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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완성)

울면 복이 있다(2)

by ysong 2020. 11. 8.

마태복음 5:4절

"복되도다 행복이 충만하다 애통하는 사람이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복되어라, 행복하여라, 슬픔이 있기 때문이다."

 

애통의 강도가 어느 정도일까요?

여기서 애통은 창자를 끊는 듯한 아픔,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동반한 슬픔입니다.

슬퍼하다는 의미가 있는 헬라어 중에서 가장 강한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아들 요셉이 죽은 것으로 믿고 슬퍼할 때(37:34) 사용된 단어입니다.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억눌러 숨겨 둘 수 없는 종류의 슬픔에 대한 표현입니다.

눈물을 억제할 수 없는 슬픔입니다.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애통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애통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애통은 연민, 분노, 한탄, 열등감에서 오는 비관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애통 할 때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것을 잃어버릴 때 찾아오는 상실의 슬픔도 아닙니다.

 

여기서 애통은 3가지 측면에서 나타나는 슬픔입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와 관련한 애통입니다.

심령이 가난해 져서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니까 자기 영혼의 실상을 목격하게 됩니다.

자신 속에 의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은혜로 가까이 가면 없어져야 할 쓰레기가 쌓여 것을 보게 됩니다.

자랑할 것이 없는데 자랑했던 자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이 찾아옵니다.

내가 잘나고 똑똑하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님이 내게 주신 선물임을 알게 되면서 찾아오는 애통입니다.

 

바울은 이런 애통을 경험했습니다.

선을 행하고 싶지만 선을 행하지 못합니다.

마음속에 두 마음이 있어 싸우는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7:23~24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심령이 가난해 져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고 있지만 자신의 뿌리 깊은 악습을 고치지 못한 것에 따르는 애통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이 고통을 겪게 됩니다.

아직도 옛것을 좋아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의지와 결단으로 되지 않습니다.

의지와 결단으로 몇 번은 성공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지속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 좋은 것을 발견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옛것보다 좋으면 됩니다.

방법은 의지와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2) 자기의 죄로 인해 고통 하는 애통입니다.

다윗이 충성스러운 부하이며 장군인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우리아를 전장에서 죽이고 아내로 취했습니다.

1년을 기다리신 하나님이 나단선지자를 보내 다윗의 죄악을 지적합니다.

나단선지자가 다윗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자는 양과 염소가 심히 많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암양 새끼 한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어떤 행인이 부자의 집에 찾아 왔습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암양 새끼를 빼앗아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왕이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다윗이 그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판결을 합니다.

이 판결을 듣고 나단 선지자가 당신이 그 부자라고 지적합니다.

 

이 말을 알아듣고 다윗이 그의 죄로 인해 심히 통곡하고 애통합니다.

그 심정을 시편 51:17절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 6:6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죄로 인해 관계가 단절됨에서 찾아오는 애통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지만 자격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찾아오는 애통입니다.

천국 백성이 되고 싶은데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일까에 대한 애통입니다.

이 땅에 많은 다윗은 죄의 심각한 결과를 알 때 애통이 생깁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은 자신 속에 있는 죄를 아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를 회개함으로 울부짖는 애통은 하나님의 용서와 위로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타인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는 애통입니다.

고통 받는 자에 대한 측은한 마음으로 애통하는 것입니다.

애통은 자신을 넘어갑니다.

가족, 이웃, 나라, 세계로 넓어갑니다.

바울은 이런 애통을 갖고 있습니다.

로마서 9:1~3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예레미야는 민족을 위한 애통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9:1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이 땅의 많은 선교사님들은 땅 끝 마을에 있는 영혼에 대한 애통함을 갖고 그 곳으로 간 것입니다.

 

이렇게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는 이유는 위로 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세상의 위로와 차원이 다릅니다.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위로입니다.

고후 1:3~5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위로해 주실 때 마음을 적시고, 살아계시고 나를 사랑해 주시는 구나.

내적인 풍요로움이 찾아옵니다.

넉넉함이 생기고 찬양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애통하는 자에게 이런 위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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