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5:16절
구원에 관한 교리(1~11장), 구원받은 사람들의 삶에 대한 권면(12:15:13), 개인적인 적용(15:14~16:27)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작년 5월부터 로마서를 시작했는데, 이젠 3~4번 설교를 하면 로마서를 마치게 됩니다. 이토록 오랫동안 로마서를 다른 까닭은, 우리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주기 때문입니다.
1~11장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모든 인류는 절망과 죽음밖에 없는 죄인이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의인이 되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존재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또 12~15:13절은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영적예배자로, 은사대로 섬기며, 더불어 화목하여 조화롭게, 배려하고, 타인을 위해 절제하며 살아야 한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로마서는 구원받은 사람이 세상에서 영적인 전쟁에 치루기 전에 무장시켜 주고 있습니다. 마치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벗겨, 깨끗한 흰옷으로 갈아입히고,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가도록 당부한 후, 세상에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상 15:13절로써 로마서의 중요한 내용은 끝나게 됩니다. 구원과 성화과정을 모두 다뤘습니다. 오늘부터 볼 15:14~16:27절은 바울의 개인적인 적용입니다. 믿음에 의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교리의 실제적 적용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16절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 바울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 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구원받은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한 마디로 요약해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바뀌기까지의 과정을 16절을 중심으로 다루면서 바울이 가진 정체성과 사명이 무엇이었던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동일하게 우리들이 가져야 할 정체성과 사명을 발견하고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세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1. 바울은 소속이 분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는 예수님께 속한 일꾼(종)이라는 뜻인데, 여기선 일꾼을 강조하기보다는 ‘예수님께 속함’이라는 소속을 더 강조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쓰면서 자신이 ‘예수님의 일꾼’이라고 밝히는 까닭은, 예수님께 소속된 자만이 바른 일꾼으로 충성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자신이 ‘예수님의 일꾼’이 아니었던 과거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바울의 소속의 문제를 묵상하면서, 바울과 모세는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분 모두 막대한 분량의 성경책을 기록했다는 것에 닮았고요. 바울은 12권의 성경책을 기록했고 모세는 5권의 성경책을 기록했지만 분량면으로 비교하면 모세가 훨씬 많습니다.
또 닮은 점은 두 분 모두 인생의 중간에 소속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젊은 시절은 바로의 왕궁에 소속되었습니다. 왕궁에 소속되어 최고의 학문을 배웠습니다. 최고의 무술과 기능을 배웠습니다. 왕궁에 소속됨으로 주어진 높은 지위와 권력과 힘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왕궁에 소속된 모세는 스스로 의로운 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능력으로 고난을 당하는 동족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권력과 재능으로 동족을 해방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백성은 모세의 도움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자신들과 소속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며 자신들은 모세와 다른 소속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에 소속되었습니다. 바리새인이 된 것을 긍지로 여겼습니다. 당대 최고의 바리새파학파에 소속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에 소속된 바울은 스데반의 순교를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바리새인에 소속된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잔멸하는데 열심이었습니다. 여기서 만족하지 못한 바울은 대제사장에 소속되기를 자처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서기 위해 필요한 공식공문이 받기 위해서입니다.
젊은 시절, 모세와 바울은 외형적으로 출세한 자리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스스로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게 하는 왕궁과 바리새인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속한 소속은 자신의 능력으로 인생을 충분히 꾸려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모세와 바울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소속이 바뀌었습니다. 모세는 아무것에도 소속되지 않은 광야에서, 실패자의 인생에서 타지 않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께 소속되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모세는 하나님의 종으로 민족을 구원하는 일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석을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 소속되어,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소속이 바뀐 그들은 성공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영원하신 진리되신 예수님에게 소속된 이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화려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민족을 구원하고, 이방인을 전도하는 예수님의 일꾼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늘 소속의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가정, 교회, 학교, 직장, 동창회, 동우회 등등 2중3중 다양한 곳에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알고 있는 분 중에 모기업의 중역을 지낸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충성된 일꾼으로 보입니다. 장로로 교회를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교회의 인사, 운영프로그램을 자신이 소속되었던 모기업의 시스템으로 바뀌기를 원하셨습니다. 늘 모기업의 시스템을 자랑하면서 교회의 구태의연한 운영을 비판하곤 했습니다.
저는 그 분과 대화를 하면서 가끔 느끼는 것은 몸은 교회에 소속되었지만 정신과 사상은 모기업에 소속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배당에 앉아있다고 예수님에게 소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는 하나님께 소속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 욕망에 소속되어 있기도 합니다.
왕의 권력에 소속된 거짓선지자는 미가 3:5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이에 물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물질의 욕망을 채우는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예루살렘의 권력에 소속된 대제사장은 요 18:12~13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예수님을 결박하여 제거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소속된 바울은 갈 6:14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처럼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영원하지 않는 권력에, 돈에, 명예, 쾌락에, 시기와 질투에, 죄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이젠 소속이 바뀌는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영원하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에게 소속되는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를 보면 2. 바울은 일하는 목적과 목표가 분명한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목적은 도착지점,,목표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33-1버스를 타면 당고개역이 도착합니다. 당고개역이 목적이고,,,1단지 역, 마당바위, 삼거리, 306 목표입니다. 목표지점을 거쳐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인생의 목적과 목표가 한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일꾼이 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님으로 거룩하게 된 이방인을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실 제물로 드리는 일입니다. 제물을 잡아 하나님께 바치는 구약의 제사장처럼 직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의 인생의 목적은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목표는 무엇입니까? 바로 이방인의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19절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니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남김없이 전파하였습니다. 이방인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수십키로를 걸어서 배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과정에 대한 기록이 고후 11: 23~27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처럼 바울은 온갖 어려운 과정을 견디면서 하나하나의 목표를 이루었고, 이방인을 하나님께 드리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살수 없을까요? 바울처럼 인생의 목적과 목표가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을까요? 불가능할까요?
구원받은 사람들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데,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그렇다면 각자의 일터에서, 어떻게 목적과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요? 매일을 반복되는 업무처리와 기업의 이익을 남기기 위해 분주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어떻게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이런 묵상을 하는데 오늘 본문이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울처럼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대비해서 각자의 일을 이방인으로 생각하고,,이방인을 성령으로 하여금 거룩하게 하는 것을,,,각자의 일을 정직하게 바르게 처리하여 회사의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으로,,,이방인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각자의 일의 결과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하나로 통합하다보면 신앙의 생활화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럴 경우 돈을 많이 벌어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업무를 잘 처리해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출세를 해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대단한 성과를 거둬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에 모든 것을 주께 하듯 일을 처리하게 되고, 정직하게 바르게 일을 처리합니다. 그러기에 자랑할 수 없고, 교만할 수 없고, 허무할 수 없고, 좌절할 수 없습니다. 이 간격을 좁혀가는 것이 신앙의 가장 큰 목표이길 바랍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이루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요즘 읽고 있는 ‘요한과 더불어’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지혜로운 왕에게 물었습니다. “폐하,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그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왕은 물이 가득 찬 물동이를 젊은이에게 주면서, 그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시장을 한 바퀴 돌아오면 비결을 알려 주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대신 머리에 인 물동이에서 물을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그 때는 너의 생명을 갖겠다고 선포했습니다. 뜻밖에도 생명을 걸게 된 젊은이는 물동이의 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뗄 때마다 온 신경을 집중하여 시장을 돌아 왔습니다. 왕이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시장 바닥에서 무엇을 보았고, 또 무슨 소리를 들었는가?
그제야 청년은 물동이에 집중하느라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시장에서 아무것도 듣거나 보지 못했음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청년은 마치 죄라도 지은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폐하 머리에 이고 있는 물동이 때문에 송구스럽게도 듣거나 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이 인자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집중하는 것이 그대가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네. 집중의 원리입니다. 목적과 목표가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집중의 원리입니다.
인생의 목적과 목표가 한 방향을 향한 바울에게는 인생의 보람을 가졌습니다. 로마서 11: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할 정도로 보람을 느꼈습니다.
디모데전서 2: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자신을 이방인의 스승으로 생각할 정도로 자긍심을 가졌습니다.
이방인을 순종하게 하는 바울의 인생의 목표는 18하반절과 19절 상반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뤄졌습니다. 이런 바울과 같은 은혜가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바랍니다.
15장 9~12절을 보면 3. 바울은 끊임없이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구약에서 이방인의 예언의 말씀을 찾아내서 이방인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9,10,11,12에 기록된 열방(이방사람들)이라는 단어에 큰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열방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방인을 사랑하고 찬양받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사실은 이방인선교의 당위성을 제공했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그냥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 주셨지만 끊임없이 구약을 연구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바리새인 출신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의 구원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메시아를 통해 이뤄질 메시아왕국의 구원문제만이 그들의 주된 관심이었습니다. 이방인에게 구원이 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여겼습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으로 모세의 율법과 선지서를 연구했습니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열방이라는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은 바울이 엄청나게 노력하고 연구했다는 반증입니다.
바울은 선교를 하다가 두 번째 감옥이 투옥되어 절망의 순간에도 디모데에게 책을 갖다 달라고 할 정도로 끝까지 말씀을 놓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목적과 목표가 분명한 바울은 연구하고 노력하는 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결론
학생들은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세우시길 바랍니다. 인생의 목적과 목표가 한 방향으로 향할 때 행복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 행복입니다.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목표는 재능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남양주성실교회 성도분들은 인생의 목적과 목표가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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