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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기초(완성)

섬기도록 부름 받은 성도(2)

by ysong 2020. 10. 6.

마가복음 10:41~45

섬김의 출발은 관심입니다.

주님이 관심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주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관한 관심입니다.

그 나라에 어울리는 사람에 관한 관심입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으뜸이 되려고 하지 않고 종이 되는 것에 관심을 갖습니다.

 

제자들에게 그 나라에 어울리는 삶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그 전에 제자들의 관심은 올라감, 높은 자리,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내려감, 섬김, 구원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관심도 나를 넘어 이웃, 이웃에 이웃으로 점점 넓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쓰임 받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이 쓰임을 받을까요?

내가 실력이 있어서 쓰임 받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실력이 있어서 쓰임 받는다고 생각하면 봉사가 자랑이 됩니다.

내가 이룬 업적이 됩니다. 우쭐거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디모데후서 2:20~21이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금 그릇이어야 쓰임 받는 다는 생각에, 금 그릇이 되는 것에 목표를 두지 말라는 겁니다.

은 그릇이어야 쓰임 받는 다는 생각에, 은 그릇이 되지 못한 것에 후회하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깨끗한 그릇입니다. 순종의 그릇입니다. 조금 전에 읽은 예화처럼 대나무와 같이 쪼개고, 파내어 깨끗하게 쓰임 받는 그릇입니다.

그렇게 될 때, 봉사하면서 우쭐거리지 않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봉사의 대가로 중직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봉사의 대가로 칭찬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섬기는 현장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0:38~42에 등장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예입니다.

왜 이런 서운함이 생기게 될까요? 1) 기질과 성격의 차이가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자매인데 마르다와 마리아는 기질과 성격이 다릅니다. 마르다에 기록을 종합해 볼 때(오빠 나사로가 죽었을 때(11), 예수님을 위해 잔치할 때(12), 분주하고 사교적입니다. 부지런히 활동하는 성격입니다. 열정적입니다. 속마음을 솔직히 표현하는 편입니다. 자기주장이 강하게 보이는 외향적입니다. 반면 마리아는 차분하고 감수성이 예민합니다. 조용하며 사색적입니다.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는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두 자매의 공통점은 모두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말씀을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표현이 각각 다르게 나타날 뿐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과 12명의 제자들에 육신적인 필요를 채워줌으로,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영적인 교감을 통하여, 각각 자기 방식대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누가 먼저 마음이 상할까요?

일이 많아 분주한 사람이 먼저 마음이 상합니다. 외형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입니다. 보통 내면적인 사람이 상처를 먼저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마르다와 마리아를 비교해 볼 때 마르다가 먼저 마음이 상합니다.

 

마르다도 빨라가서 말씀을 듣고 싶고, 말씀을 들으려고 영접한 건데, 동생 마리아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고 말씀만 듣고 있으니까 밉상스럽게 보였습니다. 자신도 예수님에게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기를 원했지만 대접하는 일 때문에 못하고 있는데, 동생이 도와주면 빨리 마치고 자신도 말씀을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니까 마음에 화가 치밀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봉사의 현장에서 마르다와 마리아가 있습니다. 기질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표현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 교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필요한 말씀을 듣는 것과 봉사의 조화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존경합니까?

실력은 있는데 욕심은 없는 사람, 통찰력이 있어 존경을 받는데 나서지 않는 사람, 인기가 있어 충분한 부를 누릴 수 있는데 절제하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낮아짐을 경험했기에 낮아진 사람의 고통을 알고 도와주려는 사람이 아닐까요? 섬김의 정신으로 그 영역을 점점 넓혀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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