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3:1~3절
바울이 어떤 교회를 가장 사랑했을까요? 어떤 교회가 바울과 끝까지 연합한 교회였을까요?
빌립보교회입니다. 빌립보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입니다.
고린도교회처럼 은사가 많은 교회도 아닙니다.
베뢰아교회처럼 말씀을 많이 묵상한 교회도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립보 1:8절)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모한다고 표현할 정도로 빌립보교회를 사랑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복음 안에서 늘 형제자매 사이에 아름다운 교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133편에서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연합과 동거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1)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사랑은 반응의 사랑입니다.
상대방이 잘해주면 잘해주고, 상대방이 주면 받고, 주고 받고 하는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자기발전인 사랑인 경우도 있습니다.
스스로 사랑이 생겨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요한일서 4: 10~11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랑의 출발점이 자기나 상대방에 대한 반응이 아닙니다.
사랑의 출발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조건 없이 사랑한 그 사랑입니다.
바울은 성도 간의 관계는 세상의 어떤 관계와도 구별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육의 피보다 더 진한 영적 피를 나눈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 간에 일어나는 불화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덮어주고, 품어주고, 함께 공감하며 서로를 세워주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2) 또 하나 필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너희도 서로 발을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도의 친교는 서로 손을 잡아 주는 것 이상입니다. 친교는 손과 발의 만남입니다. 연합과 동거의 교회, 목장은 손과 발이 만나는 곳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친교는 섬김입니다.
겸손이란?
겸손은 하나님 앞에 참 모습을 볼 때 가능합니다.
사람 앞에서 나를 보기 때문에 우열을 가리게 됩니다. 비교되니까 내가 이것은 너보다 낫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낫다고 합니다. 그래서 겸손할 수 없습니다.
저는 며칠 전 새벽기도 시간에 겸손에 대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약간의 패배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도, 여러 가지 부족한 점도 많아서 심하지만 않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패배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패배의식도 교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세상에서 볼 때 성공한 목회자가 되었다면 자신의 신력이라며 우월의식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월의식은 교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패배의식이 교만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고, 작은 교회로 유지되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큰 교회를 섬기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고, 그 교회를 지키는 것도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는 순간 패배의식으로 살든, 우월의식으로 살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교만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은혜를 놓치면 교만하게 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을 놓치고 형제자매를 놓칩니다.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연합과 동거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경쟁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희생을 했고, 3년 동안 동고동락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각자의 심정에는 경쟁심이 있었습니다. 높아지려는 경쟁심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의 오른쪽과 왼쪽의 자리를 요구했습니다.
이들이 이런 요구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제자들이 화를 냈습니다.
제자들 사이에서 연합과 동거가 깨지는 상황입니다.
경쟁심과 비교의식은 훌륭한 연합과 동거에 방해가 됩니다.
예수님은 낮아져서 죽으시기 위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손으로 씻어주셨습니다.
진정한 연합과 동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지,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진정한 평화를 어떻게 누리며 살아가는지를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요, 존재의 이유입니다. 성도 간의 깊은 사랑이 있을 때 우리들의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이런 아름답고 선하고 기쁨 공동체를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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