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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완성)

내 갈급함

by ysong 2020. 11. 30.

마태복음 5:6

산상수훈의 말씀을 나누는 동안에 신앙에 대한 정립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8복은 복 받은 상태가 어떠한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제자가 추구해야 할 성품이기도 합니다.

 

1~4복은 하나님의 관계에서 어떤 성품을 지녀야 하는가를, 5~8복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어떤 성품으로 대해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앞부분은 비움의 아름다움에 관한 것이고, 뒷부분은 채움의 아름다움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함, 애통함, 온유함은 비움의 아름다움을 가리킵니다.

이런 상태가 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비워야 풍성해집니다.

긍휼함 청결함 화평함은 채움의 아름다움을 가리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이런 것으로 채워야 풍성해집니다.

이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앞부분의 끝과 뒷부분의 끝이 의를 추구하는 삶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4번째 복은 의에 대해 배고파하고 목말라하는 삶을 노래합니다.

8복은 의를 추구하다가 박해를 받는 삶을 노래합니다.

결국 결론은 의를 목말라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의로 채워지게 되고, 그 의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다가 어려움을 만날 지라도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참 제자라는 말씀입니다.

 

의를 추구하고 구현해 가는 삶이 진정으로 아름답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하루 종일 먹지 않았는데 배고프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건강하다는 신호일까요, 아니면 병든 증거인가요? 분명히 병든 증거에 가깝습니다. 입맛이 없다는 것은 몸이 안 좋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으로 목말라 하고 배고파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의라고 말합니다.

 

4번째 복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어떻게 행복한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4복의 의는 1~3복의 결론입니다.

더 이상 가난할 수 없는 절대빈곤에 빠진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나와 하나님께 구걸하여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신 속에 쓰레기 가득 쌓여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슬퍼하였습니다.

그렇게 실컷 울고 있는데 하나님의 위로의 손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신뢰가 쌓아가면서 모든 일에 어떤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처분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 상태에 이르게 되니 어떤 사람이나 환경에 대하는 태도가 온유함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삶의 목적이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4번째 복인 의는 1~3복의 결론이며 최종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란 무엇인가?

의는 중요한 신앙적인 용어입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의에 대해 5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본문, 10, 5:20, 6:1, 6;33절입니다.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의 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의와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는 다른 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의 의는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의라면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는 성화과정에서 나타나는 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찾는 목마름에 대해 시편기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시편 63:1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42:1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가 계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갈하고 영혼이 황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의인의 질서, 기쁨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하나님께 털어놓고 안내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의인의 모습입니다.

 

2) 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의인 이유는 로마서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의를 찾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10, 19~21절입니다.

 

율법의 기능이 있습니다.

- 죄를 깨닫게 합니다.

절망적인 존재구나를 깨닫게 합니다.

선함이 없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개선의 여지가 없고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또 다른 의가 필요합니다.

-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의가 있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일관되게 설명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입니다.

자기 속에 없는 의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의를 자기에게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게 되면서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게 됩니다.

물질이 아닌 하나님 자신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심을 갈망하게 됩니다.

 

이 사람에게 일어나는 자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는 자각이 일어납니다.

매일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자각이 있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채우지 않으면 갈증이 일어납니다.

 

이 열망은 존재의 초라함을 넘어가게 합니다.

그 분을 열망하면 그 분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 분의 성품이 나에게 흘러 들어오도록 열망합니다.

 

3) 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열망하게 됩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가를 살피게 됩니다.

 

이 의를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가?

주리고 목마름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여기서 주림은 다이어트하려고 한 두 끼 굶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식을 하면 3일 째 가장 힘듭니다.

하루 종일 아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정말로 먹을 것만 생각합니다.

먹지 않으면 정말로 힘든 배고픔의 상태를 말합니다.

 

목마름은 마실 물이 없어 이성을 잃을 지경에 이른 상태입니다.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은 것과 같은 타는 목마름입니다.

80년대 타는 목마름이란 민중가요가 있었습니다.

당시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향한 타는 목마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목숨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목마름이었다고 봅니다.

이루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은 갈망을 말합니다.

 

과거 이런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이뤘습니다.

이제는 그 주역들이 타는 목마름으로 권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욕심을 채워서 만족을 얻으려고 합니다.

해소되지 않으니까 다른 어떤 즐거움에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주림과 목마름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주림과 목마름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목마름입니다.

의에 대한 배고픔과 굶주림입니다.

 

혹시 짜증, 의욕이 떨어짐, 만사가 귀찮아하십니까?

그런데 문제가 뭔지 모르고 계십니까?

이는 영적인 목마름으로 인해 오는 것입니다.

이 주림과 목마름은 영혼의 본향을 있을 때 해결됩니다.

의를 추구하는 삶에서 배부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족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를 만나 주시고 채워주시고 만족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맛 본 사람은 계속하여 맛을 추구하는 사람이 됩니다.

삶의 진실이 있고, 참된 인간의 삶을 일으켜 세웁니다.

일상에 일어나는 것이 의에 주리고 목마름 때문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계속적인 의를 추구하게 됩니다.

한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됩니다.

매일 매일 의를 추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지금 추구하는 게 무엇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고 살 때는 세상의 갈급함으로 살았습니다.

채우지 않으면 불안해하면서 걱정하면서 한숨 쉬면서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추구가하는 것이 의이어야 합니다.

열망의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지게되고 의로운 삶을 질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복은 배부름입니다.

이 배부름은 육체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궁극적인 만족에 대한 표현입니다.

 

1~4복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관계를 맺고 살게 되고, 풍성하게 되고, 행복하게 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과 관계가 원만하여 소통이 잘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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