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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완성)

예배가 향하는 곳

by ysong 2020. 10. 8.

요한계시록 5:8~14

4, 5장은 중요한 주제는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양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제는 영광을 받으시는 어린양을 찬양하는 예배입니다.

피조물인 천사와 신구약 성도들의 대표인 24장로들의 예배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예배는 구도자예배, 열린예배라는 이름으로 예배가 기획됩니다.

너무 세련된 찬양과 실내 환경, 성도들의 감정에 호소하여 위로와 만족을 주는 순서, 성도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기쁨을 주는 설교로 물 흐르듯 진행됩니다. 이런 예배를 보면서 필요하지만 너무 사람 중심의 예배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현대 기독교인이 드리는 예배와 천상의 예배의 근본적인 차이는 방향입니다.

우리들의 예배는 우리들을 향해 있습니다. 자신들의 안위와 만족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상의 예배는 주님께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분이시며, 얼마나 은혜로우시며, 공의로운 분이신가를 드러내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찬양받기 합당하신 어린양 예수님께 향하여 있습니다. 그 분을 찬양하고, 그 분에게 엎드리는 그 분을 향해 있습니다.

 

천상예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8절은 24장로와 네 생물들이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들은 겸손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8절에 엎드려에서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항복인 동시에 지고한 존경을 표현하는 태도입니다.

 

또 그들은 감사 찬양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거문고는 찬양의 도구이다.

 

또 그리들은 기도가 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어려울 때 쉬지 말고, 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겨내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엎드려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1) 4:11절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하고 계신 분으로 예배 받기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2) 5:9절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구원하심 때문입니다.

구원은 민족(족속), 언어(방언), 백성(정치), 사회(국가) 영역들에 미치는 것입니다.

3) 5:10절에서처럼 나라와 제사장과 왕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구원받은 백성들에 대한 지칭입니다.

고로 이 땅에 있는 교회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입니다.

장차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면서 다스릴 자인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4) 5:12절은 어린양은 능력과 존귀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13절은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찬양하고 예배합니다.

1) 수많은 천사들의 찬양을 받는다.

만만이요, 천천인 큰 수의 찬양이었습니다.

보좌의 전 천사가 모두 동원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에는 천사들의 찬양을 여러 번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38:7),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을 때(2:13),

성도가 인침을 받았을 때(7:11),

주님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19:6) 천군과 천사들은 찬양했습니다.

당시 교회를 박해하는 로마군대는 실로 위협적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인간적인 안목으로 볼 때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지키는 천군과 천사는 천천이요 만만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동일합니다.

지금도 천천 만만의 천사가 교회를 지키고 있습니다.

 

2) 큰 음성의 찬양이라고 했습니다(5:12).

이유는 어린양의 승리가 우주적 환희를 가져 왔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성도들의 구원이 너무나도 놀랍고 신기로웠기 때문입니다.

 

13절에 승리의 왕, 만왕의 왕 예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과 아멘이 있는 웅장하고 기쁨이 가득한 예배의 모습이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십사 장로의 예배가 바로 이것이다.

예배 대상이 확실합니다. 어린양이시다.

예배의 태도는 겸손입니다. 어린양 앞에 엎드렸습니다.

예배의 중심에는 감사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예배 가운데는 제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금 대접에 담긴 거룩한 기도였습니다.

예배의 궁극적 목적은 어린양께 돌리는 영광입니다.

 

이 예배는 장차 드릴 예배이고 지금부터 드려야 할 예배입니다.

예배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입니다.

내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시면 됩니다.

 

이기적이고 기복적이고 인본주의적이고 주관적 감정에 사로잡힌 채 예배하는 오늘의 현대 교회는 예배의 본질을 되찾아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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