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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기쁨이 가득히

성탄의 정신

by ysong 2023. 12. 28.

빌립보서 2:5~11

어제는 성탄감사예배이고요, 오늘은 성탄축하예배입니다.

어제는 성탄의 반응에 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동방박사처럼 성탄에 반응하기 위해서는 작은 징조에 반응하고, 다음으로 말씀을 찾아 획인하고, 별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종교인은 가장 환영해야 마땅한데, 악플보다 더하다는 무플로 반응했습니다.

자기만족, 익숙함의 결과입니다.

매일매일 말씀에 반응하며 사는 것이 성탄의 올바른 반응입니다.

 

오늘은 성탄의 정신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성탄절인데 오늘 본문을 택한 이유입니다.

성탄의 정신은 무엇일까?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생각과 감정을 포함한 마음은 정신입니다.

6절에 기록된 낮아지심의 정신, 복종하는 정신입니다.

 

주변에도 낮아지심을 실천한 분에게 감동을 받습니다.

이용규선교사님이 쓴 내려놓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더 내려놓음이라는 책을 또 쓰셨습니다.

사람들이 이분의 책에 감동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선교사님이 학벌을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이선교사님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미국 유학을 가서, 하버드대학교에서 '중동 지역학 및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보통 대학교수라는 안락한 삶이 보장받습니다.

그런데 전부 내려놓고 가족 모두가 몽골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아무나 하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이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이 사실에 감동해야 합니다.

 

저의 집에 저를 기다리고 반겨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오공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말티즈개입니다.

제가 아무리 좋아해도 제가 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제가 개가 되는 것은 피조물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낮아지심은 창조주가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수준이 다른 것입니다.

낮아짐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성탄의 정신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심을 품는 것이 성탄의 정신입니다.

겸손, 순종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성도들과 생활 할 때, 교제할 때 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디까지 낮아지셨는지 몇 가지 사건을 통해 볼까요?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첫 번째는 무명인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나사렛 시골에 사는 청년과 처녀입니다.

너무나 가난하고, 아무런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가난한지를 짐작하게 해 주는 말씀은 눅 2:22~24절입니다.

“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는 어린양을 바치기 힘든 여인들이 아들과 딸을 낳고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한 제물이었습니다. 그만큼 가난했다는 뜻입니다.

 

왜 하나님은 가나한 요셉과 마리아를 선택했을까요?

가난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과 함께하시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낮아짐의 본을 직접 보여주신 것입니다.

가난은 내려놓을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정신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두 번째는 태어난 장소와 환경입니다.

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빈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실 수 있었을 텐데, 빈방이 없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어쩔 수 없이 마굿간을 택했습니다.

짐승의 똥오줌 냄새가 진동하는 마굿간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결코 미화된 목가적인 풍경이 아닙니다.

마굿간에 태어나서 아이를 구유=여물통에 눕혔습니다.

구유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너무나도 비위생적인 장소였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아들을 구유에 눕히도록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눈이 오면 우산을 준비시켜 주고, 추우면 두꺼운 옷을 입히는 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환경에 허락하셨을까요.

그런 환경에 처한 사람, 머리 둘 곳 없는 가난한 사람의 처지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가장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라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비위생적인 환경에 예수님을 눕히셨습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 하시기에 그 자리를 허락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성탄의 정신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세 번째는 축하객의 신분입니다.

천사들의 말을 듣고 제일 먼저 찾아온 축하객은 목자였습니다.

2: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목동을 생각하면 낭만적인 직업으로 보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시를 짓고, 긴 지팡이를 들고 넓은 들판의 주인인양 풀을 먹이는 목동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당시 목자들은 사회 최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법적인 증인조차 될 수 없는 신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늘 양들을 돌봐야 하기에 안식일을 지킬 수 없어 죄인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친구가 되는 것이 성탄의 정신입니다.

 

성탄의 정신은 예수님의 탄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위대한 하강입니다.

기독교는 위대한 상승의 이야기가 아니라 위대한 하강의 이야기입니다.

이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겸손한 마음이며 겸비한 삶입니다.

겸손의 뜻은 비굴함과 굴욕을 의미합니다.

노예처럼 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그렇게 사셨습니다.

 

6절부터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겸손의 과정입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다 가지신 분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자존성, 무한성, 완전성,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동등됨을 포기하셨습니다.

영광을 포기하셨습니다.

스스로 놓았습니다.

2) 자기를 비웠습니다.

영광과 권리를 포기하셨습니다.

마땅히 누려야 할 영광과 주장을 표기하셨습니다.

3)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양만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인 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었습니다.

4) 십자가의 죽음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이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낮아지신 예수님을 높여 주셨습니다.

그 예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이 높여주십니다.

한나를 높여 주신 것처럼 그렇게 높여 주십니다.

이용규선교사가 낮아지시니까 하나님이 높여 주셨습니다.

편한한 길을 갔으면 몇 사람만 알아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성탄의 정신을 품을 수 있을까요?

먼저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8: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세리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세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자기 속에 죄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낮아진 상태입니다.

 

사도바울은 성숙할수록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주님과 깊이 동행했는데, 그러면 의로워졌다고 해야 합니다.

반대로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비추는 빛에 가까이 가니까 죄가 더 보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때 그리스도로 채워졌습니다.

 

어떻게 이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요?

자신의 실체를 보면, 진정으로 낮아집니다.

진정한 내려놓은 상태는 내 속에 내려놓을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내 속에 있는 것은 의가 아니라 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비움이 진정한 채움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비워져야 진정한 것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로 채워져야 가능합니다.

예수로 채워지는 영적인 체험을 하셔야 합니다.

나는 자꾸 없어지고 예수만 보이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이 목적이 되길 바랍니다.

나머지는 부수적인 일입니다.

예수로 충만하면 됩니다.

 

이렇게 살면 사람들이 무시합니다.

그런 무시는 당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적용) 성탄의 정신을 기억해요.

베네딕트 수도원의 겸손해지는 12단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 하나님께 순종함, 정직한 고백, 가난에 만족함, ~~~12번째 겸손의 몸가짐입니다.

그런데 겸손의 12단계를 통과하면 가장 교만해진다고 합니다.

진정한 겸손은 예수님으로 채워질 때 가능합니다.

예수 정신으로 채워질 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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