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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완성)

완전한 공감의 복(1)

by ysong 2020. 12. 6.

마태복음 5:7

5~8복은 성도들이 대인관계에 있어서 어떤 태도로 성품으로 대하는가를 가르친 말씀입니다. 1~4복은 하나님과 소통의 복을 말했다면 5~8복은 받은 복을 어떻게 흘러가도록 하는가에 따른 유통의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복을 시작하면서 두 가지 사실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8복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성품을 가진 분들이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는 단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있어서 가난-애통-온유-의에 주리고 목마른 단계로 성장 하듯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긍휼-청결-화평-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단계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인관계에서 긍휼을 여기는 자를 첫 번째로 삼은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람을 미워합니까? 오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실 줄 믿습니다.

1. 긍휼히 여기는 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긍휼이라는 단어는 우리사회에서 잘 안쓰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그나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친숙한 편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기도할 때 주님! 긍휼히 여겨주옵소서를 가장 많이 합니다.

 

긍휼은 헬라어 엘레몬입니다.

불쌍히 여기다, 동정, 인애, 민망히 여기라고 해석합니다.

같은 의미의 구약의 히브리어는 헤세드입니다. 인애, 자비 사랑입니다.

 

긍휼은 불쌍한 사람을 향해 가지는 마음과 행동입니다.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과 행동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의 입장에서, 그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느끼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런 겁니다.

바르지 못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면 그런 사고방식을 형성될 만한 환경에서 살아왔겠구나!

어떤 사람이 성을 잘 내고 무례하다면 그에게도 어떤 근심이나 고통이 있을지 모르겠구나!

사람에 대하는 태도가 이상한 사람이라면 그의 마음에는 오해가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긍휼은 이처럼 상대방의 마음에 들어가 그의 심정을 헤아리려 보는 것입니다.

심지어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조차도 따지고 보면 저 사람도 참 안됐어라며 측은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공감능력입니다.

영적인 공감능력입니다.

세상을 향한, 사람들을 향한, 심지어 모든 피조물에 대한 영적인 공감능력입니다.

아픈 자와 힘든 자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자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이 긍휼히 여기는 자입니다.

성도여러분!

현재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부족한 상황에 있습니까?

지금의 상태가 긍휼히 베풀만한 삶의 여유가 없고, 의욕도 없다고 한다면 정직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마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 사람을 죄악의 비참함에 빠져 욕망과 욕심으로 가득한 불쌍한 인간으로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길 겁니다.

 

겉으로 보면 은혜와 긍휼은 비슷해 보입니다.

은혜는 죄지은 사람에게 미치는 사랑입니다.

긍휼은 죄악의 결과로 비참한 상태에 떨어진 사람에게 미치는 사랑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는 사랑이라면 긍휼은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행하여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이 타인의 아픔에 아파하니까 복이 있는데, 하나님이 복을 줄 것일세, 힘내게라고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이런 삶을 선택하며 사는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있습니다.

긍휼히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만 아니라 함께 하는 겁니다.

긍휼은 동일시입니다.

긍휼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낮은 자리로 내려와서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2. 그러나 한두 번 도와줄 수 있지만 계속 함께 고통을 나눌 수 있느냐고 물을 때 쉽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손해가 끼칠 것 같으면 얼굴을 돌리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계속적으로 긍휼의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긍휼로부터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성육신에게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우리들의 긍휼의 근거는 죄 용서함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은 죄인들입니다.

용서 받았기 때문에 의인이 되었습니다.

 

내가 긍휼히 받음을 여김만큼 다른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고, 긍휼히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긍휼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인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전가되는 성품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 힘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나가 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나는 너의 은혜의 손길을 거두지 않고 있으며 너는 여전히 긍휼함을 받고 있지 않니라고 말씀 하실 겁니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긍휼을 끌어 올려 주실 겁니다.

 

할 수 있으니까 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할 수 있는가? 받고 경험한 것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했습니다.

용서받은 죄인의 눈물이 사라지고 있는데 그 눈물을 다시 흘리도록 하실 겁니다.

나도 용서 받은 것처럼 저 사람도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따뜻하고 훈훈합니다. 우리교회입니다. 경건을 추구하지만 긍휼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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