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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보는 구약성경

고난 뒤에 숨겨진 행복 이야기 룻기(3)

by ysong 2020. 9. 30.

2,3장은 젊은 과부 룻과 늙은 보아스 사이에 이뤄지고 있는 로맨스를 다루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이삭을 줍는 룻에게 잘 해 줬습니다.

하인들을 시켜 일부러 이삭을 다 베지 말고 남겨 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추수가 마쳐지게 되었습니다.

 

3장은 슬픈 이야기입니다. 나오미가 룻을 기업무를 자격을 갖고 있는 보아스에게 파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가문의 대를 이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룻은 당시 20살 안팎이고 보아스는 어림잡아 5~60대 할아버지입니다.

아마 나오미와 비슷한 연배인 것 같습니다. 룻과 보아스의 사랑은 로맨스는 아니죠.

 

추수가 되면 주인이 하인들과 수확의 기쁨을 줄깁니다. 늦게까지 기쁨을 즐기다가 곡식 단 더미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이날 보아스는 곡식 더미에서 잠을 잤습니다. 룻이 가만히 그의 이불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7,8,9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아스의 태도를 보시길 바랍니다. 9절에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는 상당히 직설적인 청원의 말이기도 하고, 성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보아스의 태도입니다. 10,11절입니다. 딸이라고 부르면서 룻의 태도가 부자가 목적이 아니고 이타적인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자기 이불 밑에 들어온 여인을 손도 안 대고 가만히 재워서 아침 일찍이 깨워서 그리고 보리를 여섯 번 대어서 주면서 시어머니에게 가는 데 빈 손으로 가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적법한 절차를 밟습니다. 4:1절입니다. 기업무를 1순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1순위에게 엘리멜렉의 재산을 팔려고 하는데, 네가 사서 대를 이어라고 말을 합니다. 1순위는 생각했습니다. 나오미는 늙으니까 죽게 되면 엘리멜렉의 재산은 자기 것이 될 것이라고.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보아스가 나오미가 아니라 룻에게 재산을 사서 기업을 무르라고 합니다. 그러자 다시 1순위는 생각했습니다. 엘리멜렉의 재산을 사는데 돈이 들어가는데, 만약 룻이 자식을 낳으면 다시 엘리멜렉의 재산의 룻의 자식에게 줘야 하기 때문에 이중으로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기업무를 의무를 포기합니다.

 

보아스는 의무를 수행합니다. 8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기업무를 의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1순위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말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경제적 문제 앞에서는 이기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철저히 계산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미칠 손해를 감수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해도 경제적인 문제 앞에서 세상 사람과 비슷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다 희생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다 손해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손해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아스는 경제적으로 손해 볼 것을 알았습니다. 인애냐 경제적인 손실이냐. 그 저울질에서 그는 인애를 선택했습니다. 예수 믿고 이타적인 살려면 손해가 따릅니다. 시간, , 노력이 뒤따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인애가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길이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인애냐 손실이냐.

 

이 세상에 1순위와 같은 사람만 있다면 얼마나 냉랭할까요. 얼마나 촉박할까요. 그러나 1순위 사람보다 보아스와 같은 신앙인들이 많기에 아직도 교회가 따뜻하고 사람을 세우는 것 아닙니까? 보아스와 같은 신앙인이 많기에 위로 받을 자가 위로를 받는 것 아닙니까? 우리교회는 보아스와 같은 신앙인이 많길 바랍니다. 그래서 다윗의 족보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책에 기록되는 복을 누리는 신앙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결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후손의 축복입니다. 다윗이라는 위대한 왕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기희생적인 사랑이, 이타적인 사랑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백성들을 대리통치자로 다스리는 훌륭한 왕이 태어났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쓴 책이 바로 룻기입니다.

 

룻기에 마지막 부분에 족보를 다루는 이유입니다. 왕의 족보라면 룻과 같은 이방여인은 숨기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방여인이었지만 인애의 사랑을 포장이 아닌 솔직하고 진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가식과 허영이 없는 솔직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왕의 족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윗은 오실 예수님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인애라는 것은 어질고 자비롭다는 뜻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입을 열면 인애의 법을 말한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언약을 기초한 하나님의 불변적인 사랑을 가리킵니다. 헤세드입니다.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인애는 1) 조건을 넘습니다. 2) 손해를 감수합니다. 3) 절차를 중시합니다 4) 끝까지 책임을 집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익이 있을 때 접근하고, 다른 사람에게 잘 해줍니다.

타락한 인간은 본성은 이기주의입니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하면 이기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관계를 맺게 됩니다.

지금 우리들은 어떤 관계에 만족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혹시 가족 중에, 공동체 안에 넘어져서 비극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룻과 보아스와 같은 인애를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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