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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완성)

착하게 살아라

by ysong 2021. 1. 25.

마태복음 5:13~16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말하는 복은 어떤 복인지 알죠?

8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애통하는 자-온유한 자-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을 베푸는 자-마음이 청결한 자-화평케 하는 자-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입니다.

묵상하면 할수록 깊은 통찰력을 얻게 됩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은 아는 것보다 자기의 삶에 적용하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8복의 결론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도덕적인 권면의 말씀입니다.

3절이라는 짧은 말씀이지만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많이들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교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도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와 뜻을 정확히 알고 실천하는 분들은 많지 않다고 봅니다.

오늘 우리 주님이 우리들에게 각자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오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13, 14, 16절에서 너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1절에 등장한 무리와 제자들입니다.

현재는 무리이지만 제자가 될 사람들까지 포함한 너희입니다.

8복의 박해 받고 있는 그리스도이며,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이입니다.

이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어떤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소금과 빛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빵이나 물이라고 하지 않고 소금과 빛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소금과 빛이 갖는 기능과 역할 때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문장은 소금이 되라, 빛이 되라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미 소금이며 빛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소금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빛이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소금과 빛이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소금과 빛이 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금이며 빛이 머무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세상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에 대해 극단적으로 부정적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악한 세상에서 한 주 동안 살다고 왔습니다고 합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이라고 배워서 세상에 대한 부정적입니다.

인간은 악하게 태어났느냐 선하게 태어났느냐고 선악설과 선선설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도덕성을 놓고 분석한 결과입니다.

도덕은 인간과의 관계입니다.

타락한 존재이지만 도덕성은 남아 있습니다.

영성은 하나님과 관계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은 3종류가 있습니다.

피조세계로서의 세상입니다.

공기, , , 나무 새, 짐승들이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관리하고 보존할 세상입니다.

또 하나의 인간계입니다.

예수님이 요한복은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의 세상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는 세상입니다.

악한 세상이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철학, 문화, 정치, 사상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악하다고 했습니다.

피조세계와 인간계의 세상은 사랑해야 합니다.

다만 본받지 말고 피해야 할 세상은 악한 세상입니다.

 

소금과 빛이 머무는 곳은 피조세계와 인간계입니다.

그 곳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야 합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재미있는 그림을 봤습니다.

교회 안에만 촛불이 가득하여 밝게 빛나는 그림이었습니다.

세상은 죄악이고 어둡기 때문에 교회만 환하게 비치고 있는 집단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영적인 자가격리, 생활방역이 무엇인가?

영적인 세계에서도 자가격리와 생활방역이 있구나?

이단은 집단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극단적인 자가격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종교의 집단생활은 매력적입니다.

공동으로 생활하는 것은 이상적입니다.

서로 생활하고 신앙이 같고 인생을 같이 산다는 것은 매력적입니다.

또 여기에 들어와야 구원받는다고 하니까 극단적인 자가격리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과 자가격리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세리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고쳐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수도원이나 광야에서 홀로 3년 동안 보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서 있는 그 곳에서 소금이며 빛입니다.

 

소금과 빛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일까요?

소금을 오래 놔두면 맛을 잃습니까?

우리나라 소금은 오래 놔둬도 소금이 맛을 잃지 않고 오히려 더 짜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소금은 우리나라의 소금과 다릅니다.

대부분 사용한 소금은 사해에서 만들어진 소금입니다.

염도가 낮아서 오래 놔두면 공기와 접촉되면서 흰 가루처럼 됩니다.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소금은 밖에 버려져 사람들의 발에 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버려진 이스라엘 백성을 소금 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에게 벌을 내린 결과입니다.

신명기 29:23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에는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격분으로 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물을 것이요

에스겔 47:11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황폐하게 하게 버려져 밟히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맛을 잃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금은 다양한 용도로 쓰였습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데 사용되었고, 구약시대에는 제사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0:35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레위기 2:13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욥기 6:6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골로새서 4:6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은 이타적인 성격을 담고 있습니다.

뿌려지고 녹아질 때 기능을 나타나게 됩니다.

소금의 일차적인 기능은 맛을 내는 것입니다.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이 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세상을 살맛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예수 믿는 사람들 때문에 살맛난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빛입니다.

세상에 빛을 비추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세상 사람들에게 비쳐진다는 것입니다. 저절로 성도의 삶이 세상에 노출된다는 것입니다.

 

빛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등불은 보이게 하는 것과 안전하게 걷도록 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 빛은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고, 사람 앞에 비쳐야 합니다.

제자는 본래 사람에게 보이게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숨은 제자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제자의 자격을 잃어버리고 제자이면 숨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모든 사람에게 완전히 보일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에게 빛은 친숙한 표현입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을 이방인의 빛이라고 했고, 유명한 랍비를 흔히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빛이 산 위에 있는 산 위에 동네를 밝게 빛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산 위 있는 동네는 바로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산 위에 동네는 부정적인 이미지입니다.

빛이어야 하는데 만행이 벌어지는 공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빛이 비쳐질 때 다 드러나서 새로운 예루살렘이 완성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9:5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로마서 13:2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에베소서 5:8~9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착한 행실은 무엇일까요?

소금과 빛으로 인해 변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좋게 변화시키고 어둠을 물러가게 합니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빛(그리스도)이 사람에게 비치게 하여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8복의 행동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기독교인은 자신이 성취한 것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로 말미암아 하게 하신 것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의 결론을 출애굽기 19:5~6절과 베드로전서 2:9절로 맺고자 합니다.

출애굽기 19:5~6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베도로전서 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소금과 빛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정리한 말씀입니다.

착하게 살아라는 우리들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이 세상의 소금과, 이 세상의 빛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녹이고 태우는,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고통의 과정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녹지 않으면 소금이 그 맛을 낼 수 없듯이, 태우지 않으면 등잔이 빛을 밝힐 수 없듯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안에서 우리 스스로를 녹여야 하고 불살라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이 세상 가운데서 부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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