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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완성)

온유와 땅의 함수관계(1)

by ysong 2020. 11. 23.

마태복음 5:5

산상수훈의 말씀으로 살아가기가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적합한가요?

우리들의 눈으로 보면 불가능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산상수훈이 세상을 이기기 위한 결정적인 무기이며 능력이라고 하십니다.

 

정말 주님의 말씀처럼 정글 같은 세상에서 온유하고 겸손하게 살기가 가능한가요?

살아남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까?

당시 사람들도 온유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온유는 약자가 강자 앞에서 처세하는 처세술정도로 여겼습니다.

비굴한 인간의 단면으로 치부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회는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였고, 힘을 추구하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힘으로 지배하는 평화를 추구하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온유한 자가 정말로 매력이 없는 것인가요?

우리 주님이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는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면 결코 매력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온유의 의미란?

사람마다 타고난 성격과 기질이 다릅니다.

성질이 급한 사람이 있고, 느긋한 사람이 있습니다.

천성적으로 부드럽고 우유부단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성격을 사람들을 분들을 칭하여 온유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는 사람들의 이러한 타고난 천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헬라어 프라우스를 쓰고 있고, 같은 의미의 히브리어로는 아나브입니다.

프라우스는 환란, 고난, 절망, 기근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반응을 말합니다.

동의 개념으로는 겸손하다, 가난하다가 있습니다.

즉 온유는 가난한 처지에도, 괴로움을 반응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는 태도를 말합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사람을 온유자라고 합니다.

이런 태도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취득됩니다.

 

이런 분들은 온유하지 못합니다.

감히 나를, 나를 어떻게 보고 이렇게 나를 대우하는 거냐고 따지는 분들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과 권력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는 분들입니다.

평소에는 온유하게 행동하다가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건드릴 때 불쑥 뛰어나오며 반응을 하는 분들도 온유하기 힘듭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맹렬한 분노와 상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온유는 결심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심해서 100번 중에 몇 번은 온유하게 반응할 수 있을 모르지만 곧 실패하게 됩니다.

인간이 죄인인 이상 완전히 온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 하시는 온유는 내적인 부유함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태도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온유할 수 있을까?

1. 온유는 1,2복의 열매입니다.

8복의 성품에는 점프가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께 구걸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 속에 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슬퍼하게 됩니다.

자신 속에 죄의 쓰레기로 가득 차 있는 내면의 실상을 보면서 형편없는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나와 울게 됩니다. 그러면 찾아오는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위로를 경험하면 살아계신 하나님과 본격적으로 동행을 시작합니다.

 

이 위로는 어느 분은 찬송으로, 어느 분은 기도로, 어느 분은 말씀으로, 어느 분은 설교를 듣는 중에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서 구체적으로 간섭하고 이끄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통행이 깊어지면서 하나님을 향한 신뢰함이 찾아옵니다.

 

이 신뢰가 축적되면 바위 같은 믿음이 생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집니다.

사랑받는 존재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 인생에 대해 새로운 안목을 뜨게 됩니다.

 

그러면 나타나는 형상이 외부의 자극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대하게 됩니다.

다윗이 푸른 초장에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찾아오는 여유로 대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심에 대한 확신 속에 내적인 자유함이 찾아오고, 다른 사람에게 관계로 표현될 때 온유하다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도표로 공식을 만든다면, 1, 2복의 단계에 통과한 분이-하나님 신뢰와 내적인 자유함을 누리고-외적으로 온유함으로 표현됩니다. 1.2복을 통과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유함 사람이라고 결과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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