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10: 24~35절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은 인상적입니다.
하나님이 둘을 만나게 하신 이유는 이방 선교의 문을 열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먼저 이방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다양한 만남이 있습니다.
꼭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때도 있고, 업무상 만나는 때도 있고, 만나고 싶지 않은 만남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십니다.
제가 여러분을 만난 것도 같은 차원의 만남입니다.
여러분의 다양한 만남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만남을 저는 겸손이가 겸손이를 만나는 것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베드로와 고넬료의 이야기를 더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의 만남은 독특합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성령이 가라고 해서 방문하기는 하지만 참 어려운 방문입니다.
고넬료의 입장에서 천사가 초청하라고 해서 초청하지만 참 어려운 초청입니다.
보통 초청을 받으면 갈만한 집인지 생각하면서 결정합니다.
보통 초청하려고 하면 부를만한 사람인가를 생각하면서 결정합니다.
그러나 둘의 만남은 하나님이 계획하셔서 이뤄졌습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내가 유대인인데, 당신 집에 올 이유가 없는데,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왔다는 겁니다.
고넬료의 입장에서 내도 로마 군대 백부장인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초청했다는 겁니다.
두 분의 동기가 똑같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해서 했다는 겁니다.
두분은 하나님을 생각해서 순종했고, 정성을 다했습니다.
왜 열심히 하느냐 하나님을 생각해서, 왜 섬기느냐 하나님을 생각해서입니다.
혹시 얼굴이 생각이 나면 하나님을 생각해서 연락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도하게 하셨으면 하나님을 생각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도울 일이 있으면 하나님을 생각해서 도우서여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을 생각해서 행동하는 고넬료의 준비하는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고넬료는 하인과 부하를 욥바에 보내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친구와 가족을 불러 모았는데, 뭐라고 말하면서 불러 모았을까요?
유대인 베드로라는 사람을 초청했는데, 오리고 했을까요?
아니면 무조건 오라고 했을까요?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친구와 가족들은 고낼료의 인격을 보고 왔을 겁니다.
혹시나 로마의 높은 분이 오실 것이라는 기대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기다린 분이 도착했습니다.
25절입니다.
마침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상상 못 할 일이 벌어집니다.
식민지 백성을 맞이하는데, 고넬료가 엎드려 절을 합니다.
웬만한 사람은 못합니다.
이는 로마의 인사법이나 유대인 인사법에도 없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하나님을 맞이하듯 대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한 사람의 태도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겸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하듯 사람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는 십계명을 어기는 행동입니다.
하나님 예외는 경배하는 대상이 없습니다.
베도로가 저도 사람입니다.
일어나세요.
베드로의 마땅한 행동입니다.
목사는 말씀을 전하는 일을 감당할 뿐입니다.
대통령, 의사, 변호사, 사장, 나는 사람일 뿐입니다.
나도 죽는 존재입니다.
우리들은 주님만 경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없어질 것을 숭배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고넬료는 말씀을 듣는 태도도 달랐습니다.
33절입니다.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자세이며 예배자의 자세입니다.
베드로의 앞인데 하나님 앞에 섰다고 합니다.
코람데오의 태도입니다.
이런 자세가 없으면 계속해서 판단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한 사람은 늘 겸손합니다.
2) 하나님을 생각해서 행동하는 베드로의 순종하는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모인 사람들을 봤습니다.
베드로는 솔직하게 말합니다.
28절입니다.
나는 유대인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택한 특별한 백성입니다.
비록 식민자 백성이지만 이방인들과 교제를 하지 않습니다.
이방인들은 부정한 짐승과 같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의 행동은 관습법에 위배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시해서 왔습니다.
아무도 속되거나 깨끗하지 말라고 해서 왔습니다.
오기는 왔는데 무슨 일로 초청했습니까?
겸손한 태도입니다.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태도입니다.
베드로는 신령한 목사처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 가치관, 관습을 넘어 순종합니다.
3) 계시의 확장성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가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보겠습니다.
기도로 시작합니다.
환상을 봤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환상이고 요구였습니다.
그렇게 환상은 끝났습니다.
여기까지 1단계입니다.
그 환상을 생각하는 때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들을 맞이한 베드로에게 강력한 성령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들을 따라가라는 음성입니다.
베드로는 순종했습니다.
여기가 2단계입니다.
고넬료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베드로는 고네료에게 오기는 왔는데,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왔는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고넬료가 설명합니다.
천사가 내 앞에 서서 저의 기도와 구제를 기억한다고 하면서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있다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꼴통 유대인 출신이 베드로가 어떻게 깨달았을까요?
고넬료의 말을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기도와 구제를 기억하신다는 것을 듣고 완전히 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말을 듣고 환상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의 깨달음이 34~35절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태어난 배경에 따라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각 나라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를 행하시는 분을 받으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여기가 3단계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깨닫게 하기 위해 이 자리까지 오게 했습니다.
베드로를 깨닫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교만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노벨상 2/3, 세계은행의 70%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도 안에 유대인의 의식이 깨져야 이방인 선교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과정을 통해 환상의 의미를 완전하게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조급하게 일하지 않습니다.
단계, 단계를 거쳐 가면서 깨닫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신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여자의 후손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유다 지파 후손으로, 고난의 종으로 오신 다고 점점 열어 보이셨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기도하고 순종하여 가다 보면 이것을 알게 하시려고 했구나.
이것을 이루기 위해 이런 일을 시키셨구나.
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렇게 하셨구나를 알게 됩니다.
그러니 확실히 몰라도 순종하여 따라가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분명히 볼 것입니다.
4) 베드로를 통해 전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그들을 향해 복음을 전합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마지막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화평의 복음입니다.
36~43절입니다.
예수님은 성령과 능력으로 사역했고 햇고,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부활, 승천을 전합니다.
재판장이신 주님은 사람을 세워 증언하게 하셨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습니다.
베드로의 부흥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죄사함을 받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보낸 이유입니다.
고넬료가 복음을 듣도록 한 겁니다.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습니다.
복음의 핵심을 역설할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윤리나 도덕을 말할 때가 아닙니다.
이 복음이 전해질 때 성령이 임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 납니다
복음을 듣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이 임해야 합니다.
말씀이 들리고 이해한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성령은 믿게 해줍니다.
44~46절은 마가의 다락방에 있었던 성령의 세례가 임합니다.
이방인이 방언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베드로가 듣습니다.
베드로도 놀라고, 고넬료와 가족들이 놀랐습니다.
성령은 세례 안 받았는데, 성령이 임한 다음에 물 세례를 줍니다.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순서가 그때그때 다릅니다.
하나님의 영은 자유롭습니다.
성령이 임한 지 모르는 사이에 성령의 임재 가운데 사는 것을 느낍니다.
극적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성령은 모든 곳에서 역사합니다.
자각하고 의탁하느냐 달려 있습니다.
온전히 나를 드리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은 선교 역사에 큰 이점표가 됩니다.
먼저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면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이 임하면 유대-사마리아-땅 끝까지 증인이 되는 겁니다.
이를 위해 짐승으로 여긴 이방인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베드로가 먼저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 째는 고넬료를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고넬료를 예수의 증언하는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 베드로부터 복음을 듣도록 했습니다.
이후 고넬료는 로마 백부장이라는 정체성보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강했을 겁니다.
고넬료와 같은 증인이 세워져서 로마교회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베드로만 위한 것도 아니고, 고넬료만 위한 것도 아닙니다.
두 분을 온전히 세우기 위한 만남이었습니다.
우리는 간혹 당신만 변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반만 맞는 말입니다.
나를 깨기 위해,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인 동시에 당신을 세우기 위한 일입니다.
내 눈으로 짐승처럼 보이는 사람도 주님의 증인으로 세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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