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26절
한나가 사무엘이 젖떼기 전까지 길렀습니다.
1:22절입니다.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서 1년이 되면 돌잔치를 하는데, 유대인은 젖을 떼면 잔치를 합니다.
2:11절입니다.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2~3살에 젖을 떼는데, 어린나이에 제사장 엘리에 맡겨져 여호와를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또 2:18절을 보면 약간 성장한 어린나이에 여호와 앞에서 섬겼습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2:11절과 2:18절에서 사무엘은 여호와를 섬겼는데, 다른 단어는 11절에는 엘리 앞에서와 18절에서는 여호와 앞에서라는 단어입니다. 아주 어린나이에는 보호자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지만, 조금만 성장하면 직접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아이의 특징은 2:26절입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에게도 칭찬을 받고,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습니다. 바울의 평생 동역자이며 제자인 디모데가 있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16:2절에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칭찬받고 하나님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을 쓰십니다.
이런 사무엘을 부르시는 장면이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장 2절과 3절은 엘리와 사무엘이 상황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엘리는 점점 어두워지고, 사무엘에게는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는 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의 시대는 가고 사무엘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사무엘을 직접 부르고 있습니다. 7절을 보면 사무엘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있지만 인격적인 교제가 없는 상태임을 알게 됩니다.
그가 드디어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인격적이라는 사실이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 분, 기도의 대상인 분으로 여기면 인격적인 교제가 어렵습니다. 인격이라고 한다면 지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지정의를 갖고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기도 하고, 무한한 지식을 갖고 계시고, 가장 정으리로운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교제의 대상으로 만나야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듣고 말하는 인격적인 교제를 말하는 겁니다. 사무엘은 10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10절에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응답하고 있습니다. 이 자세가 주님이 부를 때 취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교제가 이뤄져야 합니다. 소명입니다. 외적소명은 거듭남이라면 내적소명은 믿음과 회개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성장했습니다. 3:19절에 사무엘이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하나님이 사무엘의 말을 다 들었다는 겁니다. 사무엘의 말이 하나도 헛되지 않도록 했다는 겁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그 결과 20절에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이 표현은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전국민이 사무엘을 선지로 인정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면 백두에서 한라까지 모든 사람들이 사무엘을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의 말을 신뢰하고 그를 통해 하나님을 보셨다는 겁니다.
요즘 장관을 뽑기 위해 인사청문회를 하는데 너무 차이가 있습니다. 사무엘은 여야 모두가 인정하는 인물이라는 겁니다. 누구와 동행하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니까라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이런 자녀들을 키우시길 바랍니다.
이런 정치인이 사사가 선지자가 나를 다스리니까 어떻게 됐는지 7:15~17절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통치하는 동안 안식과 평화가 있었습니다. 또 예배회복이 있었습니다.
노년이 아름다워야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사무엘은 노년도 아름다움 인물이었습니다. 12장에서 사무엘이 마지막 설교를 합니다. 12:3절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 청렴한 정치인, 청렴한 목회자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렇게 인생을 마감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기도와 하나님께 자식을 드리는 어머니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키우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됩니다.
한나는 자식교육을 잘했지만 사무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은 두의 아들을 뒀습니다. 요엘과 아비야입니다. 그들도 성장해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사사가 되었습니다. 그들을 브엘세바의 사사로 임명하여 파송했습니다. 브엘세바는 남쪽 끝입니다. 지방입니다. 그런데 사사가 되자마자 뇌물을 받았습니다. 8:3절입니다.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재판관은 이익을 따르면 안됩니다. 그러면 억울한 사람이 생깁니다.
뇌물은 사람의 눈을 흐리게 합니다. 출애굽기 23: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두 아들이 뇌물을 받게 됨에 따라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는 사사시대로 신정국가입니다. 하나님이 권좌에서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보고 권좌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인데, 이들이 인간왕을 요구하게 된 사건이 바로 사무엘의 두 아들의 뇌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식교육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나는 성공했지만 사무엘은 실패했습니다. 한나는 끝까지 성공한 자식을 키웠지만 사무엘을 늙어서 실패했습니다. 자식교육은 처음부터 끝까지 좋아야 합니다. 부모가 돌아가셔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자녀를 키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돌보셔야 합니다. 부모는 돌아가시면 자식들을 돌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돌보실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나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교육을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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