다고 노래하게 됩니다. 주 예수보다도 귀한 분은 없네~~~박해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즐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을 소유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박해를 받는 것일까요?

1)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특정한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여기는 관행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거짓으로 장부를 기재하고 거짓으로 업무시간을 쓰는 것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다들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나는 정직하게 기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까다로운 양심의 소리를 막아 버리려고 합니다.

피곤하니까 잘못된 것으로 단정하려고 합니다.

모사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비판하고 미워합니다.

세상에서 인기가 없고 환영받지 못합니다.

동료로부터 따돌림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와 다른 것을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회의 방식을 익히려고 합니다.

세상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있기 때문입니다.

힘의 논리, 세상의 가치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갈등의 구조 속에서 시험, 유혹, 박해가 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꾸 멀어지게 하고 거짓된 자아상으로 살게 합니다.

인간이 만든 문화에 맞춰 살라고 합니다.

이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식된 박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면 점점 달라지 게 됩니다.

세상의 문화와 달라지 게 되어 있습니다.

 

2) 고난은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뜻대로 살면 고난이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전보다 더 큰 어려움 가운데 주님을 쫒아야 합니다.

고난을 이기는 힘인 믿음의 힘을 키워서 고난을 이기게 합니다.

이전보다 흐릿한 믿음이 커져서 의지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을 걷도록 합니다.

고난을 끌어안고 있어도 가볍게 느끼면서 주님의 일을 합니다.

예수님은 박해를 받는 분명한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18~20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박해를 받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께 속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배운 제자들은 핍박 중에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4:29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라고 기도했습니다.

박해 중에 기도하게 해 달라고 했던 베드로는 노년에 기록한 베드로전서 4:12~14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박해에 대한 이유와 의미를 말씀해 주었습니다.

연단하고 고난에 참여케 해서 영광에 참여케 하기 위해서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오해와 조롱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식인종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이것은 나의 몸이니 이 잔은 나의 피로 세운 언약이라고 한 말이 성도들이 아이들을 잡아 그 고기를 먹는다는 이야기로 왜곡되어 소문이 퍼졌습니다.

성도들은 비도덕적 행위자들이고 그들의 회합은 술 먹고 흥청거리며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매주 모이는 성도들의 집회는 아가페(사랑의 연회)라고 이름을 붙여 불렀는데 이것을 근거로 비난했습니다.

성도들은 가정을 파괴하는 자로 비난을 받았습니다. 서로 형제, 자매라고 부르면서 이런 오해를 받았습니다. 또한 방화범이란 비난을 받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런 오해에도 불구하고 경건하고 소박한 그리스도인으로 박해를 견디어 내었습니다.

 

3) 교회자체가 박해합니다.

종교인들이 순순하게 예수님을 따르는 자를 박해합니다.

예수님을 박해했던 이들은 바리새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이 초대교회를 박해했습니다.

가톨릭이 루터를 박해했습니다.

내가 복음의 적이 되면 안됩니다.

 

본헤퍼 목사님이 보낸 편지를 가사로 쓴 찬양이 있습니다.

선한능력으로입니다.

본헤퍼 목사님은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했던 단체에 소속되었는데, 체포되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가 속한 교단이 고백교회입니다.

히틀러가 전 독일국민들로부터 추앙을 받을 때 이들은 이런 고백서를 발표했습니다.

바르메 선언입니다. 서문의 일부 내용을 읽겠습니다.

 

고백교회 총회는 우리의 신앙고백과 독일의 교회를 파괴하는 나치 기독교에 맞서 믿음으로 일치단결하여 그들에게 저항하고자 한다. 그들은 거짓된 신조, 폭력, 위선적인 이념을 통해 독일교회를 하나로 통합하려고 시도하지만 독일 복음주의 교회는 성령을 통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만 하나가 될 수 있다.

바르멘 선언이 성경과 교부들의 신앙고백과 일치하는지 알치하지 않는지 확인해 보라. 만일 우리가 성경에 근거한다면 나치로부터 오는 모든 두려움과 유혹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믿음의 길에 함께 참여하라.“

 

그래서 박해에 대한 바른 해석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의를 위한 박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해서 박해를 받는 것을 의미지 않습니다.

자기가 어리석고 미련해서 박해를 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광신적으로 행동해서 받는 박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사상이나 정치적인 신념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박해의 이유는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10~11절입니다.

의를 위하여,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당하는 박해가 바로 의를 위한 박해입니다.

신앙 때문에 당하는 박해가 바로 의를 위한 박해입니다.

 

박해는 내가 받는 것입니다.

8복에서는 인칭을 다르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1~7복은 그들은으로 3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8복에는 너희라는 2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상인 제자들이 필연적으로 박해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들은 우리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박해를 받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기쁘고 즐겁게 받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과 하나로 묶여 있기 때문에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고 영광에 참여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누리는 기쁨이 천국입니다.

내 마음에 예수밖에 없으면 천국이 임하게 됩니다.

 

고난을 당하게 될 때,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고난 중에 찬송가를 부를 수 있는 기회를 받았구나!

힘들다 죽겠다고 하지 말고 찬송을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구나!

하나님께 허락하신 은혜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회구나!

 

저는 다르면 제가 손해 보는 쪽으로,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떠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견디며 박해와 유혹에 맞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입니다.

이 길이 예수님을 위한 길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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