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9절
8복의 말씀을 다시 시작합니다.
8복은 세상에서 말하는 복이 아니라 성품입니다.
그 성품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드러납니다.
1~4복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성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하나님께 구걸하는 자
애통하는 자-자신에게 의가 없다는 사실에 우는 자
온유한 자-하나님께 길들여진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살게 됩니다.
5~8복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성품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타인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마음이 순결한 자
타인에게 도움을 주면서 교만해 질 수 있기 때문에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처음에는 타인의 아픔에 아파했지만 점점 순결함을 잃어버리면서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5~8복은 이론적인 면에서 크게 어려울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알면 뭐합니까? 실천해야 자기 것이 됩니다.
5복과 6복을 통과한 사람은 7복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단계가 있습니다.
오늘은 7복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통해 화평케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화평케 하는 자는 지난주 표어로 나눈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한 교회와 서로 통한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님들의 가정에 은혜 주시려고 반복해서 들리게 하신 다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화평=에이레네-샬롬-싸움, 다툼, 전쟁이 없는 상태입니다.
화평은 구약의 대 주제어입니다.
1) 하나님과 샬롬
2) 자신과의 샬롬
3)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샬롬
4) 인간과 자연 사이에 샬롬
하나님이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신 상태입니다.
샬롬은 온전한 상태, 완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죄의 힘이 영향력을 끼칠 수 없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화평이 깨진 모든 피조물을 회복시키려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화평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언제나 분쟁, 대립,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딜 가든지 분쟁 속에 휘말리든가 자신이 분쟁의 원인이 됩니다.
소위 문제 인간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악마의 일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갈라진 틈 사이를 메우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무엇이냐?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화평하게 하는 사람인가?
그 공동체에 평안을 가져다주는 사람인가?
화평을 주려고 기도하는 사람인가?
자꾸 물으시고 그 일을 수행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1) 어떻게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는가?
하나님과 내 관계가 회복되어야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내적 자유함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27절에서 예수님은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른 평화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 주님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이 오늘 본문과 요한복음 14:27절의 말씀이라고 봅니다.
주님의 평안을 우리들에게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평안은 세상에서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주는 평안은 물질의 풍요와 안정에서 오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되면 평안을 주실 겁니다.
그러니까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용서하는 자입니다.
용서는 희생이 따릅니다.
용서는 내가 받을 것을 못 받는 것입니다.
손해 보는 것입니다.
마음에 앙금을 치워야합니다.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좋은 관계가 깨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정성을 다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아브람은 평화가 재산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롯과 헤어진 것은 다투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브람은 롯과 다투지 않기 위해 양보하고 손해를 봤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이삭은 화평을 이룬 인물입니다.(창세기 26장)
그랄에 있었을 때 일입니다.
이삭이 축복을 받아 거부가 되니까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블레셋 사람입니다.
이삭이 목축을 하지 못하도록 우물을 빼앗고, 다른 우물을 파면 메우고 자꾸 시비를 걸어옵니다.
이삭도 그들과 싸울 힘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훈련한 318명이 있었던 것처럼 이삭에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충분히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다. 이삭은 힘이 있으면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화평케 살아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선택을 기뻐하셨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긴 것입니다.
이삭이 이렇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화평케 하는 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후5:18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화목하는 직분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추구할 때 화목하게 됩니다.
모이면 싸우는 자라는 말을 들으면 안됩니다.
3) 아들이라고 인정이 되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정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평화를 이룬다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은 아버지를 닮게 됩니다.
고전 14:33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골로새서 1:20절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하나님 아버지가 이 땅에 화평을 주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다투는 사람들을 화해시키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2: 14절, 16절 “엡2:14,16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대가를 지불한 화평입니다.
죽음을 선택으로 이뤄진 화평입니다.
4) 우리는 어떻게 화평을 만들며 살 수 있는가?
요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이기적인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합니다.
조직에서, 관계에서 화평을 이루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손해를 보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화평을 만드는 자로 나서기 전 먼저 할 것이 있습니다.
나의 내면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의 모습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뢰에서 오는 화평을 이루셔야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확신에서 오는 화평입니다.
갚아주고 싶은 마음과 성령의 소욕이 싸우게 됩니다.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화평입니다.
지금 당장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합니다.
이 세상에서 물질로 보답해주지 않아도 참 평화를 주시는 주님을 소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서 있는 곳에서 화평을 만들어내는 피스메이크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 딸로 인정받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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