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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보는 구약성경

고난 뒤에 숨겨진 행복 이야기 룻기(2)

by ysong 2020. 9. 30.

룻기는 다른 길을 선택한 4명의 인물을 다루고 있습니다.

드라마로 룻기를 보다면 나오미를 제외하고 4명의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룻과 대조적인 인생의 길을 선택을 한 오르바, 보아스와 대조적인 선택을 한 기업무를 1순위 사람이 등장합니다.

 

먼저 두 며느리의 선택을 1:8~18절에서 다루고 있고, 4:1~12절에는 기업무를 자격을 갖고 있는 두 명의 남자들의 선택을 다루고 있습니다. 두 사건을 다루면서 오브바와 기업무를 자의 선택은 이기적이었다면 룻과 보아스의 선택은 자기를 희생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1장에서 다루고 있는 두 며느리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순서로 불 때 큰 며느리는 오르바이고, 작은 며느리는 룻입니다. 둘은 동서관계입니다. 참 애먀한 관계입니다. 나오미가 돌아오는 중에 두 며느리에게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을 합니다.

 

나오미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소망이 없어. 나는 그렇지만 너희들까지 그럴 필요가 없지, 너희들은 새 출발을 했으면 좋겠다.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해서 어떤 남자를 얻어서 아들을 낳아서 그 아들을 키워서 너희의 신랑감으로 할 때까지 어찌 기다리겠니, 게다가 나는 늙어서 남편을 만날 가망이 없어, 그러니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서 새 출발을 하면 돼라고 말입니다.

 

이에 대한 오르바와 룻의 반응이 14절입니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맞추면서 작별 인사를 드리고 떠났습니다. 어느 누구도 오르바의 선택에 돌을 던질 수 없습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선택입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것은 전혀 희망이 없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르바와 나오미의 관계는 보통 인간관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주고 받는 조건적인 관계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정도의 인관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오르바에게는 신앙이 없었습니다. 15절을 보면 오르바는 이방신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르바는 신앙이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같이 잇을 때는 믿는 사람처럼 보였는지 모르지만 그는 신앙이 없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이슬람-고향으로 돌아가면 다시 무슬림이 됨. 살아가기 위해 선택하는 그들의 모습입니다. 요즘 교회 안에도 오르바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신앙인처럼 행동하지만 교회를 떠나서는 이방인처럼 행동을 합니다. 그러면서 살기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이기적입니다.

 

룻은 어떤가요? 룻은 소망이 없는 시어미니를 선택했습니다. 평생 과부로 살아가야 하는, 혹시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면 음행을 했다는 이유로 돌로 맞아 죽어야 하는 전혀 소망이 없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롯이 이렇게 선택하도록 한 힘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1:16, 17입니다.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도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고향에 가면 친정어머니도 있고, 딸린 자식도 없으니 새로 출발할 수 있는 기회도 있는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자기마저 시어머니를 떠나면 시어머니가 너무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참 속이 깊은 여자입니다. 이런 며느리를 만나길 바랍니다.

 

이렇게 속이 깊게 한 원인이 바로 신앙이라는 겁니다. 룻의 밑바탕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가 언제 시집을 와서 하나님에 대하 알았을 텐데, 짧은 세월에 깊은 신앙을 갖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이타적인 사랑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희생적인 선교사님들을 보시길 바랍니다. 얼굴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먹는 음식도 다른 그들을 먹이고 입히는 선교사들을 볼 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죽기를 각오한 룻의 신앙을 닮은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롯의 선택은 자기희생적이고 상식을 뛰어넘었습니다. 요즘 드라마는 고무간의 갈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를 욕을 할 것입니다. 며느리들은 시어머니를 비판할 겁니다. 그렇게 해서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겠죠. 그러나 그런 갈등을 다룬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닙니다. 룻과 같은 며느리, 나오미와 같은 시어머니가 없는 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조건적인 관계로는 해결되지 않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꼭 신앙이 있는 며느리를 얻길 바랍니다

 

룻은 현숙한 여인이었습니다.

룻은 성실했습니다. 2:7절입니다.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이렇게 마음씨 곱고 부지런한 여자를 무엇이라고 부르는 줄 압니까? 3:11절입니다.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잠언 31“10~31절에 현숙한 여인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집안을 보살피고 사랑의 말을 합니다. 31”30절에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라고 합니다.

인생은 헛되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헛되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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