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5:1~7절
계시록을 살펴보면서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역사의 완성하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지금은 당장 눈에 보이는 강대국이, 세상의 권력이, 힘 있는 자들이 이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장차 완성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강력한 소망을 갖게 합니다.
4장은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그 주변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5장은 어린양 예수님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1절-요한이 또 봤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보였습니다.
그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가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절대주권에 대한 문예적인 표현입니다.
두루마리의 상태가 보였습니다.
일곱인으로 봉인된 상태입니다.
안팎에 글이 가득합니다.
인을 뗄 합당한자가 없어 보였습니다.
이에 대한 사도 요한의 반응은 4절입니다.
사도 요한은 왜 울었을까요?
교회들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위협 아래 처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들은 점점 약하여지는데 박해자의 세력은 점점 강해져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경우 난국을 만난 교회의 활로가 이 책에 있음을 요한은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위로가 이 책에, 새 힘의 근원이 이 책에, 인내와 승리의 비결이 이 책에 있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요한은 순간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이 문제를 해결 수 없다는 답답함이, 염려와 근심으로 울음을 터뜨린 것입니다.
90세가 넘을 것으로 보이는데, 울고 있는 사도 요한의 순수함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강한 소망의 집념은 기도로 표현이 된다. 그 기도는 바로 눈물로 나타난다. 주께서 세상에 계실 때 흘린 심한 통곡과 눈물이 바로 그것이다.
참소망이 우리를 울려 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절망이 아닙니다.
성취에 대한 애원의 표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는 눈물입니다.
결국 밧모섬의 요한은 피조 세계의 침묵 앞에서 절망했어도, 다시 하나님의 세계를 쳐다보는 소망이 그 마음을 불붙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새벽기도, 수요기도회 시간에 이런 눈물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요한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뜻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서 눈물을 흘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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