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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비판하면 의인이 되나요?

by ysong 2024. 4. 28.

로마서 2:1~11

사람들이 복음에 반응하지 않을까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땅의 삶이 끝이라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욕심에 따라 맘대로 행동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신 결과는 21가지의 죄뿐입니다.

 

지난주 말씀을 안타까움으로 듣지 않으면 안 들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주 되심을 모른 채 살아가는 가족, 이웃에 대해 마음이 아프면 제대로 말씀을 들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에, 하나님의 심판에 핑계대지 못할 다른 유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악하다고 판단하는 저 같은 종교인을 향한 말씀이며, 당시 로마교회의 유대인 그리스도인, 지금의 교인들을 향해 하신 경고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을 자신에게 향한 경고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을 안 들으신 겁니다.

 

지난주 심판의 대상은 그들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며 경건하지 않고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입니다.

1:18~32절은 하나님의 진노에 핑계 댈 수 없는 그들에 향한 말씀입니다.

2:1절에는 대상을 꼭 집어 말합니다.

네가인데, 남을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1장의 그들처럼 너도하나님의 진노에 핑계 댈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나 아는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단하는 사람의 죄가 얼마나 크기에 앞선 21가지 죄를 범하는 그들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걸까?

당시 로마교회 그리스도인이나 현재 교인들이 범하는 죄가 다양한데, 꼭 집어서 판단하는 죄를 지적하신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큰 죄인가요?

 

, 판단은 중죄입니다.

세상 사람이 하니님의 진노에 핑계하지 못하는 것처럼 판단도 동일하게 핑계하지 못할 죄입니다.

왜냐하면 판단, 정죄는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자리에 앉은 행위입니다.

판단은 사람이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중범죄입니다.

거짓 신을 보좌에 등극시키고야 마는 교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죄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준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중죄입니다.

유일한 심판자는 하나님뿐입니다.

 

판단의 죄는 뿌리가 깊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판단의 죄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가 3: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뱀의 말에 속은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가인은 상대방을 판단한 최초의 사람이며 살인자입니다.

가인은 동생의 제사를 판단했고, 동생의 제사만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판단했습니다.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

선악을 판단하는 주권을 스스로 사용했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판단하고 결국 살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판단의 자리에 앉은 순간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것의 우상으로 바꾸게 됩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바울식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7:1~5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우리도 비판하는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남을 판단하는 이들의 특징을 4가지 정도로 정리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이들의 첫 번째 특징은 1, 3절에서 반복한 문장입니다.

네가 같은 일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너도 그런 일 하지 않니?

이 말씀은 로마교회에 향하기에 앞서 바울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합니다.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의 표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과거 바울은 남을 정죄했습니다.

종교적인 열심으로 그리스도인을 판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불의, 거짓말을 하는 것을 못 참는 사람이었습니다.

못 견디고 처단하기 위해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았기에 자기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알고 충격을 받았기에 나오는 고백입니다.

그 사실을 1절에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핑계 댈 수 없는 죄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던 겁니다.

 

내가 판단한 그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습니까?

내가 지적했던 그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란 적은 없습니까?

우리도 바울처럼 깜짝 놀라서 바울처럼 자신을 향해 고백해야 합니다.

너도 그런 일을 하고 있지 않니?

신앙은 자신을 향하는 것입니다.

 

판단하면서 자신도 같은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남을 판단하는 이들의 두 번째 특징인데요, 자신에게 관대합니다.

상대방에 민감한데 자신의 허물과 죄에 관대합니다.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라는, 스스로 선하다는. 스스로 정의롭다는 우월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판단하는 자리에 있는 종교인, 법조인, 언로인, 정치인이 여기에 속합니다.

판단하는 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혜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우월의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합니다.

특히 법조인들이 얼마나 교만합니까?

사람들을 아래로 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심판하셨습니다.

예리미야 2:35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의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하나님은 선지서를 통해 자신에게 관대한 재판관들의 죄를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아주 은밀하게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로마교회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판단하면서 은밀하게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은밀하게 이방인들의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면서 구원받았다며 세상을 판단했던 겁니다.

 

교회에서 누가 판단하기 쉬울까요?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판단하기 쉽습니다.

목사나 장로가 되면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면서 은밀하게 죄를 짓습니다.

자신에게 관대하기에 그것을 죄로 인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인색해야 합니다.

 

세 번째 특징은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5절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남을 판단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하나님보다 높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조직, 사람을 비판하면 자신은 완벽하다는 착각하게 됩니다.

왜 고집이 세고 회개하지 않습니까?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특징은 혼자 행동하지 않습니다.

8절의 말씀처럼 당을 짓습니다.

그들의 삶은 9절의 말씀처럼 환난과 곤고뿐입니다.

영에 평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판단하는 이들을 향해 엄숙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4절입니다.

하나님의 인자, 용납,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는 행동입니다. 우습게 여기는 행동입니다.

풍성한 하나님을 만만하게 보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그 하나님을 무시하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참으신 이유는 회개하여 구원의 길로 돌이키기 위해서 인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악용하면 안됩니다.

 

엄숙한 경고를 듣고도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회개하지 않으면 진노가 임할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판단하는 일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행위입니다.

 

판단하는 것이 의로운 행위로 자신도 속고 이웃도 속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외모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속지 않고 최종적인 판단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와 선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는 분이 있습니다.

악한 자에게 환난과 곤고로 벌을 내리고, 선한 자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판단하지 않기에 정당합니다.

11절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기 때문에 핑계 댈 수 없습니다.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10: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는 외모를 보기 때문에 자주 속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은혜만 살길입니다.

 

저같이 부족함이 많으면 덜 판단하게 됩니다.

낮은 자리에 있으면 덜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판단하는 것이, 정죄하는 것이 이방인이 짓는 21가지의 죄악과 맞먹을 정도로 중죄입니다.

 

판단에 대한 말씀은 자신을 향한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판단은 무엇인가 있는 것 같고, 뭔가 될 것 같은데, 실상 생명을 살리지 못합니다.

선한 행위, 사랑이 생명을 살립니다.

 

적용) 선을 행합시다.

판단은 생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생명은 선을 행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 인생을 7절과 10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부드러우면 부드러운 사람이 주변에 모여들어요.

내가 비판적이면 비판적인 사람이 주변에 모여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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