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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보는 구약성경

네 가정의 이야기 사무엘상(3)

by ysong 2020. 10. 5.

사무엘상 3:13절

엘리는 큰 문제가 없는 아버지입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으로 나라를 통치는 덕망 있는 정치인이며 종교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식교육에 실패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불량배가 된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12절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제사장이 아들인데 행실이 나쁘다는 겁니다. 목사의 아들인데 행동이 나쁘다는 겁니다. 제사장의 아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할 수 없죠. 결국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아니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2: 17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제사장의 자식이 제사를 멸시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자식인데 예배를 안드린다는 겁니다. 성도들의 자녀들이 예배를 안드린다는 겁니다.

 

엘리는 2:12, 17절을 볼 때 영적인 양육을 실패했다고 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바른 예배자로 살아가도록 하는 영적인 양육에 실패했습니다. 자식들이 제사를 멸시할 때 바르게 양육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영적인 양육에 실패한 결과가 2:22절입니다.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2:25절에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이 죽이기로 작정되어 버렸습니다. 영적인 양육의 실패가 죽음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버리시면 끝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이 버린 자식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외형적으로는 제사장으로 행사를 하지만 내면적으로 하나님이 버린 자식이 되었습니다.

 

꼴찌가 꼴찌에게라는 책을 쓴 목사님이며 교수님이 분이 부모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온다고 말을 했습니다. 다만 어렸을 때 부모의, 하나님의 말을 듣고 기회를 가졌다면 더 좋지만 나이 먹어서 갖게 된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2,3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분은 중,고등학교 말을 듣지 않고 어렵게 3류 대학을 졸업했지만 철이 들어 유학의 기회가 찾아왔고, 2,3배의 노력 끝에 현재 교수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의 아들들의 문제점은 하나님이 포기했다는 사실입니다.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신앙교육에는 타협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신앙교육은 어려서부터 해야 합니다. 나이가 먹으면 더 힘들기 때문입니다.

 

엘리가 이렇게 자녀교육에 실패하게 된 이유를 2:2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겼다는 겁니다. 아들이라도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하면 우상입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까요? 아브라함이 볼 때 늦게 얻은 아들이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이삭은 부모의 말도 잘 듣는데 얼마나 귀하고 보배롭게 보이겠습니까? 완전히 우상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위태로우니까 하나님보다 더 소중한 것처럼 되니까 이삭을 바치라고 하지 않습니까?

 

또 한가지는 3:13절입니다.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엘리의 상황을 이해하기도 하지만 엘리는 지나치게 자녀를 방임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주 받을 것을 자청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가만 놔둬 버렸습니다. 금하지 않았습니다. 가만 내버려 두면 망치게 됩니다. 인간 속에 죄성이 없으면 문제가 없지만 어린 아이 죄성이 있어 미련한 것과 악한 것이 들어 있습니다. 안되는 것을 금하지 않으면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자꾸 범죄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을 금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기가 죽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학교에서 교사에게 한 대 맞으면 고발하고, 그런 아이들이 교사에게 맞았다고 자살하게 됩니다. 아이들을 망치게 됩니다. 아이들을 금했다고 해서 아들이 기가 죽습니까? 아닙니다. 잘못된 교육이 얼마나 큰 피해를 일으키는지 모릅니다. 요즘 부모들은 엘리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기르고 있습니다.

 

엘리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자녀양육에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는 4:11절입니다. 비느하스의 아내가 해산이 가까웠는데 언약궤는 빼앗기고 남편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난산을 하고 죽어가면서 자식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습니다.

4:21,22절입니다. 여기 이가봇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 이름은 영광이 없음이란 뜻의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음을 상징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언약궤를 적군에게 빼앗기고 이스라엘의 영적 리더였던 자기 시부와 남편을 하루아침에 잃고 줄초상을 당한 충격들이, 그녀로 하여금 죽기 직전에 자기 아들에게 그런 이름을 붙이게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 이름 뜻 그대로 당시의 이스라엘의 형편은 실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찾아보려 해야 찾을 수 없는 완전한 암흑기요 최악의 대공황이었습니다.

 

영광이 떠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를 전쟁을 이기는 도구로 사용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하나님을 이용만 하는 교인들이 있는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이용만 하려는 가정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납니다.

 

엘리는 자녀교육을 실패의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우리들에게 한나냐 엘리냐입니다. 한나의 방식이냐 엘리의 방식이냐입니다.

 

본문 2:7절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높은자는 엘리제사장입니다. 엘리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낮은 자는 한나이며, 사무엘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 예배를 무시하는 높은 자를 낮추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높은 자를 낮추셨습니다. 높은 자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실패했습니다. 하나님도 포기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높여서 사사로 선지자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를 높여서 안녕과 평화를 이루도록 했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낮은 자 한나에게 평화 자녀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니까 하나님이 더 주셨고,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지니까 그의 인생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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